杂感 (8)
늦은 오후 문득 고기가 먹고 싶었다.
도마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겨우내 군둥내 나는 김치를 달고 사니 풋남새 나오기 시작할 무렵 고기가 당긴다. 노릇하게 구워낸 삼겹살 몇 점이면 배부르다. 아내에게 전화하니 퇴근할 때 사 오란다. 근무복을 입고 마트에 들어서기가 마뜩잖다. 집에 가서 씻고 사오 마고 했지만 집에 들어가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언제 사둔 건지 모르는 말린 가자미를 냉동실에서 찾아내 구워 소주를 마셨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링컨이 했지만 삶에서 성공의 가치는 직업의 분화와 함께 변화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돌멩이를 깨물어 먹던 시절 중선배를 타고 동지나해에 나가 고기를 잡았다. 십여 일 후 육지로 돌아와 고기상자를 풀고 놀 때도 뱃놈끼리 놀았다. 술 마시고 싸워도 뱃놈끼리 싸우고 화해했다. 신경림 시인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했다. 광부들은 아연 광산에 막 들어온 신마이 주제인 나를 광산 앞 술집에 데려가 주었다. 그들의 공동체에 끼워줌으로써 광부의 일원으로 인정해주었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가는 따지지 않는다. 직업의 막장인 갱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목숨을 담보로 밥을 버는 공동체인 것이다.
산불감시원 시절 퇴근 후 빨간 옷 입고 마트에 들어가기 싫었다. 제복이 곧 신분이다. 트렁크에 항상 여분의 옷을 넣고 다녔다. 베어링 공장에서 청소 리어카를 밀었다. 밤샘 작업한 공원의 얼굴색은 누리끼리하다 못해 창백했는데, 체육대회에서 지역의 국회의원은 노동자의 체력 향상을 위해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침을 튀겼고 노동자들은 간단히 비웃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건 밤샘 노동을 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조건과 휴식이었다. 야간작업 때 나오는 간식 빵을 먹지 않고 청소부에게 주기도 했다. 고마워하면서 속이 안 좋은 공원이 항아리에 토한 라면 줄기를 꺼냈다. 동병상련이었다.
을의 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위계는 존재하고 직업의 귀천은 엄연히 존재했다. 40여 년 동안 극악의 빈부격차를 유발한 신자유주의의 출발은 “가난은 인격의 결함이다(poverty is a personality defect)”라는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의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대처는 가난을 철저히 개인의 무능 탓으로 돌렸고, 부(富)의 축적은 곧 그 사람의 우수한 인격 덕이라고 믿었다. 이런 개소리 때문에 양극화는 심해졌다. 캐나다의 작가 말콤 클래드웰은 “인류 역사상 비범한 성공을 거둔 이들의 공통된 비결은 운이었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공정한 출발에서도 운은 작용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시대 조건과 상황, 인간의 의지 다음엔 우연성이 틈입하는 과정과 같다. 운이 발생하는 상황은 하나님도 모른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은 제국주의 논리다. 사회 진화론자는 역사의 발전 법칙에서 소수자, 장애인, 가난한 이들은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 존재로 취급한다. 제주 4•3 항쟁 때 경찰 책임자는 빨갱이 섬의 주민을 전멸시키라고 했다. 히틀러도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무기로 유태인과 정치범, 장애인, 정신병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학살했다. 온정주의나 시혜적 사회복지로는 결핍된 자들의 바닥을 보듬을 수 없다. 아이에게 부모의 가난을 증명하라고 우기다 물러난 인물이 시장이 되어선 안된다. 정치꾼은 더불어 같이 사는 세상이라면서 뒷구멍으로 투기하고 빼돌리는 걸 계층의 관습으로 고착시킨 지 오래다. 인사청문회의 기준이 갈수록 낮아지는 게 준거다. 높은 자리에 불려 나간 것들치고 도둑놈 아닌 것들이 없다. 양심을 생명처럼 여기던 인물은 유혹에 이기지 못한 실수 하나로 세상을 등졌다. 이 땅에 진정한 보수는 없다. 그렇다고 진보가 양심의 기준이 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진보는 진보대로 세상을 한 발 앞서갈 뿐이고, 보수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면서 조금 늦게 걸음을 뗄 뿐이다. 수구꼴통 극우는 종국에 민족도 국가도 저버린다. 그들의 속내는 지구 어디에 살더라도 자신들 이익의 극대화니까.
세상은 문명을 향해 달리는데 인식은 갈수록 퇴보하는 느낌이다. 조선시대의 노비 계층 비율은 인구의 반을 넘었다. 어미가 양인이어도 아비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가 되었다(一賤卽賤). 종놈의 아이가 태어나면 양반집 재산은 불어났다. 그나마 임진왜란 때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 양반을 보충하기 위해 면천 바람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잠잠해졌다. 구한말 의병 투쟁에서도 평민 출신인 신돌석장군은 의병 재편 과정에서 내쳐졌다. 의병 연합군의 한양 공격은 양반 출신 의병장의 부모 상을 이유로 코앞에서 좌절되었다. 민중의 대의보다 유교적 질서와 계급이 우선이었던 까닭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고졸 출신 대통령을 대졸 출신의 국회의원이 비웃으며 죽어라 물어뜯은 일을 기억하잖은가. 성전환을 한 군인이 차별적 시선을 못 견디고 죽은 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끝까지 그녀 곁에 없었다는 방증이다. 싸우다 지치면 살 의미를 잃는다.
직업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건 뿌리 깊은 차별적 시선 때문이다. 국적 종교 피부색의 차별로부터 지역 계층 간 차별은 상존하는 차별적 시선이다. 이차대전 후 오키나와에서 전사자를 기리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 넘어온 군부와 위안부는 배제되었다. 일본인의 시선에서 조선인은 철저히 불가시적 존재였던 거다. 돈이 양반이고 지위가 된 사회에서 돈만큼 든든한 종교가 없다. 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 큰 차, 고급스러운 입성이 그 사람의 인격이 되었다. 요양보호사 청소부 등 사회의 필수 노동자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만 추어올린다. 노동의 대가는 정당한 임금이 말해준다. 장시간 저임금으로 부려먹으면서 당신들의 직업을 존중한다는 건 개소리다. 우리 사회의 차별주의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더럽게 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