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23)

비 그친 숲에 들어오니 눅진한 상쾌함이 좋다. 상수리나무를 다래덩굴이 뱀처럼 친친 감았다. 죽게 생긴 상수리나무 표정이 희희낙락이다. 다래덩굴이 자꾸 옆구리를 타기 때문이다. 싸리나무 이파리에 달린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오월의 숲은 연초록의 축제다. 색깔만 다른 아기의 피부 같다. 때죽나무 붉나무 물푸레나무서껀 밝은 초록 빛깔의 잎을 우렁하게 키운다. 하늘만 빼꼼히 보인다. 오래전 사람이 오갔을 숲길은 희미한 흔적으로 남았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내가 숲으로 향한 까닭은 내 인생에 소중한 것과만 대면하면서 신중하게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숲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숨을 거둘 때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내 자신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살지만 우리는 나무를 생명체로 보는 걸 종종 잊는 것 같다. 흉측하게 잘라낸 도시의 가로수. 간판을 가린다고, 열매와 낙엽이 떨어져 냄새나고 지저분하다고 팔다리 잘린 신체처럼 말뚝을 만든다. 소로는 숲에서 야생 사과나무의 상생을 배우고 삶에 적용한 사람이다. 스콧 니어링 부부는 필요한 양식 외의 수확은 하지 않았다. 잉여는 남아 쌓인 부를 권력으로 만들어 결핍된 존재를 억압한다. 만족을 모르는 욕망은 타인에게 쉽게 손 내밀지 않는다.

숲은 천이(遷移)라는 이사 방법으로 생존 환경을 바꾼다. 넘치고 모자람을 스스로 조절한다. 그래서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다. 나무(木)는 개체가 어울려 숲(林)이라는 공동체가 되고 삼림(森)이 되었다가 사막(光)이 되기도 한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우주 안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을 의미한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은 태양이 빛나는 텅 빈 공간이다. 비었으므로 채움을 지향한다. 채움의 지향 또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산을 깎아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는 사람은 청정에너지보다 눈앞의 이익에 급하다. 마음이 바쁜 사람에게 숲의 신음은 들릴 턱이 없다. 농부의 '땀'이 아닌 투기 대상이 된 '땅'은 농토나 숲의 맨얼굴을 지키기 어렵다. 처음부터 정해진 땅의 주인은 없었다. 국가는 제후와 관료에게 상급으로 땅을 주며 달랬고, 땅을 가진 호족은 땅 없는 농민에게 소작을 주었다. 땅은 잉여를 발생하는 한 재물과 권력의 화수분이다. 일 년 내내 허리 굽혀 일해도 땅값 오르는 온도차에 농부는 절망한다. 도시의 집값에 우는 서민 또한 마찬가지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나라는 희망이 자랄 여지가 없다. 너도나도 투기를 손가락질하지만 속내는 자신의 안녕이다. 떨어지지 말고 조금만 올라다오. 배부른 다음 도덕질도 양심질도 가능하다는 투나 현실은 더럽다는 냉소주의로 돌아선다.

욕망은 가난한 사람, 선한 사람, 부자든 누구에게나 내면화된 삶의 동력이다. 방향이 문제다. 나는 부끄러운 짓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굴뚝처럼 세우면서 되풀이하는 것 같다. 돌아보면 가족도 욕망이었고 짐이 되었다. 내려놓든 벗어나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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