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 (28)
양변기를 고쳤다.
내 미장 실력을 의심하는 아내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거다. 대단한 건 아니고 흔들대는 변기 바닥에 백시멘트를 바른 것뿐인데, 시공하기 전 검색을 통해 공부했다. 집수리 전문가의 광고성 동영상과 손수 한 사람 등 여러 가지가 올라와 있었다. 물을 내리는 원리는 변기 내부의 메커니즘이니 손댈 건 없고 물통과 변기를 해체하여 굳은 시멘트를 떼어내고 새로 바른 것이다. 우리 집 여자들은 시멘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기마자세로 볼일을 보게 됐다며 호들갑을 떤다. 며칠 동안 나비처럼 앉으라고 했다. 백시멘트에 급결제를 섞어 급하게 해치웠다.
예전엔 부뚜막 미장도 곧잘 했다.
팔십 년도 어수선한 시절에 직업훈련소 미장과를 수료했으니 이사할 때마다 역기를 새로 만들었다. 미장이란 말처럼 건축의 완성은 미장공의 매끈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쉬는 날 소소한 집안일을 한다. 마당엔 상추가 전성기라 저녁답엔 상추 쑥갓을 뜯어 쌈 하기로 한다. 오후엔 시내 나가 식료품과 쌀을 사러 나간다. 그전에 마당 개 데리고 가까운 계곡에 다녀와야 한다. 요즘엔 우리 집 형편이 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산책과 간식 사료 자잘한 예방약 등 챙길 게 많다. 집에서 기르는 개라도 진드기와 심장사상충은 예방해야 한다. 산책할 때 리드 줄도 두어 가지는 갖췄다. 얼마 전 가봉을 거쳐 근사한 우비도 만들어 주었다. 모두들 식구 된 개를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데 그건 개에게 주는 것보다 그에게서 받는 게 많기 때문이다. 일상의 우울감을 해소하는 덴 이런 것들이 훌륭한 위로가 된다.
한겨울 아닌 담에야 느긋하게 턱 괴고 책 읽기는 어렵다. 소소한 일이 여기저기 튀어나온다. 매일 공부하는 외국어는 도통 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한다. 대체 그 나라의 땅에서 나는 걸 먹고 숨 쉬고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사는 사람의 네이티브 랭귀지를 어찌 흉내 낸단 말인가. 중국어나 일어를 1급 수준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지 못하면 공부만 잘하는 바보나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산하에 맺혀 흐르는 역사는 언어와 함께 개인의 감수성을 키우는 공동체의 질료다. 정치가 중에 판검사가 많다는 건 불행이다. 공부만 잘한 사람의 품성은 믿을 게 못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의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 정치한다고 설치는 걸 보면 걸어 다니는 재앙이 따로 없다고 느낀다. 미숙한 어른은 미숙한 사회에서 파리 알 까듯 구더기처럼 밀려 나온다. 기소하고 판결하듯 대중을 내려다보는 율사(律士)의 정치라니 웃기지 않은가. 율사도 율사 나름이다.
군청 밖이 시끄럽다는 전언이다. 돈 먹은 군수 나가라고 시민단체에서 나온 모양이다. 공복의 자리를 치부의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미숙한 인간은 물러나야 마땅하다. 주둥이가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비리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온다.
우울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땐 지나간 여자를 생각하고, 오늘내일해야 할 소소한 일거리를 되뇐다. 기억을 흙손으로 다듬으면 못난 것도 이쁘게 미장이 된다. 무엇을 이루려는 욕심 없으니 지극히 편안한 마음인데 머리 검은 짐승인 담에야 어찌 근심 하나 없으랴. 공부하고 그리워하다 죽는 게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