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나타났다!

by 소인

멧돼지가 나타났다!


오후 들어 풍혈 앞에 앉아 등짝에 얼음 바람 쏘이고 있었다.

길 위쪽에서 오는 승용차가 비상등을 켠 채 느리게 온다. 자세히 보니 길 위에 작은 점이 움직인다. 고양이 새끼나 날기 전의 꺼병이(어린 꿩) 같았다. 일어나 다가가니 멧돼지 새끼였다. 두 달이나 됐을까. 녀석은 내가 막아서자 방향을 바꾸며 달아나기 바쁘다. 길 반대편은 강의 축대가 높아 가지 못하고 산 쪽은 배수로가 길 옆에 붙어 건너뛰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산에서 형제와 놀다 길로 나선 놈 같았다. 형제 중에 일탈을 저지르는 놈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 종례시간 전에 친구들을 모아 땡땡이쳤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날 부르면 종아리 걷고 회초리 맞았다. 악동의 비행은 어느 날 선생님이 아픈 허리를 잡고 힘없이 치는 회초리에 끝났다. 어린 생각에도 선생이 안쓰러웠나 보았다.


경광봉을 흔들어 동료를 불렀다.

동료와 나는 녀석을 배수로로 유인했으나 녀석은 끈질기게 길로만 달아난다. 잡을 순 있었으나 자칫 물기라도 하면 바이러스 충돌이 생길지 모른다. 한편 숲 속 어딘가에서 어미가 이빨을 도사리며 쳐다볼지도 모를 일이다. 난 연신 경광봉을 좌우로 흔들며 오가는 차량을 막았다.

흔치 않은 광경을 본 차들은 다행히 순하게 서 주었고, 빙그레 웃거나 카메라에 담으며 천천히 지나갔다. 부모와 가던 초등생은 '멧돼지 저 주세요'한다. 잡을 수나 있간디! 순간 녀석이 배수로로 뛰어내렸다. 동료와 끈질기게 배수로 끝으로 몰아 숲 쪽으로 가게 했다. 나뭇잎에 몸을 숨긴 녀석은 잠시 머뭇대다 조용하다. 사라진 듯했다. 필시 후각이 예민한 어미가 와서 데려갈 거다. 예전의 나처럼 회초리 좀 맞겠지. 통통하고 재바르고 깜찍하게 생긴 새끼 멧돼지를 오랜만에 보니 생태는 우리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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