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25)

그가 어쩐 일이람.
연말 즈음 보이지 않던 그가 도서관 밖에서 종종 담배 피우는 걸 보았다. 애연가다. '다른 부서로 옮긴 모양이군'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연초에 새 사서가 들어왔다. 느긋한 연배인데 마른 사내였다. 그는 업무를 익히는 중에도 드나드는 사람에게 꼬박꼬박 인사했다. 조심스러운 말씨로 내게 도서가방을 건네기도 했다. 일체의 소리를 죽이려는 듯 애쓰는 기색이 한눈에 보였다.

일 년 동안 열람실을 지킨 그가 다시 나타난 걸로 봐서 주말 근무는 아래위 층이 번갈아가며 하는 걸로 짐작되었다. 나는 그가 점심 메뉴를 정하느라 큰 소리로 통화하는 걸 들은 적 있다. 또 이층에서 내려온 젊은 사서와 주식이니 투자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채로 생리현상을 마구 해결했다. 하품은 기본이고 재채기도 개의치 않고 마구 뱉었다. 대출하러 들어가는 순간 그가 보이면 짜증부터 났다. 얼른 책을 뽑아 나왔다.

도서관 제안 엽서에 열람실에서의 소음에 주의해 달라고 적었다. 그때는 여성 관장이었는데 달라진 건지 어쩐지 모르고 지나갔다. 작년부터 남자 관장이 들어왔다. 한 번은 나이 든 이용자가 서가를 살피면서 혼잣말로 떠들었다. 으흠, 아아! 같은 추임새였는데 그는 도서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흥분한 상태였다. 그걸 책을 고르면서 유감없이 표현하던 거였다. '좀 조용히 합시다!' 내가 낮고 단호한 어투로 쏘아댔다. 그는 움찔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다른 쪽 서가로 사라졌다.

신착도서를 살폈다. 눈에 뜨이는 책은 없다. 읽던 책을 연장 대출했으니 더 있을 이유도 없었다. 돌아서 나가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머리는 황소만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한쪽 손을 턱에 괴고 눈은 풀려 있었다. 부은 듯한 얼굴에 눈은 반쯤 뜬 것 같았다. 아니 다 뜬 눈이 그랬다. 나를 슬쩍 보는 것 같다. 내가 이글거리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얼굴을 그의 쪽으로 향한 채 천천히 지나가자 그는 내게서 눈의 초점을 거두었다. 간밤 과음이라도 했나. 검붉은 얼굴에는 빨리 시간 때우고 퇴근해야지 하는 표정이 물색없이 드러났다.

서점 주인이 책을 많이 본다든가 도서관 사서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물정 모르는 사람의 소리다. 일과 책 읽기는 엄연히 다른 분야다. 물론 분류법에 따른 책의 종류와 제목, 저자의 정보는 타인이 따라 하지 못할 거다. 쿰쿰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서가를 오가는 낭만적인 풍경에 대한 상상은 삼가는 게 좋을 거다. 책을 팔거나 정리하는 일로도 머리가 터질 거다.

어느 해 여름 정한 분량의 도서 대출권을 가져오면 책가방을 준다는 이벤트가 있었다. 아줌마 사서는 조금 지나면 책가방을 받을 수 있다고 나를 추어주었다. 그녀는 주말에만 근무하는 기간제 사서였다. 하도 더운 날들이라 매일 도시락을 들고 에어컨이 빵빵한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녀는 출근하자마자 전화 통화로 시간을 죽였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열 걸음 떨어졌는데 실내의 적막에 더해 그녀의 목소리는 물론 통화 상대의 음성까지 들릴 정도였다. 어느 날 참다못해 한 소리했다. 그녀는 새살거리며 죄송하다고 했다. 더 미웠다. 그 후로도 예민해진 나의 전화 감청은 계속되었다. 드디어 책가방을 받는 날이 왔다. 나는 그녀에게 한 달 분량의 도장이 찍힌 대출증을 보여주었다. 어? 가방이 다 떨어졌는데요. 그럼 행사를 접어야 했었다고 따졌다. 그녀는 불그락한 얼굴로 대신 책을 많이 읽었으니 됐잖아요 하고 대거리했다. 나는 (그게 무슨 댕댕이 풀 뜯는 소리냐) 내가 책 읽은 거하고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목소릴 높였다. 그간 그녀가 대출 창구에 앉아서 한 행동을 생각하면 코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벌게진 얼굴로 나간 그녀는 잠시 후 책가방을 들고 왔다. 며칠 지나 책가방을 남에게 주었다.

마찬가지로 더운 날이었다.
열람실의 사인용 원형 탁자에서 책을 펼쳤다. 그런데 독서대가 없다. 옆의 노인이 독서대에 책을 걸치고 존다. 집에서 가져올 걸 그랬나. 전화 소리에 잠 깬 노인이 밖으로 나간다.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는다. 삼십 분 지나 들어오더니 다시 졸기 시작한다.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한 시간이 넘어도 노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독서대를 가져다 책을 올렸다. 두 시간 후 그가 오더니 독서대가 없어진 걸 보고 짜증 난 얼굴이 되었다. 모르는 척했다. 그는 사납게 책을 집더니 자리를 떴다. 잘코사니, 도서관에 자러 왔나. 얼음바람 시원한 도서관은 한여름 피서지로 제격이다.

도서관은 책을 읽고 빌릴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행사와 모임이 있다. 코로나로 문 열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틈틈이 도서상품권이나 책가방 책갈피를 준다. 독후감상문 써서 상품권 여러 장 받았다. 서가에 없는 책이나 신간은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읽을 수 있다. 한 달에 일인당 다섯 권까지 신청하는데 일 년이면 꽤 많은 신간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신간 코너 살피다 의외의 책을 만나기도 한다. 시골에 독서층이 알게 모르게 퍼져 있다는 걸 실감한다. 좋은 책을 신청한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작년 몇 개월 동안 기간제 근무자가 보였다. 들고나는 이용자를 안내하고 책을 찾아주었다. 사탕을 주기도 했는데 한눈에 불편해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장애 비장애, 정상 비정상의 근거는 무엇인가. 사회는 정상과 비장애 중심으로 돌아가며 비정상과 장애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마찬가지로 이성애를 기준로 동성과 양성애, 심지어 무성애조차 구분하고 위계를 짓는다. 기준과 규율, 인간적이란 것에 신물 난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중심주의는 세계를 함부로 선고한다. 책 없는 세상, 위계와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픈 마음은 마음만으로 위무될 뿐이다. 나는 이기적이고 고약한 성벽에다 국량은 좁아터져 타인에 대한 배려의 상상력은 간장 종재기만도 못하다. 그건 세상이 가르쳐준 탓이 크다. 세상과의 불화를 조금씩 누그러뜨리는데 시간은 짧고 길은 에움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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