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43)


마지막이란 생각을 한다.

웃고 떠들며 마시고 먹던 희미한 옛사람의 기억, 가고 싶었던 곳을 기어코 찾아가 이번이 마지막이란 혼잣말을 되뇐다. 주변의 풍경과 바람, 옹이 진 나무의 등을 쓰다듬는다. 여기를 스쳐간 사람들의 얘기에 귀담고 그들의 희망과 가치를 내 것과 견주어 본다. 다시 올 시간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인연도 흔적도 남기지 말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진다. 고집처럼 굳은 확신은 신념이 되어 딱지로 앉았다. 가족도 불편하면 떨어져 사는 게 낫다. 가족이란 이유로 상처를 주고받는 게 습관이 되면 상처가 깊어져 영영 치유가 어려울 수 있다. 가끔 만나 행복하면 그쪽을 택할 작정이다. 일상에서 되풀이하는 행위와 자고 깨면 무시로 솟는 감정은 죽기까지 그렇다 치고 스노클 장비를 사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지난 주말 바다에 나갔다. 장비를 챙겨 물에 들어갔는데 모래가 형성되지 않은 바닥이라 조개는 보이지 않았다. 십오 년 살았던 텃밭을 떠나니 물 바닥의 사정 헤아리는 건 어려웠다. 숨을 크게 마시고 돌고래처럼 자맥질하며 손발을 저어 수영하고 나왔다. 몇 년째 썼던 꼬질꼬질한 귀마개는 엉성했고 틈으로 짠물이 쉬쉭 소리 내며 파고들었다. 이후 짠물은 골짜기에 가서도 콧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신기할 정도였다. 아내는 비강 청소 잘했다고 놀렸다. 숏핀 오리발은 물갈퀴와 몸체 부분이 떨어져 덜렁댔다. 오래 두고 썼더니 수명이 다한 거다. 작살 고무줄은 여름 기온에 녹아 너덜해져 두고 왔다. 멀쩡한 건 스노클 물안경인데 이것도 언제 망가질지 모른다. 몇 해 전 필리핀 섬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스노클링으로 재미있게 놀았다. 열대의 바닷속엔 사람을 겁내지 않는 대포알만 한 물고기 떼가 바글댔다. 발목에 차는 수중 칼을 깜박 잊었는데 양양 장에서 산 칼은 아직 쓸만하다. 해녀의 물질과 비슷한 장비들인데 낡고 해진 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뭐든 닳고 해지면 본래의 속성을 잃는다. 이별의 단계다.


비싼 장비 아니니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오륙 년 쓰면 다시 쓸 일은 없지 싶다. 동해안 살 적에는 여름이면 바다에서 살았다. 스노클을 쓰고 물속에 들어가 문어 노래미 소라 멍게 게 등을 잡았다. 장갑을 끼고 수심 2,3 미터 모랫바닥에 내려가 조개를 잡았다. 다른 장비 없이 자맥질해서 손으로만 잡는 조개잡이는 운동이 되었다. 여름 끝물엔 허리띠 눈금을 두 개나 줄여야 했다. 한 시간마다 휴식 10분, 두 시간 들어갔다 나오면 20리터 아이스박스가 꽉 찼다. 초코바로 힘을 보충해야 한다. 현지인이 째복이라 부르는 동해안 조개는 살은 작아도 국물 맛이 일품이다. 다른 양념 없이 파 썰어 소금 간만 해도 보얀 국물이 내장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잡은 조개는 바닷물에 담아 구리 동전을 넣어 하룻밤 해감한다. 조개는 달 뜬 밤 사라락 사라락 소리 내며 혀 내밀어 모래를 토한다. 파도와 살아온 조개의 내력은 조개껍질에 무늬로 새겨졌다.


오래 알고 지내던 시인이 문자를 보냈다.

평생 병주머니로 살던 시인이다. 그는 내게 남긴 모든 답글을 지우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죽음을 예감한 사람의 비감한 부탁이었다. 그러라고 했다. 이후 시인의 안부는 모른다. 인터넷 장례사가 있지만 흔적은 남기지 말고 떠나는 게 짐 덜고 홀가분할 것 같다. 기억은 남은 자의 몫이고 종말을 경험한 나는 알 바 아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는 어느 시인은 사람은 떠날 때도 분리수거를 한다고 했다.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습속이 얼마나 질긴지 실감한다. 일인가구가 30%에 육박한다. 이제 고독사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되었다.


살아서 경험하는 것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대상이 새뜻하게 다가온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없고 의미롭지 않은 것 없겠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이 보인다. 가짜로 먹고사는 무리다.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고, 남의 생각을 앞세워 참이 아닌 가짜를 진실로 위장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에게 정의, 공정, 연대는 자기 편만의 개념일 뿐 나머지는 혐오하고 적으로 몬다. 한두 해도 아니고 근대 백 년 동안 대를 이어 우려먹으니 나라는 나라대로 기 빠지고 허재비 같은 몰골이 되고 말았다. 선대는 집 팔고 논 팔아 독립운동에 몸 바치고 사서 고생했던 민주 혁명가는 찢겨 죽고 저항하는 대중은 가두었다.


지금도 갈가리 찢긴 정신과 분열된 몸은 상호 존중은 관심 없고 진영의 논리만 판친다. 이래선 안된다고 나선 사람들의 목소리는 기어들고 어느 나라 언론인지 분간되지 않는 언론과 방송은 다른 나라의 입장을 두둔하고 급기야 분열과 싸움을 부추기고 정권의 발꿈치가 달걀 같이 이쁘면 이쁘다고 씹어댄다. 법의 칼을 입맛대로 휘두르던 조폭의 두목 같은 자가 지역 텔레비전에 나와 경제 어쩌고 떠드는 걸 보았다. 식견의 좁음은 관두고라도 허접한 세계관이 엿보여 실소하고 말았다. 아, 역시 조악한 시민은 조악한 대표를 뽑는구나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선거 때까지 후회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거칠게 서로를 물어뜯을 게 뻔하다. 자유롭게 어수선한 의견이 모였다 흩어지는 민주의 원리는 사라지고 진영 안에서조차 서로 죽자고 덤비는 현실이 되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인류 시원의 정신이었던 상호부조의 원리는 사라졌고 니 편 내 편밖에 없는 듯하다. 나는 진정 우리 편이 맞는지 수시로 자신을 검열한다. 식민과 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며 단단하게 성장해 왔다는 믿음은 허울뿐인 신념이었고 이제는 너 나 우리 모두 물질과 권력, 명예에 집착하는 좀비가 되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는 게 아니라 털면 모두 개판이 된다. 간사한 머리로 공부만 한 것들은 거대한 깡패 조직이 되어 시민을 쥐락펴락한다. 어느 천년에 이런 무리를 쓸어 버리겠나. 마지막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쾌락의 무한대를 향해 달리는 좀비의 무리는 잠자는 동안에도 세포를 증식한다.


작살 고무줄, 숏핀 오리발, 스노클 물안경, 귀마개를 주문했다. 여름철 해수욕객이 훑고 지나간 바닷속은 처참하다. 갯바위에 붙어살던 섭, 고동 등은 깡그리 약탈당해 버짐 핀 아이의 머리처럼 허옇다. 모랫속의 조개는 더 깊은 수심으로 달아나고 물놀이꾼이 버리고 간 폭죽, 찢어진 수영복, 수박 껍질이 나뒹군다. 텅 빈 해변에 금속탐지기를 멘 사람이 동전을 줍고, 자원봉사자가 쓰레기를 담는다. 생태는 빠르게 회복하지만 연이은 약탈은 복원의 의지마저 꺾어버린다. 사람 손타지 않은 해변에서 빨대를 물고 물속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멸치만큼 자란 학꽁치 떼가 몰려다니고 바위틈에 숨은 돌게가 눈치를 살핀다. 보호색으로 위장한 문어가 숨죽인 채 노려보고 너럭바위에 붙은 멍게는 숨구멍을 활짝 연 게 마치 붉은 장미꽃 같다. 물안경만 쓰고 물속을 다녀도 여행의 맛을 느낀다. 배 아래 모래 쓰고 숨었던 넙치가 몸통을 너울대며 쏜살같이 도망간다. 통통통 물속에 들어가면 지나가는 고깃배의 엔진음이 헬리콥터처럼 들린다. 파도가 몸을 밀어 올린다. 자궁에서 헤엄치는 태아처럼 몸을 구부려 빙글 돌린다. 사방에서 받쳐주는 물의 애무, 고단한 삶에 무리가 없다. 모든 관절이 헤실헤실 풀어지고 아가미를 단 해저인이 되어 물속을 누빈다. 잔인한 계절에 떠난 요정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슬픔도 기쁨도 사라진 영토에서 괭이갈매기가 헤엄치고 혹등고래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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