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91)
에어컨을 가장 낮게 틀고 아침나절 산그늘을 달리는 느낌은 쾌적하다. 여름으로 접어든 무렵의 숲 공기는 눅진한 기운을 풍겨서 창문을 내리고 공기를 쐬기란 돌부처 같은 무념무상으로 라야 가능할지 모르겠다. 비릿한 꽃 비린내의 기억 때문인데 요맘때의 밤느정이 냄새는 남녀의 성애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무슨 요망한 생각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동물의 성합은 시도 때도 없는 법이다. 누에나방에서 추출한 페로몬 이후 같은 종의 화학적 의사소통은 발전을 거듭했는데, 밤꽃 필 무렵 바늘로 무르팍을 찌르며 밤샌다는 과부는 고릿적 얘기다. 요새는 페로몬의 전신 갑옷으로 무장한 암수가 성합의 광장으로 수시로 출몰하는 세상이다. 주변에 널린 매체에서는 만족스러운 성애야말로 지상 최고의 행복이라고 광고한다. 성애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는 사람 같다. 그러나 포르노는 진정한 의미의 섹스는 아니다. 거기엔 성애도 사랑도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벚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버찌가 탁탁 터지는 소리가 난다. 참새가 열매를 쪼다 차를 힐끗 보더니 통통통 튀어 피한다. '벌집 삽니다'란 간판이 보이니 M면에 도착했다. 강줄기를 따라 십 분 더 가면 근무지가 나온다. 오늘도 일찍 나왔으니 합수머리 길가에 차 대고 쉬기로 한다. 월드 라디오에서 일본어 흘러나온다. 검은색 티와 검은색 반바지로 뒤발한 커플룩을 입고 손잡은 남녀가 걸어간다. 저리도 좋을까. 남녀의 행복한 표정이 길바닥까지 철철 넘쳐난다. 요의를 느껴 느티나무 아래서 오줌 눈다. 느티나무 둥치며 옆의 단풍나무 밑동에도 기름한 송충이가 다닥다닥 붙었다. 부쩍 늘어난 놈들은 주홍 꽃매미처럼 외래 해충인 듯싶다.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고 징그러운 놈까지 꾸역꾸역 몰려든다.
아까 본 라이더가 낙동강변을 시원하게 달린다. 덩치가 산만 한 그는 기다란 자전거를 한 손에 끌고 고개를 넘고 있었는데 무척 힘들어 보였다. 이태 전에 나도 시도한 길이다. 완만한 언덕이 일 키로 이상이나 이어져 웬만한 근력으론 내리지 않고 넘기 어려운 고개다. 내리막길은 고개보다 두 배는 길지만 쌩하니 바람과 스피드를 즐기다 보면 어이없게도 빨리 끝나버린다. 삶도 마찬가지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렇다고 어이없는 죽음이나 어이없는 절망은 없다. 생의 결말은 모두 비루하게 끝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짝이는 것에 매달려 쫓아가면 거대한 낚싯바늘을 삼키고 마는 무늬오징어처럼. 모든 빛나는 것들은 의심하는 게 좋다. 미리 깨닫는 게 급한 추락을 줄일 수 있을 거다.
휴일엔 라이더가 지나고 마라토너가 지나간다. 모터사이클 라이더는 기름을 채우고 시동 걸며 점검 중일 거다. 집을 매단 캠핑카가 어깨를 으스대며 지나간다. 나이 든 남녀가 차 세우고 다리 위에서 강잉어를 구경한다. 여자가 손으로 가리키며 잡고 싶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른다. 구경을 마친 남자가 다리목에서 자지를 꺼내 오줌을 갈긴다. 멀리 굽잇길엔 오는 차가 없다. 만약 나타나도 오기까지 십여 초는 걸리니 그 안에 시들한 오줌발 정도는 너끈히 끊어내리란 셈속이다. 자지 털고 돌아선 그를 벚나무 아래 앉아 빤히 쳐다본다. 그의 얼굴이 구겨진다. 나도 그랬어, 씹새꺄! 그들이 시원하게 떠나자 잉어가 긴장을 푼다.
살다 보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충분히 불행한 건 아니다. 불운은 태생적이었고 이후로 늘 등짝을 따라다녔지만 실은 내가 의지적으로 조장한 경우도 많았다. 애먼 식구만 고생한 셈이다. 가난한 사람은 선하거나 게으르다는 건 편견이다. 반대로 부자가 독하고 기회주의적이란 것도 심한 편견이다. 더러운 욕망이 내면화된 인간을 티피컬 하게 구별하는 건 무의미하다. 차라리 운과 불운을 따지는 게 옳다. 나는 지금 지극히 행복한 축에 속하는데 그건 적당한 불운과 불행의 편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강 건너 행복을 상상하고 행운을 상상하는 것 또한 즐기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매일 강으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