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96)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수제비처럼 점점이 떴다.

동지나 해로 고기 잡으러 갈 때 80톤 중선배는 통통통 물살을 가르며 수제비 같은 다도해의 섬들을 피해 갔다. 화태도 곰보 선장, 만식이, 사람 좋은 기관장 갑판장 모두 배에서 내렸거나 늙었을 거다. 기억이 우윳빛 대륙붕 바다의 너울대는 파도처럼 가물하다. 아침부터 해가 따갑다. 37,8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이주 째 접어든다. 전국이 불가마로 절절 끓는데 코로나와 올림픽, 대선 예비 주자들의 소식이 무성하다. 작년과 다르게 도시를 탈출해 피서 떠나는 인파가 전국의 도로를 질주한다. 아스팔트가 흐물 하게 녹아나고 창문 닫고 에어컨 세게 틀고 씽씽 내달린다. 산과 계곡, 바다와 강은 피서꾼이 점령했다. 바리바리 싸 온 짐 풀고 그늘 찾아 피서를 즐긴다. 사람 머문 데 쓰레기 넘쳐난다. 물놀이하는 개울 건너 수박밭 땡볕 아래 순치는 사람들 움직인다. 살인적인 더위에 먹고사느라 일한다. 더워 죽거나 굶어 죽거나 움직여야 사는 건 존재의 성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움직이지 않으면 힘을 못 쓰는데 사람도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퍼뜨리고 감염되어 실려간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자는 공허한 말을 믿는 사람 아직도 있을까.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생각은 원숭이만이 아니다. 사람은 점심때도 생각이 바뀐다. 결정 장애는 흔들리는 사고와 처음부터 닮은꼴이다. 저녁이면 집에 돌아가 찬물 끼얹고 반나체로 후끈한 방에 엎드리면 아무 생각나지 않는다. 펼쳐둔 책은 며칠째 그대로다. 책을 읽지 않으니 머릿속은 분열 직전이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기름 바다에 떠 있는 나무토막처럼 고요하다. 돌올한 사유의 확장이란 없다. 내가 생각한 건 오래전 사람들의 생각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 문제는 사유의 확장이다. 움직이지 않는 루틴 한 사고는 뻔한 상상을 되풀이하다 바람 빠진 풍선이 되고 만다. 멍 때린다는 건 무념무아이기도 하지만 확장하는 사유의 도약을 준비하는 순간이다. 면벽 좌선해도 내장의 물 흐르고 배고프다. 온몸에 바다가 출렁인다. 사유는 그렇게 생로병사를 겪으며 삶과 일생의 주변을 맴돈다.



독거 생활을 꿈꾸니 조금씩 구체화되는 생각이 떠오른다.

역시 사유는 웅숭깊을수록 곰삭은 맛이 난다. 연말에 기간제 끝나면 연초부터 지방에 내려가 독거 생활을 시험하는 거다. 낯선 지방에서 살아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리라. 주민등록을 옮기는 건 신중해야 한다. 변화가 생기면 바로 수정할 순 있지만 아직은 섣불리 옮기기엔 걸리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열 시 넘어가자 초소는 따끈하게 데워지기 시작한다. 밤에 초소를 만진 적은 없지만 달 뜨고도 초소는 후끈한 열기 품고 있을 거다. 개울 건너 생강밭에서 남자 둘이 쏟아지는 불볕을 등짝에 받으며 관수장치를 설치한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일꾼이 마치 고행하는 수도승 같다. 장마는 찔끔 선보이다 물러갔고 간간히 내리던 소나기마저 뚝 끊어진 상태라 가물이 들기 시작한 밭에 물을 대기 위함이다.


초소 뒤편 무성하던 고구마밭도 아침 따가운 볕에 이파리가 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벼의 종아리까지 물이 찬 논의 벼 포기만 기세 좋게 출렁일 뿐이다. 비 내려야 더위도 가뭄도 한풀 꺾일 듯싶은데 하늘은 통 그런 것에 관심 없는 눈치다. 망설이던 동료는 땡볕 속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하루에 이 만보를 걷는다. 선풍기가 더운 바람을 토하는 초소에서 커피를 마신다. 강화 부사 정항이란 놈이 중앙의 수양대군 뜻을 받들어 영창대군을 가둬 굶기고 불을 때 죽였으니 죄가 어디로 가겠는가. 부사는 식솔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가문에 재앙 있으라. 서늘하게 서리 끼칠 정도의 한은 불더위를 잠재우고 남으리라. 아카시나무에서 매미가 운다. 아침저녁으로 잠자리가 난다. 잠깐 더위에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크리스마스도 멀지 않았다.


다섯 시 넘자 푹푹 감자 삶던 더위가 수그러들었다. 팔뚝의 끈적한 느낌은 그대로다. 집에 가서 씻을 수 있다는 게 감사히 여겨질 정도다. 다른 이들은 불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작물은 뜨거운 볕으로 알곡을 단단하게 키우고 여물 테지만 더위에 장사 없는 산 목숨들 하루하루가 힘겹다. 코로나 시국에도 휴가라고 챙겨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운이 좋은 거다. 휴가도 뭣도 없는 기간제, 일용직 노동자는 불더위 아래서도 추운 겨울이 걱정스럽다. 냉난방 빈곤 가정은 더우나 추우나 걱정이다.


행복과 자유는 내가 세계를 해석한 결과물이다. 감각적 사유로 쾌락을 추구하며 행복과 자유를 원하기보다 지적 행위를 통한 추구가 낫다. 이럴 때 감각은 지적 행위와 나란히 걸음을 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명강의를 들어도 자기 고유의 호기심과 질문, 자기 스스로의 창의적 사유와 실천이 없다면 영원한 착각에 빠진다. 독서가 주는 아편에 취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의 생각과 현상에 만족하는 습관을 들인 사람은 보이지 않는 가치에 나아가려는 힘이 약하다. 호기심과 궁금증, 불만족은 창의적 사유와 행위의 시발점이요, 토대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궁금한 것이 없다. 만족하면 고민할 이유도 없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흔해빠진 인생이어도 만족하고 산다면 말릴 사람 없을 거다. 나라도 이웃도 다 소용없고 친족 이기적 공생으로 똘똘 뭉쳐 산다고 누가 손가락질할 것인가. 운 좋게 돈 많이 벌어 저택에 산다고 욕할 수는 없다. 세상을 해석하는 건 당사자의 가치니까. 그러나 고대 인류는 저만 잘 살겠다고 외떨어진 사람을 공동체에서 배제했다. 국가가 생기고 지배층이 개인의 소유를 정하자 잉여와 억압이 생겨났다. 골고루 사는 평등의 원리는 적자생존이란 해괴한 경쟁 논리로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확장하고 인민을 학살했다. 전쟁과 억압은 인류 비극의 시작이었다. 내 것을 절대로 남에게 줄 수 없다는 개인의 신념은 사회를 황폐화하는데 일조한다. 땅과 재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없다. 혼자 이룬 부도 없으며 내가 다수를 먹여 살린다는 기업가 정신은 계층 간 위계를 굳히고 계층 간 불화를 부추긴다. 국가는 복지를 강화해 저소득층을 방어하지만 부자의 생각은 사회를 분열로 몰아간다. 결국 너도 나도 비참한 결말을 본다. 복지를 강화한 북유럽 국가는 사회주의적 민주제를 국가 운영의 틀로 삼는다. 많이 벌고 많이 가진 사람은 비율에 따라 내놓고 적게 가진 사람은 형편에 맞게 내는 세금제도가 우선이다. 토지공개념은 개인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범위를 벗어난 임대 소득과 지가 상승분 등 불로소득은 국가에 귀속하여 다시 사회를 위해 쓰자는 생각이다.


대대로 앉아서 고수익의 임대수입으로 사는 사람들. 월급의 반을 방세로 내놓고 사는 청년들. 집을 서너 채나 가지고 공공 임대주택 정책에 골몰하는 관료들. 좁은 취업문에 부대끼다 절망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자각에 세상을 등지는 청년들의 문제는 그나마 보호 장치가 되어 있는 노년 세대에 비해 심각하다. P. A. 크로폿킨은 원시와 고대 공동체로부터 이어진 상호부조의 원리를 탐구해 인류 생존의 증거를 내놓았다. 나이브한 상상이지만 부를 쌓은 부자가 재물에 대한 유의미를 느끼지 못해 사회에 기부한다는 얘기는 즐겁기까지 하다. 오늘날에도 사회 기부와 봉사를 통해 자신의 부를 덜어 이웃을 위하는 이들이 있다.


노인이 된다는 건 생산이 멈춘 결핍을 견디는 시간이다. 일반인이 퇴직하거나 일을 놓게 되면 그때부터 생산 활동, 노동을 통한 수입은 없다. 모아둔 부가 많아 럭셔리한 실버 호텔에 입주하거나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노후의 생활이 보장된다면 별문제 없다. 우리나라 사람의 재산 가치는 80%가 부동산이다. 공시지가 9억 이하의 주거용 집으로 주택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국민연금이 쥐꼬리만 하거나 아예 못 받는 사람도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 거나 차상위계층으로 달랑 노령연금 하나로 생활하는 노인이 있다. 다달이 자식에게 용돈 지원을 받지 못하는 노후는 치명적이다. 가난은 질병과 연결되며 고독을 당연한 귀결이다. 국가에서 복지제도를 시행하지만 악조건에서의 노후는 희망이 절벽이다. 자존심을 앞세워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활하는 노인의 일자리는 열악하다. 지자체의 노인 일자리, 노인회 지부, 시니어클럽 등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관이 있지만 단순 노동, 청소, 경비 등의 일자리가 거의다. 아프고 외로운 노인의 삶을 위하는 자리는 없다. 스스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다 홀연히 떠나면 그만이다. 단란한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 세대를 걸쳐 공경하고 보살피는 문화는 일부의 아름다운 청사진이다. 이혼과 사별 등의 이유로 독거하는 노인이 늘고, 독신 청년 세대가 늘면서 일인 가구는 증가한다. 삶의 과정 끝에 죽음이 있듯이 고독사는 이제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노인의 지혜와 너그러움은 과거의 유물이다. 제 앞가림도 벅찬 현실에서 노인의 얘기에 귀담고 눈 맞출 시간이 없다. 복지의 혜택을 만끽하는 노년은 성가신 존재다. 그럼에도 분노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비루하게 추락하는 자신은 말년을 인정하지 못하는 거다. 자연의 순환처럼 인생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성함과 조락의 시기를 거친다. 늙어서도 백세까지 살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세상과 맞서 죽을 때까지 끼니를 책임져야 한다. 섹스는 추억으로만 가능하고 친구는 만나지 못하고 부고 같은 안부만 주고받는다. 결핍과 질병과 고독을 반려로 삼는 말년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나리꽃이 필 무렵이면 푹푹 찌는 여름 한가운데다.

강 따라 여기저기 붉은 나리꽃 피었다. 살아 보니 참 잘못 살았단 생각이 든다. 꿈이 뭔지 내가 하려는 게 무언지 생각할 겨를 없이 먹고사는데 급급한 밥벌이였다. 어쩌다 보니 나이 든 거지 확신과 목표로 예까지 온 건 아니다.


청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세상이 바라는 기준을 위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한' 인생은 만들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세상이 가리킨 대로 사는 어리석음은 버려야지. 주체적 독립적 자유롭게 산다는 게 자본의 늪에 빠진 세상에서 쉬운 일이겠냐만 거지가 되어 빌어먹어도 그리 살아야겠다. 결식하는 청년 노인, 고독 사하는 청춘. 목표를 가지고 살라고 한다. 꿈을 가지고 살아야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는 열린다고 설탕으로 뒤발한 꼬드김에 젊음은 흥청망청 낭비된다. 가난해도 배우고 가르치면 사람 구실 하던 세상은 썰물처럼 지났다. 스펙에 스펙을 고봉으로 얹어도 일자리는 내게 손 내밀지 않는다. 안타깝게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 박수 소리는 저주의 노래 낭떠러지로 밀어붙이는 힘찬 응원의 불칼이다. 내 삶을 찾아 나서야겠다. 뒤돌아보지 말고 염소 뿔 녹아나도 내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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