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무식하고 이기적인 데는 약도 없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몽둥이가 약이다. 도로변 공유지에 농작물을 심어 길러 먹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나 시골이나 흔한 풍경이다. 땅 없으니 오죽하랴 싶기도 하다.
하천 부지에 농작물을 가꾸는 구부정한 노인을 매일 보았다. 꼭두새벽에 자전거에 삽을 매달고 야금야금 밭을 만드는 정성과 수고가 평생 농사 본능으로 산 노인의 특기처럼 보였다. 어쩌면 노인의 유일한 낙이고 존재 이유일지 모른다. 큰 물 지면 쓸려 내려가기 십상인 하천 밭을 부지런히 매만진다. 돌 굴리는 시시포스처럼 노인의 노동은 계속되었다.
군청에서 팻말을 세웠다. '경관 수목을 식재할 예정이오니 경작 행위를 금합니다' 언제 철거장이 날아와도 먹고살아야겠기에 끈질기게 접었다 펴는 포장마차나 좌판과는 다르다. 노인의 섭섭한 얼굴이 알림판과 겹친다. 하천 부지와 도로변은 같은 공유지라도 급이 다르다. 얌체 같이 도로변에 제 것 심어 가꾸면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다른 이는 할 줄 몰라서 안 하나.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타인에게 방해되는 행위는 삼갈 일이다.
새벽 양조장 가다 보았다. 회전로터리 인도에서 비탈 쪽으로 낮은 옹벽 위에 기름한 밭이 생겼다. 토양침식 방지를 위해 옹벽 위 비탈면에는 풀씨를 심었다. 설늙은 사내가 새벽에 나와 급하게 밭을 맨다. 앞쪽에는 푸른 파가 싱싱하게 커간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눈길을 피한다. 좀 진행하니 웬걸! 비탈면에 일 미터 폭으로 기름하게 제초제를 쳤다. 풀 색깔은 이미 누렇게 변했다. 제 것 가꾼다고 공유지를 갈아엎은 것도 모자라 풀약까지 치다니. 집 가까운 공유지를 목표로 삼았음이 분명했다. 멱살 잡아 패대기쳐도 시원찮을 일이다. 대로변에 이딴 저지레를 하는 심보는 더러운 욕망이 내면화된 전형이다. 답도 없다. 아깝디 아까운 소중한 제 돈 물어내는 과태료를 듬뿍 선물로 안겨야 한다. 산책길 천변 노인은 새벽마다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위태롭게 굽은 등만큼 자전거도 늙었다.
일이 바빠 그냥 지나쳤다. 점심 전에 군청 민원실에 전화했다. 졸린 목소리의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처리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