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 (24)
청량산 도립공원 앞길을 에돌아 안동 쪽으로 오 리 정도 물길 따라 내려가면 양삼 마을이 보인다. 십 미터 높이에 폭 오 미터, 길이 백이십 미터의 시멘트 다리 건너 산자락에 집과 밭이 드문드문하게 흩어진 마을이다. 다리 아래엔 태백에서부터 달려온 낙동강 물길이 도립공원 앞 여울과 소를 지나 순한 짐승처럼 흐른다. 마을 뒤편 야트막한 산릉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병풍 너머 멀리 청량산이 쌍봉낙타 혹등 같은 봉우리를 내밀고 있다. 양삼 마을은 강촌과 산촌의 모습을 띠었는데 과수원과 감자, 고추 등의 밭작물이 주된 농사고 논배미는 한 뼘도 없는 마을이다. 여름에는 오후 세 시 무렵 해가 강 건너 수직 절벽을 넘어간다. 절벽 아래 초소는 산그늘에 잠겨도 마을에는 지는 해가 넉넉하게 비추어주기 때문에 농사가 가능했다.
강엔 물고기와 새, 수달이 산다.
강 잉어 꺽지 퉁가리 갈겨니가 오르내리며 논다.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다리에 가서 잉어를 관찰하는 일이다. 두 자 가까운 잉어가 물살을 타고 살살 꼬리를 흔들면서 논다. 어떤 날은 일고여덟 마리가 몰려다니며 바위에 붙은 강 벌레를 잡거나 물이끼를 훑는다. 저들끼리 장난치듯 몰칵 달려들었다가 후다닥 달아나며 강모래를 뒤집기도 한다. 잉어는 예민한 물고기다. 다리 위에서 들킬세라 조심하며 내려다본다. 민물가마우지는 강마을의 텃새다. 언제나 다리 위쪽의 바위에 앉아 쉰다. 날개를 고르거나 물에 뛰어들어 물살에 떠내려가면서 자맥질을 한다. 검은 외투를 걸친 스나이퍼 같은 녀석들은 맑은 날 고개를 들어 청량산 봉우리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자세다. 나도 뭔가 기다린 적 있다. 그것이 이상이나 바람이었다면 지금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바람의 노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은 나무 실은 차를 기다린다. 강변도로 아래 쓰러진 버드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몰래 가마우지 살피며 걷는다.
종다리 닮은 물새 총총 뛰듯이 수면 위 난다. 이따금 하얀 날개 펄럭이며 공중을 선회한 백로가 건너편 모래톱에 앉아 쉬는 모습도 자주 본다. S면의 제련소에서 중금속 오염수를 방류하는 통에 강은 신음한다. 수십 년 되풀이된 저지레는 기업의 이익과 생태보전이란 명제와의 싸움이다. 망가진 생터를 되돌리는 일은 비용과 시간이 천문학적이다. 큰 틀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국면이다. 지역 언론과 환경 단체가 끈질긴 싸움을 잇고 있다.
다리 초입과 버스정류장 길가에 풍혈(風穴)이 있어 바위틈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여름에는 마을 주민이 내려와 얼음 바람을 쏘이는 곳이다. 요즘 풍혈 주변엔 수수꽃다리, 병꽃나무 꽃이 한창이고 괴불주머니 , 인진쑥이 키를 세우며 자라고 벚나무 둥치를 감고 오르는 담쟁이 햇닢이 햇볕에 반짝이며 세력을 넓힌다.
양삼 마을은 강 건너 눈에 잡히는 집이 예닐곱 채고 위쪽 버드나무 보호수가 있는 계곡 안쪽에도 주민이 산다고 한다. 거개가 독거노인 가구고 남녀가 사는 집은 두어 가구뿐이다. 산촌 유학생을 받는 집이 있는데 도시에 사는 학생이 시골에 와서 유학한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M면의 초등학교에서 돌아오는 학생들이 우르르 통학버스에서 내리는 걸 본다. 지난 휴일 유학촌의 운동장에 나온 학생들이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공 차는 걸 보았다. 강마을에 유일한 아이 소리다. 사연은 다르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의 경험이 성장에 도움이 되면 좋겠단 생각이다. 마을의 중심에서 삼백여 미터 떨어진 아래쪽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집 짓고 산다. 처음엔 펜션 영업을 한다고 지었는데 주인의 성격 상 펜션은 접고 혼자 산단다. 마을 사람과의 교제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가끔 도시 사는 아내가 찾아온다고 한다. 이런 정보는 산불감시원으로부터 듣는다. 그도 외지서 들어와 래프팅이 시작되는 지점인 M면의 외곽에서 펜션을 한다.
마을에서는 강변길을 한눈에 개관할 수 있다. 초소에서는 주민이 밭에서 일하는 걸 볼 수 있지만 내밀한 것까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주민 쪽에서는 거실의 창을 통해서든 어느 쪽에서나 건너편 길 위의 상황을 살피는 게 가능할 거다. 마치 극장의 이층에서 스크린을 내려다보는 지형이다. 초소의 근무원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나 A시에서 도립공원까지 운행하는 567번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며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A시 교보생명 앞에서 타면 도산서원을 거쳐 양삼 마을 지나 청량산 도립공원까지 간다. 운행 간격은 두 시간이다. 경북 내륙의 지방국도인 강변도로는 차량 통행이 뜸한 편이다. 근동의 공사차량이나 주민이 이동하는 것 외엔 나들이 차량이 대부분이다. 청량산을 가거나 내륙을 여행하는 캠핑카가 트레일러를 달고 지나간다. 폴 서루는 「여행자의 책」에서 '당신만의 여행을 위한' 열 가지를 얘기한다.
하나 집을 떠나라.
둘 혼자 가라.
셋 가볍게 여행하라.
넷 지도를 가져가라.
다섯 육로로 가라.
여섯 국경을 걸어서 넘어라.
일곱 일기를 써라.
여덟 지금 있는 곳과 아무 관계가 없는 소설을 읽어라.
아홉 굳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야 한다면 되도록 사용하지 마라.
열 친구를 사귀어라.
오늘 같은 주말에는 드라이브하는 차가 늘어나고 땅을 울리는 굉음 내며 폭주족이 줄지어 달린다. 두 다다다 다닷! 땅 울리며 오토바이 지나간다. 하나 둘 셋... 반짝반짝 우람한 오토바이가 줄지어 강변도로 달린다. 오전에만 대여섯 팀이 초소 앞을 지나갔다. 오후에도 줄지어 달린다. 세 발, 네 바퀴짜리도 있다. 전조등 켜고 가죽 두건 쓴 선두가 손짓한다. 스피드 바람 굉음 풍광이 한 박자로 구른다. 휴양림에서 일할 때 '맛터 사이클' 신계숙 씨와 악수한 적 있다. 그녀는 이천만 원이 넘는 할리데이비슨을 탄다. 그건 싼 축에 든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식당 주방에서 청춘을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이 듦이 머리를 쳤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토바이 타고 전국을 누볐단다. 남들의 '멋지다!'는 표현을 밥으로 삼는다는 그녀의 손은 따듯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마따나 '진정한 여행이란 낯선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식을 가지는 것'이다. 두 다다다 다닷! 강물이 튀고 잉어가 뛴다. 라이더도 스토리를 만들며 살 거다.
강마을에 넘어가는 햇발이 풍덩하게 걸렸다. 양삼(陽三) 마을은 볕이 잘 드는 곳이다. 젊은 낚싯꾼이 다리 위에서 환하게 웃고 일행이 사진을 박는다. 릴을 던져 갈겨니라도 잡은 듯 작은 물고기를 손에 들고 섰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난 다리 위에 사내가 아래를 살핀다. 초소에 앉아 사내의 움직임을 관객처럼 바라본다. 사람은 멀리서 웃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슬픈 창자까지 훤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