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88)

더위는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노동의 조건은 위계별로 다르지만 거개의 노동은 기온과 날씨에 취약하다. 작업 종에 상관없이 주어진 조건을 버텨내는 게 관건이다. 푹푹 찌는 삼복염천에 고추 따는 일은 숨이 막힌다. 고추는 사람 키만큼 자라서 고춧골에 앉으면 바람 통하지 않는 한증막이 따로 없다. 큰 공사장에서는 여름마다 식염제를 나눠주었다. 안전모에 수건을 덮어쓰고 육수처럼 쏟아지는 땀에 체력은 바닥나고 입맛이 사라진다. 드러난 팔뚝의 땀구멍마다 데인 것처럼 물집이 잡혔다. 도시락 가방에 넣어온 얼음물로는 감당하지 못해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일했다.

솔개그늘 한 점 없는 조림지 풀베기는 찜솥의 찐빵이 된 느낌이었다. 예초기 엔진에 매단 물통은 오전에 바닥난다. 동료 중 하나가 여러 개의 물통을 모아 끈에 달고 계곡을 내려간다. 사람들은 풀을 후려치면서 물이 오기를 목 빼고 기다린다. 한 시간 넘어 헐레벌떡 물통이 도착하면 단숨에 1.8리터 페트병을 비운다. 점심때까지 트림을 하면서 풀의 모가지 댕겅댕겅 날렸다. 하루 일이 끝나면 저녁 뉴스에 열사병 사망자가 몇 명씩 올라왔다. 여름만 더운 게 아니었다. 고드름 똥 싸게 추운 겨울 숯가마에서 부장대로 하얀 백탄을 꺼내면 천 도가 넘는 열기에 푹푹 땀이 쏟아졌다. 돌아서면 시베리아 벌판이고 돌아서면 에티오피아 다나킬 평원의 열기 솟구치는 소금 사막이었다. 소금을 나르는 낙타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다 사막에서 죽는다.

여름이 돌아오면 금세 새카맣게 탄 얼굴이 되었다. 노천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검은 피부가 더께로 쌓여 마침내 검은 피부가 된다. 난 줄창 햇볕 아래 일하지는 않아서 겨울이면 도로 뽀얀 피부로 바뀌곤 했다. 춥거나 더운 데서 밥 버는 일은 어쨌거나 고역이다. 불볕더위나 추운 날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면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이 충분히 전이된다.

고통도 그렇다. 고통은 떠올릴 때마다 상처에 소금 뿌린 듯 살아났다. 고통은 부정되어야 하되 지워져서는 안 된다. 고통은 존재를 성찰하게 하고 인식을 키우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만 고통을 느낀다고 식물과 사물 같은 대상을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가. 자연을 훼손하는 것과 동물을 죽이고 이용하는 인간의 정당성은 무슨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같은 종인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상•비정상과 국민•비국민의 위계에서 제외되는 인간 부류는 동물과 사물처럼 취급되어 온 게 사실이다. 태어나 공동체의 가치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생애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신체적 정신적 어긋남에 대한 고통을 갖고서도 무수한 논의가 벌어진다.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자의적고, 사회적 역사적 존재라는 점에서 개인의 함의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단순히 정리하기 어렵다.

점심때가 넘어 꽁무니에 플라스틱 슬리퍼를 주렁주렁 매단 신발 트럭이 지나간다. 산골 동네 다니며 싸구려 신발을 파는 모양이다. 알록달록한 신발 색깔이 강의 초록 풍경과 어울린다. 폭주족이 지나고 캠핑카가 지나갔다. 강 마을 절에서는 오전 동안 목탁 소리가 나더니 잠잠해졌다. 파일등을 걸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신 마을에 찾아오는 차량은 평소보다 많았다.

헝겊 신이 구멍 나도록 걸었던 적이 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가다가 배가 고프면 냄비에 돌 받치고 마른나무 분질러 물 끓였다. 삶은 국수를 강물에 씻어 소금만 쳐도 꿀맛이었다. 차갑고 투명한 강물이 콸콸 소리 내며 흘렀다. 지나던 영월 근처의 산에서 펑펑 남포 터지는 소리가 났다. 석회 광산이 있던 마을에서 꼴 베어주고 무연탄을 반죽해 담뱃닢 찌며 한 철을 살았다. 남들은 대학에 가고 위로 가기 위해 경쟁하던 시절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삶과 역사에 대한 깊은 생각이나 거대 담론을 화두처럼 짊어진 건 아니었다. 몸으로 겪으며 살아내기 위한 삶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싶었다. 나를 지배했던 생각 중 하나는 개인은 철저히 고독한 존재이며 사회는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는 거였다. 산으로 들어갈까 생각했다. 지리산 자락에 들어가 보름을 살았다. 쌀이 떨어지자 텐트와 책을 버리고 단검을 차고 산등을 넘었다. 결국 다 떨어진 신발을 꿰어 신고 팔도를 떠돌았다. 눈에 띄지 않는 몸의 장애는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선택했다. 비장애중심의 세상은 유혹적이었지만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악마성을 지녔다.

음력 삼월 동지나해에 함박눈이 날렸다. 그물 당기던 젖은 장갑이 얼었다. 소금물에 불어 터진 손등에 흰 눈이 떨어졌다 녹았다. 탐욕을 죽지에 감춘 갈매기는 그물 주위를 맴돌며 어부의 등을 노렸다. 우윳빛 바다에 떠도는 부표는 나와 다르게 보였다. 곰보 선장은 나에게 돌아가 공부를 계속하라고 했다. 투망 후 망중한에 페인트를 칠하고 스크루에 감긴 밧줄을 끊었다. 뱃멀미에 토는 나오지 않고 배만 흔들렸다. 중심을 잡으려던 바다에서 내리는 순간 땅이 솟아나고 움푹 꺼졌다. 육지에서의 연착륙은 먼 얘기였다. 대륙붕 바닥을 훑던 초짜 뱃놈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 그치고 이틀은 황톳물이 흘렀다. 물 위에 드러났던 바위는 물속에 잠겼고 다리 아래 오가던 잉어는 모습을 감췄다. 이틀이 지나자 물빛은 쑥색을 띠며 흘렀고 수면 아래 잠겼던 바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위는 큰 물 진 후에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솟아났다. 물 바닥에 박힌 거대한 덩어리의 일부였는데, 무의식의 은유처럼 끈질기게 살아났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가마우지가 긴 목을 빼고 물살에 떠내려가면서 사냥을 시작했다. 가마우지는 수면을 차고 날아올랐는데 바로 떠오르지 않고 물 바닥을 관찰하는 것처럼 물 위를 저공비행했다. 물 바닥은 김 서린 유리창처럼 부앴다. 햇살이 급하게 공기를 데웠다. 동료는 산그늘에 차를 넣었고 나도 덩달아 그늘을 찾기 시작했다.

황현산 선생은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느냐에 따라 가름된다'라고 말했다. 나는 예전에도 낮은 온도의 감수성을 지녔고 삶의 모든 부면에서 서툴렀다. 글을 쓰는 데도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데도 미욱하기 짝이 없다. 부끄러웠는데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했다면 난 없었을 거다. 어리석음만으로 설명하긴 뭉뚱그린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와 만남으로 관계한 여자나 사람은 그런 면에서 손해를 본 꼴이 되었다. 같은 듯 다른 쪽을 보는 내게 실망했을 거다. 나는 관계 속에서 상처 입으며 변화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인정하는 길밖에 다른 수가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독서를 통해 지식이 쌓일수록 세계는 넓어지기보다 좁아지는 걸 느낀다. 인식 체계가 관념의 틀 안에서 사유를 단단하게 옥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가 일상인 사람에게 산책과 여행은 필요하다.

한 달 넘도록 소나무 실은 차량은 나타나지 않는다. 수목 식재는 혹서기나 혹한기를 빼고 일 년 내내 가능한 작업이 되었다. 기술이 축적된 덕이다. 도시로 빠져나가는 길목이 아닌 이곳은 다른 초소에 비해 단속률이 떨어지는 게 당연할 터다. 강 마을 다리목에 있는 외딴집에 갔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인데 요즘 밭에 흙을 넣느라 덤프트럭이 오간다. 인사하니 반가워하며 커피를 내온다. 다리와 신작로가 생기기 전 마을의 역사를 들었다. 나룻배로 건너다 빠져 죽은 이가 많았다고 했다. 논이 없어 쌀을 사 먹었던 형편에 대추 농사가 유일했단다. 지금은 한두 그루 대추나무가 남았을 뿐이다. 지독한 가난 속에 키운 오 남매는 대처로 떠나고 바깥어른은 십 년 전 세상을 떴다. 살아생전 이장 일하며 근동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학술 단체, 등산객이 찾아와 청량산의 김생굴과 유적지를 물으면 함께 산에 올라 안내했다. 할머니는 대상포진으로 약을 먹어서 코로나 백신 접종은 미루었단다. 군수님이 동네 사람들을 제일 먼저 데려가 이차 접종까지 마쳤다고 고마워했다. 돈 먹은 군수라고 말해주진 않았다. 작은 마당에 느티나무 세 그루가 그늘을 만들었는데 오래전 가지를 쳐내고도 새로 나온 가지가 엄청 자랐다. 집 주변 구석구석 세월의 더께가 앉았다. 토방에 앉아 내려다보니 다리목 포플러 이파리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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