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89)

날 점점 더워진다.
더디게 올 것 같던 봄은 이제 허리춤만큼 물이 차올라 산야는 성숙한 초여름이다. 꽃이란 꽃 죄다 떨어지고 여름을 준비하는 참나리가 산뽕나무 아래 새끼 친다. 파란 오디가 달린 뽕나무에서 하얀 실이 늘어졌다. 죽은 채 지내던 겨울 지나고 봄 오면 풀과 나무와 똑같이 벌레도 기지개를 켠다. 번식은 생존의 진행이다. 살아 있음으로 생성하고 소멸한다. 공생은 번식의 호기지만 누구에게나 곁을 주며 사는 건 아니다.

봄장마 같던 비 그치고 강물의 탁도 가라앉자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에 나타난 가마우지는 읍을 관통하는 천변까지 점령해 아침저녁마다 편대 비행으로 시위하듯 공중을 날았다. 이른 봄까지 흔하게 보았던 청둥오리의 개체수가 줄어든 건 그 무렵이었다. 백로 왜가리 등 큰 새는 워낙 적은 수로 다녀서 별반 차이가 없는데 청둥오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가마우지의 습격이 현실이 된 건가. 녀석들은 물 바위에 올라앉아 물 바닥을 노려보거나 물살에 고개만 내놓고 떠내려 가다 잽싸게 솟구쳤다 곤두박질치는 자맥질로 사냥한다. 씨 마른 강의 자원이 바닥나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종의 멸절을 그다지 염려할 건 없다. 지구 역사 이후로 종은 멸절과 생성을 반복했다. 다만 산업 시대 이후 인위적인 멸절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생태는 인간이 간섭하지 않으면 스스로 살아간다. 어느 해 바다 양식장의 가마우지 피해가 심해 몽둥이로 때려잡는 화면을 본 적이 있다. 타살(打殺)은 야만적인 학살이다. 일본의 어촌에서는 봄이면 뭍으로 몰린 돌고래 떼를 작살과 몽둥이로 때려잡는다. 마을 앞바다는 시뻘건 핏물이 가득하다. 섬나라 일본은 남의 나라를 침략, 약탈 강간 학살을 밥 먹듯 하고도 일체의 반성이 없는 지구 상에서 가장 그악한 종족이다. 피해자의 끈질긴 적의를 지겹다고 하는 심리를 용서할 수 없다.

여름 강마을에는 일찍 해가 뜬다.
해는 강 건너 직벽을 넘어가기까지 종일 마을을 비춘다. 살을 태울 것처럼 뜨겁긴 해도 그 덕에 농사를 짓는다. 농사 형편이야 예전엔 대추나무 일색이었고 지금은 고추나 감자 옥수수를 심는다. 논이라곤 뼘 뙈기도 없어 예나 지금이나 강마을 사람들은 쌀을 사서 먹었다. 장에 가려면 직벽 옆으로 난 산길을 걸어 다녔다. 해뜨기 전 집을 나서면 오밤중이 되어서야 소금에 절인 고등어를 새끼에 꿰어 들고 돌아왔다. 마을 앞에 다리가 생긴 지도 삼십 년 전이라 그 전에는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물살 빠른 강을 건너다 빠져 죽는 이도 생겼다. 섬 아닌 섬이었다. 큰 물 지면 붉덩물 넘치는 강 건너는 건 꿈도 못 꾸고 마을 뒤편 에움길로 돌아다녔다. 장마가 길었던 어느 해 물에 가까운 집 몇 채가 물살에 떠내려 갔다. 학교 가는 아이들과 대추 농사 지어먹고사는 어른들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강 따라 신작로가 생기고 다리가 놓이면서 발목 굵어진 아이들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이별하고 꿈을 안고 대처로 떠났다.

점심때까지 해는 직벽을 훑듯이 비춘다. 봄철 잦은 비로 파릇하게 되살아난 돌단풍과 부처손이 햇살에 말간 얼굴을 씻는다. 초소에서 오가는 소나무 실은 차량을 단속하는 근무원들은 점점 햇볕이 부담스럽다. 정오 들어 달구어진 컨테이너 초소는 홧홧하게 달아오르고 길 양켠으로 숨을 데라곤 없다. 도시락을 먹고 교대로 휴식할 땐 차 대가리를 흔적만 남은 예전의 오솔길에 처박아 그늘을 확보한다. 비릿한 수목의 냄새와 후텁한 공기가 목덜미에 달라붙는다. 고마운 그늘이다. 오후 세 시가 넘으면 초소 주변은 온통 산그늘에 잠긴다. 한 사람은 늙고 한 사람은 가난한 초소 근무원은 행복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산그늘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감사의 근원은 사람보다 생태의 상황이다. 생성과 복원, 그리고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는 자연은 인간의 틈입과 간섭에 순환의 고리가 깨졌다. 대상화한 생태의 입장은 위태롭다. 지금은 산그늘에 감사해야 할 때다. 작가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는 '숲, 강, 바다, 풀, 벌레, 꽃, 도시 그리고 인간은 지금 그 존망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삼라만상의 일원으로서 여기 살 수 있다면 작은 혹성이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적어도 앞으로 천 년이나 2천 년의 문명을 이 지구는 우리에게 허락해 줄 것이다.'라고 절망적인 언어로 희망을 말한다.

그늘이 생기면서부터 근무자는 총기를 띠기 시작한다. 오가는 화물차의 적재함을 주의 깊게 살피고 길 숲 붓꽃의 상태를 관찰하기도 강바닥의 잉어를 눈여겨본다. 어제보다 부푼 직벽의 부처손을 감상하거나 산뽕나무 오디의 숙성 정도를 가늠한다. 쾌적한 조건의 근무는 심신을 씻어주고 사물의 인식을 새롭게 한다. 일상의 자잘한 부조리와 속악한 저간의 사정에 귀담지 않는다. 역사에서 드러난 일체의 반 인간 반생태의 기억에 대한 소환을 잠시 유예한다. 한 손에 신호봉을 들고 강바람 맞으며 길을 오간다. 캠핑카가 지나고 몸에 쫙 붙는 유니폼을 입은 자전거 라이더가 줄지어 달린다. 가죽 바지를 입은 모터사이클 라이더가 땅을 흔들며 지나가도 모른 체한다. 햇살을 주거나 그늘을 만들 거나 바람을 일으키는 건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 활동이자 의미망이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이토록 신기한 별은 다시없을 거다. 나는 잠시 바람이 되고 한 점 그늘이 되고 국수나무의 떨리는 작은 잎이 되고자 한다. 하늘의 구름으로 흩어져도 좋겠다. 성가신 건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 돌리려는 인간의 생각이다.

집에 돌아가 마실 막걸리는 고이 숙성 중이다. 가물에 콩 나듯 술 빼는 새벽 알바에서 얻은 막걸리는 우울한 저녁 훌륭한 위로가 된다. 오늘 새벽 양조장에 갔다. 마당 개는 희붐한 어둠 속에서 꼬리 치며 따라온다. 미안하게도 오늘은 산책이 없는 날이다. 혼자 가기야? 머리 쓰다듬고 대문 나서니 녀석은 뜨악한 얼굴로 바라본다. 술통에서 쏟아져 나오는 술을 병에 담고 마개를 씌우고 드릴로 밀봉한다. 초장에 드릴이 말썽을 부렸다. 도무지 힘을 쓰지 못한다. 수명을 다한 모양이다. 낡아 고물 난 도구를 보면서 나 같단 생각을 했다. 기억 속에서 또 하나 위안이 되는 것 여자에 대한 건데, 그녀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적당한 탐욕을 걸친 여자는 눈부셨고 삶의 의욕이 넘쳤으나 때론 그것이 걸림돌이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삶은 변화의 속성을 지녔다. 변화와 성장이 없는 삶은 퍼닝처럼 들리지만 죽은 삶이다. 목수정의 말처럼 열 번의 사랑을 하고 열 번의 삶을 살았다. 그녀들은 애잔하고 슬픈 존재였지만 사랑스러웠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동과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하룻밤처럼 기억하기를. 뭇별 쏟아지는 밤이나 눈 내리는 날 바람 같은 여행은 축제였고 충일한 일탈이었다. 함께 마신 바람과 어둠은 잔잔하게 핏줄을 타고 흐른다. 이제는 산티아고 노인처럼 집으로 돌아와 숨 넘어갈 듯 펄떡이는 청새치의 기억을 해진 그물 깁듯 메꾸는 거다. 축제 뒤의 적요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섯 시 되면 산촌유학 아이들을 태운 노란 통학버스가 다리를 건넌다. 아이들이 하나둘 내린다. 하나 두울 셋... 오늘은 열두 명이다.
한 아이가 모자란다. 휴가 얻어 집에 간 걸까. 저녁 밥때까지 아이들은 이팝나무가 둘러친 마당에서 공을 차거나 마을회관 정자 주변에서 뛰논다. 강마을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고통과 우울이 때로는 기적을 일구어내듯이 고독과 외로움은 삶에서 소중한 거름이 된다. 퇴근이 가까우면 그늘의 공기와 아직 반짝이는 강물결이 일으키는 선득한 기운에 정신 차린다. 종일 상상과 망상을 버무리며 지냈다. 도시를 떠나 시골 살이 하면서 고마운 건 늘 나무가 곁에 있다는 거였다. 나무는 서 있는 모습 그대로 영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불 탄 숲을 보는 것만큼 처참한 기분이 없다. 나의 육신이 연기에 그을려 뒹구는 느낌이었다. 나무는 사람이 심어 가꾸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간다. 심지어 숯으로 남은 등걸은 서로 기대고 푸른 하늘을 이고 살았던 자신들의 DNA를 기억해내고 숲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나무의 피부를 벗기고 독약을 칠하며 나무를 통제하지만, 나무는 무너지면서 인간의 행위를 조롱한다. 자신의 다리에 독을 칠하는 미래는 보지 못하는가. 인간은 꽃을 감상하고 즐기면서 나무의 심기를 살피는 덴 인색하다. 아니 무지하다. 나무는 새를 불러 노래하고 바람과 햇살을 품에 안아 숲을 빛나게 한다. 나무는 필요한 만큼만 저장하고 모자라면 버틴다. 계산적이고 보상을 바라는 인간과 달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단다. 인간종을 제외한 것들만 스스로 그러한 삶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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