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遺棄)
이틀 전부터 휴양림 계곡에 개가 돌아다닌다.
야간 근무자 말은 숙소 밖에서 테라스 유리문을 긁는 걸로 봐서 숙박 손님이 의심된다는 거였다. 그날 이후 갈색의 닥스훈트가 계곡을 배회했다. 오늘 아침 그 녀석과 처음 대면했다. 닥스는 산림휴양관 목교(木橋)를 건너 안내실 쪽으로 내려오다 나와 마주쳤다. 부르자 잠시 보다 도로 올라간다. 주인을 찾으려는 듯하나 무인지경의 휴양림 안에서 녀석은 먹을 것 잘 곳도 없이 며칠 밤을 보냈을 거다. 도시의 가정에서 귀염 받고 살았을 녀석이 어찌하다 버려졌을까. 닥스 훈트(Dachshund)는 오소리 사냥개다. 토끼나 여우를 사냥하는 수렵견으로 허리가 길어 꾸준한 운동이 필요한 개다. 어릴 때는 천방지축이라 훈련을 통해 성격을 교정하면 똑똑한 견종이다.
바닷가에 살 때 피서철 지나면 주인 없는 개들이 해수욕장이나 건어물 거리를 쏘다녔다. 무턱대고 따라오거나 꼬리 치는 놈들은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를 달게 먹었다. 지자체에서 처리하는지 찬바람 불면 녀석들의 모습도 하나둘 사라졌다.
유기는 버리는 행위다.
기(棄)는 '버리다'는 뜻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어쨌든 유기는 소유나 관계를 끊는 행위다. 부모를 버리는 행위나 자식을 버리는 것을 인륜의 죄로 다스린 건 오래된 습속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를 배반하는 것도 마음으로부터 떠나는 유기다. 욕망이나 집착으로부터의 탈주는 유기라기보다 체념이란 불교 용어다. 체념은 일체의 갈등과 번뇌로부터 탈아의 경지로 승화하는 해탈의 단계와 닮았다. 단념이나 포기와는 다르다. 단념은 마음을 접는 상태로 더 이상의 확장된 사유를 거부하는 행위다. 체념은 사유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초월적 가치를 내포한다. 나의 몸과 정신으로부터 내치는 행위는 이미 대상에 대한 폭력적 분리의 선언이다. 그것이 약자 거나 소수자의 경우 유기된 대상은 죽음과 직면할 수도 있다. 불편한 전통과 성가신 가족,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동시에 가지지만 유기 또한 그렇다.
실은 인간은 본래부터 유기된 존재다. 누구도 태어날 조건과 상황을 정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DNA를 물려받는 것도 수억 개의 정자 중 운 좋은 하나다. 세포분열의 과정을 거쳐 모태의 자궁에서 자라는 동안 태아는 자신의 미래를 의식하지 못한다. 국가와 민족, 제도와 습속은 태어나자마자 물벼락 맞듯 끼치는 충격이다. 처음부터 배우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며 아이에서 어른으로 길들여진다. 그가 헤쳐나가는 세상은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는 생존의 기술을 부모와 사회로부터 습득하며 나름의 비법을 터득한다. 도태되거나 보호막이 없는 존재 또한 나름의 생존 기술을 체득한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가는 존재는 유기(遺棄) 상황을 관계 상황으로 변화시키며 삶을 마친다. 관계는 죽음으로써 마감된다. 소거된 기억도 유기의 관계다. 버리고 중단하며 새로운 관계를 도모하다 생을 마친다. 오래전 헤어진 여자와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새로운 바람은 불지 않았다. 이미 유기된 마음은 더께 쌓인 먼지처럼 두꺼운 벽이 생겼을 뿐이다. 무감한 표정으로 뻔한 안부를 묻고 서로 가던 길로 갔다. 서늘한 슬픔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나도 그녀도 유기되었다.
녀석은 잡히지 않을 거다. 수십 명이 그물로 에워싸지 않는 한 녀석은 인간의 손아귀를 피해 필사의 탈주를 감행할 것이다. 그러면서 오로지 꽂히는 건 주인의 품이다. 주인의 냄새와 목소리를 찾아 낯선 계곡을 며칠째 맴도는 것이다. 자신을 버린 주인의 행위는 의식할 수도 알아챌 수도 없다. 자신을 두고 떠난 주인을 원망할 생각도 없다. 그저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기만 바랄 뿐. 이 어찌 황망하고 낭패스러운 상황이란 말인가. 짧은 다리로 바위를 타고 내려가 배 터지게 개울물 마셨지만 매일같이 건네는 주인의 온기가 밴 밥그릇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흐르는 바람 한 줄기에도 주인의 냄새가 묻어올까 코를 벌름거려도 따라오는 건 배릿한 풀냄새뿐.
휴양림 담당 공무원이 출근하자 닥스를 찾으러 나섰다.
담당은 동네에서 올라온 개가 아닐까 의심했다. 휴양림에 애완동물의 동반은 금지되어 있으니 유기견이든 애완동물이든 눈에 띄면 곤란하다. 나는 유기로 결론지었고 어쨌든 닥스는 휴양림에선 잡초 같은 존재다. 뽑아내 말려 죽이는. 그러나 주인에게 버림받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 전이되어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나도 언젠가는 버림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적막한 숲의 아침 냄새가 코에 스민다. 오르막을 걸으니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밴다. 닥스는 어디 갔을까. 어제 누수 공사한 원추리 방에 들어갔다. 창 틈은 실리콘으로 깨끗이 마감 처리됐고 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지켜볼 심산이다.
녀석을 발견했다.
닥스가 묵상의 집 1호실 테라스 아래 앉아 있다. 녀석은 스핑크스 같은 자세였는데 사람이 다가가자 몸을 일으켜 슬슬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녀석을 아예 휴양림 정문 밖으로 쫓아낼 생각으로 계속 추격하며 따라갔다. 녀석은 정말로 정문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담당은 동네서 올라온 개로 확신했고 나도 그러기를 바랐다. 따가운 햇살이 계곡을 덮고 있었다.
점심 전에 담당과 데꼬(지렛대)를 들고 개울에 내려갔다. 폭우로 배수관에 막힌 바위를 들어내려던 참인데 두 개의 바위가 막은 배수로 틈으로 물이 빠지고 있었다. 8목(1目은 한 사람이 들 정도의 무게) 정도의 바위는 조금 들썩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담당은 옆에서 괭이로 흙을 퍼내고 난 삽질과 데꼬질을 했다. 금세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안경알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시야가 흐릿하다. 바위를 고작 십여 센티 옆으로 밀어내는 데 진력을 다한 셈이다. 장비를 쓰기로 결론 내고 둑길로 올라왔다.
당직실에서 담당과 도시락을 먹고 나와 그늘에 세워둔 차에 앉아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졸음이 밀려오면 한숨 자둘 생각으로 있는데 담당이 다가온다. 닥스가 사무실에 들어와 있다는 거였다. 이런, 맹랑한 녀석을 봤나! 가 보니 과연 닥스는 컴퓨터 의자에 엎드려 몸을 말고 있다. 마치 자기 자리인양 편한 자세였는데 다가가자 눈만 말똥히 뜨고 바라본다.
119 구조대가 물차에 포획 장비를 싣고 달려왔다. 젊은 소방수 둘과 선임 소방수 한 명은 차례로 장비와 케이지를 내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두 명의 젊은 소방관은 잠자리채 그물망에 잡힌 녀석을 케이지 넣느라 쩔쩔맨다. 보다 못한 내가 인프런트 킥으로 살짝 닥스의 몸통을 밀어주었다. 그때까지 그물 안에서 몸부림치던 녀석이 케이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찰나, 반대편 케이지의 문이 열리며 녀석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아뿔싸! 주위 사람이 순간 멍한 표정이다. 반대편 케이지의 걸쇠가 풀어져 있던 거였다. 짜증과 화가 났다. 이런 기본적인 일의 순서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니. 나이 든 상관에게 짜증 난 목청으로 따졌다. 이건 ABC 아닙니까? 기본적인 것을 점검하고 일을 시작했어야죠! 예전 성깔 나왔다면 멱살이라도 잡았을 거다. 상관은 급작스레 당한 일이라 자신도 황당한 표정이다. 두 소방관은 닥스가 내뺀 방향으로 몇 걸음 뛰다가 이내 포기한다. 죽기 살기로 도망간 녀석을 쫓아가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경사로를 따라 야영 데크 방향으로 줄달음 치던 닥스는 곧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허탈한 기분이었다. 모두 낙망한 분위기인데 이번엔 담당이 끈을 놓지 않고 한술 더 뜬다. 이왕 출동했으니 모두 함께 따라가 보자는 것이다. 아침처럼 숙소 어딘가에 있다면 포위해서 잡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머지 사람에겐 잠자리채도 긴 용접 장갑도 없다. 맨손으로 닥스를 잡으려다 물리기라도 한다면 아찔한 얘기다. 근본을 모르는 녀석의 이빨엔 광견병의 싹이 숨었을 수도,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녀석에게 속수무책으로 얼굴이나 샅을 물린다면? 뾰족한 대책은 없으나 일단 올라갔다. 상관도 미안한지 허겁지겁 따라간다. 백여 미터를 구보 겸 경보 겸 달렸더니 숨이 차고 이마에 송글한 땀이 맺힌다. 위 편 숙소에 다다를 즈음 건너편 동료가 소리쳤다.
미아(迷兒)
저기 있니더! 녀석은 휴양림 도로가 끝나는 임산 도로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제히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자 이번에는 위협을 느낀 닥스가 아예 날렵한 뒷다리를 뻗어 경주하듯이 달린다. 녀석은 곧 임산 도로 너머 숲으로 사라졌다.
상관은 미안함을 표현하며 다음에 나타나면 연락을 달란다. 그때는 마취총을 쏘아서라도 잡겠단다. 이런... 아까 젊은 소방수와 나누는 얘길 들었다. 처음에 닥스를 놓쳤을 때 젊은 소방관이 마취총 얘기를 꺼내자 상관은 손사래 쳤다. 작은 개는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단 거였다. 그러더니 이번엔 유기견임을 재차 묻더니 마취총을 쓴다는 거다. 이런, 버린 개니 잡다 죽어도 상관없단 얘기다. 허접한 실수도 실수려니와 마취총 얘기에 부아가 끓었다. 주인 없는 개는 죽어도 된다는 논리를 예사로 들먹이는 상관의 말과 니 편 내 편을 갈라 정의와는 동떨어진 집단 무의식의 몰상식이 겹쳐졌다. 이념의 논리로 애국을 앞세워 동족 간의 비극이 일어난 게 불과 수십 년 전 일이다. 국가와 사회는 공동체에서 도태된 이탈자, 소수자를 끝까지 보호하는 데엔 인색하다. 다수의 이기주의고 폭력이자 횡포다. 약자의 배제는 곧바로 소수자의 눈물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공정과 정의의 손길은 소수자에게까지 닿지 않는다.
멍청한 소방차가 계곡을 내려가고 땀이 식기 전에 숙소의 침구를 교체하러 올라갔다. 두 집의 이불과 요를 바꾸고 내려오는데 안내실 앞에 택시가 들어온다. 휴양림에 택시가 들어온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길을 잃는 건 모든 걸 잃는 거다. 그러나 대부분 길을 도로 수습한다. 더러 길을 못 찾는 경우는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궤도 수정은 필요하다. 변화는 삶의 속성이고 성장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지금 가는 길이 내게 맞는 길인가 헛갈릴 때도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길은 제대로 된 길일까. 광속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에서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향해 무한 질주하는 삶의 방식은 맞는 길일까. 양극화로 태생의 조건에서 이미 정해진 삶의 길은 바꿀 수 없는 걸까. 루쉰(鲁迅)은 길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만든 길이 새로 난 길이고 많은 사람이 그 길을 따를 때 비로소 길은 길이 된다고 했다. 때론 자신을 유기하고 길을 잃어도 좋다. 유기는 새로운 정립이고 비움은 채움의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인문학자 고미숙은 '자의식 혹은 인정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 존재가 점점 무거워진다. 무거우면 떠날 수 없고, 떠난다 해도 타자와 접속할 수 없다. 감각이 바뀌고 인식을 전환하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러므로 자의식을 덜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라.'라고 말한다.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 그만큼 세상이 내게로 온다는 뜻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 증식에서 생성으로의 삶이 전개되는 것이다.
유기와 미아는 현존재에 대한 불안과 공포이며, 방향의 상실이다. 고독한 개체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무화된 존재에 대한 저항을 멈출 수 없다. 동물은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만, 동물의 기억과 습관은 인간의 상상 이상이다. 동물행동학에 따르면 동물도 자의식을 가지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는다. 촉각, 후각 등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은 인간보다 뛰어난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난파가 예상되는 배에서 뛰어내리는 쥐, 쓰나미를 알아차리고 산으로 달려가는 코끼리 떼, 주인의 집을 찾아 수백 킬로를 여행하는 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일화는 얼마든지 있다.
심구(尋狗)
안내실 앞에 멈춘 택시가 휴양림 계곡을 날듯이 내려갔다.
잠시 후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다급한 음성이 들린다. 숙소에 입실하는 방문객이거니 했다. 다가가자 젊은 여자가 울상이 되어 미로야, 미로야! 를 외치며 올라온다. 아, 개의 주인이구나 알아차렸다. 다가가 어디서 왔느냐고 어떻게 개를 잃어버렸냐고 빠르게 물었다. 여자는 대구에 사는데 요 며칠 이사하느라 시댁에 개를 맡겼단 거다. 그런데 목줄을 하지 않아 시어머니가 한눈파는 사이 개 혼자 집을 나갔다는 거였다. 개가 실종된 지 하루가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는 거다. 여자는 울음이 섞인 음성으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잃어버린 개에 대한 절실함이 묻어났다. 그동안 닥스는 시골길을 정처 없이 걸어 주인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8킬로나 되는 휴양림 계곡까지 찾아든 거였다. 도시에서 태어나 회색 풍경에 익숙한 녀석은 초록으로 물든 시골 모습에 코를 벌름대며 주인의 냄새를 살피며 걸었으리라. 짧은 다리와 유난히 기름한 등짝에 바닥에 붙은 낮은 시선으로 낯선 풍경을 눈에 담으며 오래도록 걷고 걸었을 거다. 저수지 둑방길 지나 우곡리 가재 마을 지날 때 동네 개들의 경계 섞인 눈초리 피해 휴양림 정문을 통과해 제가 살던 아파트와 흡사한 양옥 건물에 혹시라도 주인이 있을까 살피며 다녔을 거다. 베란다 유리문을 긁어댄 것도 거실에서 새어 나오는 텔레비전 소리, 밝은 조명 등이 살던 환경과 닮아서 그랬으리란 짐작이 갔다. 미로의 여정이 스크린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결국 닥스는 아니 미로는 유기된 것도 아래 동네 개도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미아가 된 거였다. 여자는 애타게 미로를 외치며 계곡 이곳저곳에 뚫어져라 시선을 박았다. 여자를 임산 도로 입구까지 태워주었다. 비가 잦은 요즘 오늘은 유난히 쨍하게 파란 하늘이다. 반가운 해후가 곧 이뤄질 것 같은 기미가 때죽나무 이파리에 어른대는 햇살처럼 환하다. 물소리 산새 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는 휴양림 계곡의 어디쯤에 미아가 된 개가 숨어 있을까. 난폭한 인간의 손길을 피해 쇠창살의 케이지를 뚫고 달아난 미로를 빨리 찾기를 바라면서 당직실로 내려와 퇴근 준비를 했다. 샤워기의 물소리에 섞여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찾았다고! 옆 사무실에서 담당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히 몸을 닦고 나가니 일층 안내실에 여자가 미로를 부둥켜안고 어쩔 줄 모른다. 퇴근길에 미로와 주인을 과수원 시댁까지 태워주마고 했다. 여자는 미로를 안고 이층에 올라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사를 연발했다. 모두 빙그레 안도의 미소를 보냈다.
계곡을 빠져나가며 평소의 길과 다른 저수지 둑방길을 타고 내려갔다. 쪼개진 타원형의 호두알 같은 저수지는 계곡형이라 수심이 깊다. 저수지를 빙 둘러 닦아놓은 길을 달리는 기분은 늘 상쾌하다. 비탈면에 심은 오리나무는 잎벌레의 공격을 받아 그물처럼 잎맥만 남긴 채 신음 중이다. 길까지 내려온 칡덩굴은 진보라색 꽃송이를 피우려는 참이다. 칡꽃과 조록싸리 꽃이 필 무렵은 성하(盛夏)로 접어드는 신호다. 여자는 뒷좌석에 앉아 개와 얼굴을 비비느라 창밖의 풍경엔 별무 관심이다.
Miro란 이름에 대해 물었다. 미로(迷路) 같기도 해서 길을 잃어버린 것 아니냐고 농을 쳤다. 여자는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여유도 되찾았다. 급하게 오면서 만들어 온 전단지를 보여주었다. 다 완벽한데 이름이 빠진 걸 말해주었다. 혹여 낯선 이라도 자신의 귀에 익은 이름을 불러준다면 무턱대고 달아나진 않을 거라고 했다. 만일을 위해 떨어진 인식 목걸이도 새로 달아주고 몸속에 넣는 칩도 생각해 보라고도 말해주었다. 여자는 순한 아이처럼 그러마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억양이 남도 사투리라 고향을 물었더니 완도란다. 광주에서 직장에 다니다 경상도 남자를 만나 결혼했단다. 아이는 둘이고 집에는 미로 말고도 개가 두 마리 더 있다고 했다. 엄마가 해녀라며 내려가면 남도 푸른 바다의 해산물이 지천이란다. 예전에 여수에서 삼 년을 살았다고 말해주었다. 벌어진 상처가 돋아나는 기억이 가슴을 친다. 여자는 물에 빠진 사람이 정신 돌아온 것처럼 잃어버린 개를 돌봐준 은인들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는다. 모두들 좋으신 분들이란다. 사실 다 좋은 건 아니다.
동료 간의 양보와 배려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긴커녕 과거의 이력을 자랑하며 일을 피하고 살살 꾀만 피우는 놈도 있다. 사업 망하고 배우자에게 패악 부리다 쫓겨나 시골로 숨어들었음에도 반성과 성찰의 기미는 엿 바꿔 먹고 간신 밉보지 마냥 눈치와 아양으로 때우는 허릅숭이가 있다. 시골은 루저의 도피처가 아니다. 아내를 쥐 잡듯 한 과거를 젊은이에게 자랑처럼 말하는 놈에게 무슨 대화며 소통을 바랄까. 윗사람에게 지적당하지 않고 자리보전만이 최선인 청자구. 평생 한 세상만 보며 살아 창의적 상상은 아예 싹이 죽어버린 사람, 사유는 막히고 생각하기를 성가셔하는 무식한 촌놈의 전형, 조직 이기주의만이 살길이라고 위계 사회에 난짝 엎드리는 복지부동의 속악한 반거들충이가 모인 조직이 세상에는 많다. 기간제는 을이고 소수이며 약자다. 분명 계약 사항에는 없는 객실 청소를 남성 노동자들이 꾸역꾸역 한다. 근로계약서 업무(임무) 내용은 휴양림 순찰 및 이용객 관리, 화장실•샤워장 청소, 야영장 이용객 질서 계도 및 물품 임대, 조경 및 주변 환경정비 등이다. 참여 기간도 연말까지로 되어있으나, 예산 범위 및 내부 사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으로 되어 있다. 나가라면 나가라는 식이다. 낮게 사는 사람에게 푼돈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지자체의 기간제는 세 번 연속할 수 없으나 실제론 연속 근무가 많으며, 중간 퇴직이나 불상사로 그만둔 경우 다른 일자리 구직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소위 블랙리스트다. 합당한 항의에 얼굴 찌푸리면 찍소리 못한단 얘기다. 방문 요양보호사는 시골의 경우 밭 매고 콩도 턴다. 대상자의 일 범위 밖이라도 속옷까지 빨아준다. 장시간 저임금의 오십 대 여성노동자의 현실이다. 어떤 대상자는 나 때문에 당신이 돈 버니 일할을 통장에 넣으란 요구도 한다.
여자는 미로를 끌어안고 쓰다듬느라 바쁘다. 목재체험장 건너편 과수원 골짜기에 시댁이 있었다. 주변이 온통 사과나무다. 초복 지나 테니스 공만 한 푸른 사과 알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여자와 미로를 내려주고 집으로 왔다. 여자는 미로를 안고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터뜨리며 사과나무 가지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얼마만의 환대인가 라는 생각에 웃음이 번졌다. 양조장 지나는 들판에는 종아리가 시커먼 벼가 오후 햇살에 물결을 이룬다. 여름 한가운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