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 (45)
두 시간 넘게 수영하고 왔다.
집에 오니 발바닥이 벌겋다. 화상이다. 해변에 텐트 치고 십여 미터를 맨발로 걸어 물에 들락거렸는데 땡볕에 달궈진 모래는 발을 딛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무림 고수는 철사장으로 손을 단련했다는데 고작 뜨거운 모래에 발바닥 화상이다. 물 바닥에 돌이 섞여 조개가 살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죽변부터 망양정 기성 해변까지 비슷한 지형이었다. 삼척 위로 올라가야 조개를 잡지 싶다. 조개는 포기하고 새로 장만한 스노클 장비를 시험하기로 했다. 스노클 물안경에 다는 귀마개는 성능이 좋았다. 고리를 걸어 잃을 염려도 없다.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물안경은 실리콘 재질로 만들어 얼굴에 빈틈없이 달라붙었다. 수심 오미 터 내려가자 물안경의 실리콘과 숨 대롱이 수압에 찌그러진다. 물 바닥은 서늘했으나 물밖에 나오면 햇볕이 태워 죽일 듯이 등짝을 찔렀다. 숏핀 오리발은 클립을 당겨 발 크기를 조절하면 되었다. 가까운 물 바위 주변을 다니며 고동 보말 홍합을 땄다. 말똥성게와 보라성게도 몇 개 넣었다. 스마트 워치는 물속에서도 잘 보였다. 물밑에 노래미와 숭어가 다니고 자리돔보다 작은 물고기가 수천 마리 떼 지어 나타났다 달아난다. 작살 고무줄 시험할 겸 세 번째는 작살을 들고 들어가니 보이던 물고기가 모조리 숨어버렸다. 작은 생명이라도 인간의 변심은 금세 알아차린다.
돌아오는 길도 뜨겁다.
온도계는 34도를 가리킨다. 바다와 내륙을 오가는 도로는 피서 차들이다. 속도를 내도 시원하지 않다. 창문 꼭꼭 닫고 에어컨 바람 쐬며 바다로 육지로 달린다. 무슨 놈의 제한속도를 육십 킬로로 해놓았나. 이동 단속기 피해 가며 속도를 냈다 줄였다 한다. 맨 앞의 차가 규정속도로 가니 줄줄이 행렬이 이어진다. 운전이 서투르면 여자 거나 초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노인 운전자일지도 모른다. 앞 차는 오르막에서 재빨리 차선을 비켜주었다. 붕붕 뒤따르던 차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불볕에 녹아난 아스팔트에 쩍쩍 달라붙을 것 같은데 차는 용케 달린다. 쏟아지는 용암을 피해 달아나는 것 같다.
몸 쑤시는 게 이틀 갔다.
몇 년 만에 물에 들어갔으니 당연했다. 낮에 근무하면서 집 떠날 궁리를 했다. 원죄 같은 내 잘못을 삼십 년 넘게 우려먹는 아내를 떠나야 할 것 같다. 연락을 끊고 사는 자식과 절교한 인연들을 떠올리면 나는 철저히 실패했다. 자식은 크면 자기 인생을 산다.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길 바란다. 아내는 실행하지 못할 걸 아는 것처럼 툭하면 나가 살라고 하더니 내가 일인용 밥솥 얘기를 꺼냈더니 눈치를 살핀다. 내 속의 내장까지 드러내 보이면 침묵할지도 모른다. 태어난 실수를 메우려다 구렁에 빠진 꼴의 연속이었다. 모든 인연을 끊고 「소금」의 남자처럼 펑펑 눈 내리는 저녁 케이크 사서 오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죽음도 홀연한 순간이다. 무엇이 두렵고 안타까울까. 변명도 설득도 결국 그저 그런 어정쩡한 관계 잇기다. 인간은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알고 지내는 게 의미 있던 시절은 지났다. sns의 친구를 삭제했다. 일이 년, 십 년 이상 안부 하나 없는 사이라면 절대 타자 아닌가. 얼굴 모르는 사람의 인사가 고마울 지경이다. 미안하지만 잘들 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