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22)

며칠째 아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나지 않는다기보다 무사유로 멍하니 자잘한 일상에 몸만 따라간다.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짧은 글조차 쓰기 싫다. 수면 아래 잠긴 수중 도시의 거대한 기둥에 물풀이 무의식처럼 돋아났다.

이십 년 썼던 엔진톱은 나이 들어 일을 떠났다. 농사밖에 모르는 노인 밭일하다 죽는다고 톱은 아카시나무 숲에서 손을 털었다. 동산바치 하던 놈 굶어도 연장은 있어야 하겠기에 2마력짜리 새 톱을 주문했다. 전에 쓰던 독일제 스틸(STIHL)이다. 간벌 작업할 일 없으니 16인치로 했다. 짧아 보여도 가이드 바 길이가 반지름에 해당하니 지름 60~70cm는 너끈히 벨 수 있다. 이십 년 동안 낡은 톱은 산으로 들로 남의 집 마당으로 다녔다. 톱은 나무 베고 밥을 벌다 함께 늙었다. 정든 톱이다. 사물은 정들면 감정이 옮는다. 순전히 인간 중심의 사고지만 입장 차이란 게 칼로 무 썰 듯 단순히 끊어지는 건 아니다. 곁에 두고 몸처럼 쓰던 사물은 사람의 숨결이 스민다. 손때 묻은 잡동사니조차 갑자기 사라지면 조각이 떨어져 나간 영혼처럼 너덜 해지고 만다. 오래 타던 승용차를 폐차할 때 눈물 찍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낡은 차는 친구가 가는 곳 어디든 동행했고 무사히 집으로 데려다주었을 거였다. 결과만 따지면 과정과 맥락은 생략되거나 무시된다. 과정이 없는 삶은 이야기가 끊어진 연극이다. 새 톱이 오는 대로 남은 아카시나무 마저 벨 생각이다. 낡은 톱은 평생의 직분을 마치고 뒤란에서 고이 쉬는 중이다. 새로 산 톱은 수명 다하기 전 누군가에게 옮겨 갈 터고 난 세상에 없을 거다. 매일 새벽 함께 대문 나섰던 개는 홀로 산책할 거고. 인생이란 그렇게 왔다가 떠나는 거다.

새벽 산책 나섰을 때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수처리장 튤립나무 이파리에 비 맞는 소리가 났다. 풀밭 뛸 만큼 뛴 개와 집으로 돌아왔다. 빗방울 굵어지자 개는 집에 들어가 우울한 표정으로 젖은 마당 내다본다. 도시락 싸서 일찌감치 나섰는데 빗줄기가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수수꽃다리, 애기똥풀 꽃서껀 들꽃이 핀 산길 돌아 달리는 눅눅한 공기가 외려 상쾌하다. 참나리는 수탉의 갈기 같은 잎을 사방으로 뻗으며 꽃을 피울 태세다. 민들레 솜털 날아가고 빈 꽃대 젖어 흔들린다. 강마을에 닿으니 산봉우리에 비구름이 걸렸다. 강물은 여울 지나 바위를 적시고 순한 짐승처럼 흐른다. 소방서 앞에 차 세우고 쉬었다 간다. 소방차 옆에 선 남자가 담배를 물고 하늘 올려다본다. 비 긋는 날이면 소방수도 부침개 구울까. 월요일인데 차는 뜸하다. 펜션 앞을 지난다. 산불 감시원 겸업하는 펜션 사장 차가 보이지 않는다. 비 소식에 마실이라도 나갔나 보다. 청량산 구역의 산불을 감시하는 펜션 사장은 매일 오후 초소에 들러 걸쭉한 입담을 풀다 간다.

초소에 도착해 우산을 꺼냈다.
굵어진 빗줄기가 컨테이너 지붕을 사정없이 때린다. 강 위에는 고개만 내민 물오리들이 물살 타고 내려간다. 떼로 흐르듯 떠가는 오리는 자맥질하면서 아래로 사라졌다. 백로 몇 마리 쓰러진 버드나무 아래 날개를 기우뚱대며 서 있다. 큰 새는 비 오는 날 낭패 본 신사처럼 하얀 입성 어쩌지 못해 당황한다. 민물가마우지 두 마리가 다리 위쪽 바위에 앉아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다. 비구름이 청량산 산릉을 감쌌다가 흩어졌다 한다. 강 건너 밭엔 오가는 사람 보이지 않고 적요한 풍경이다. 동료와 커피 마시고 잉어 보러 다리께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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