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46)
세 시간 넘게 수영하고 왔다.
지난주엔 두 시간 수영했는데 몸 쑤시는 게 이틀 갔다. 간밤엔 더웠는데 푹 잤다. 강원도 살 땐 집이 남향이어서 여름 해가 종일 집을 달궜다. 한밤중 마당 옆에 흐르는 농수로에서 물 뒤집어쓰고 집 벽돌에 손대면 뜨근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겨울엔 추웠다. 주거 빈곤이란 말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한 집에서 개인이 활동할 만큼의 공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말이다. 전쟁 시기나 그 후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도 아닌데 주거 빈곤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공공 임대주택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정책인데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엔 아직 멀다.
내 방엔 동해의 모래가 몇 낱 떨어져 있다. 어제 수영복에 묻어온 모래다. 출근하는 아침엔 차의 에어컨으로 더없이 시원하다. 초소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면 그때부터 더위와 마주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숲에서 불어오는 찐득한 공기, 흙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차들, 인정사정없이 내리꽂는 태양의 강렬한 열기에 조끼 안의 피부는 땀으로 젖기 시작한다. 나이 든 동료는 늘그막의 이런 나이를 어디서 써주냐며 매일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년에도 신청하겠다며 오전 오후 모자 쓰고 신호봉 들고 걷기 운동을 한다. 그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지난주에 두 개의 가지만 남기고 이파리가 타죽던 단풍나무가 이번 주에 보니 전멸했다. 더위와 추위에 수목도 화상과 열상을 입는다. 혹한의 추위를 견디다 물관 부분이 얼어 세로로 찢긴 열상(裂傷) 입은 나무를 흔히 본다. 가물이 계속되면 살아남는 수목이 숲의 우점종이 되고 숲의 색깔은 변해간다. 코로나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겸손해질까.
짠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영복을 입은 채로 운전해 왔다. 통리의 고원 휴게소에서 꿉꿉한 수영복 위에 반바지를 껴입었다. 고동은 삶아서 까먹고 조개는 하룻밤 해감해서 조개탕을 끓였다. 귀마개를 했는데도 짠물이 귀를 통과했다. 귀에 고인 바닷물이 코로 나왔다. 집에 와서도 몸을 구부리면 코에서 짠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다에는 정오가 되자 사람들이 뻘밭의 칠게처럼 왁자하게 몰려들었다.
휴무 이틀째.
쿠르릉대며 하늘이 속을 끓이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마당 내다보며 오래 내려주길 고대했다. 트럼펫 나무의 기름한 황금빛 꽃에 빗물이 툭툭 건드린다. 소년원을 나온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연주가 빗물에 섞인다. 숨을 마시고 모랫바닥을 훑었다. 조개 구멍과 조개가 물고 들어간 해초를 찾으며 물속을 더듬는다. 조개 낌새를 찾으면 숨을 한껏 마시고 허리를 활처럼 구부렸다 고개를 처박는다. 장갑 낀 손으로 모래를 파면 조개가 손바닥 안이다. 조개를 파내면서 주위를 살피다 조개 낌새를 보면 연거푸 자맥질이다. 많진 않아도 알은 굵다. 휴무 첫날은 내륙에서 동해 오가며 다 썼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를 기다렸다. 같잖은 오사리잡놈이 정치한다고 나대는 꼴에 천불 나는데 하늘마저 열탕이면 안되잖은가. 그런 물건에 열광하는 것들 보면 우리 사회가 갈등을 현명하게 넘어서는 게 아니라, 혐오를 양산하고 분열로 가는 불길한 조짐이 든다. 사회가 움직이는 물색 하나하나가 불신 분열 가짜 뉴스 진영 논리로 날밤을 샌다. 악마 화한 국면의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나 마땅히 설 곳도 살 곳도 없단 생각이 든다. 대선 이후로도 양 진영 간의 불화와 대립은 사회를 막장으로 몰아갈 거다. 청년들은 정치권에 대고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시대의 차별과 불평등이라고 목소릴 높이지만 정치꾼은 간단히 외면하고 툭하면 시장 통에서 어묵을 맛나게 처먹는 포퍼먼스에 열중한다.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내 능력껏 떳떳하게 살겠다는 데 뭔 사설이 기냐, 여긴 자유 국가 대한민국 아니냐! 참 맞고도 무식해서 웃픈 말이다. 피해 안 주는 면죄부의 양심이나 능력주의의 공정 경쟁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대가리 큰 놈들에 끼어 공산주의 민주주의라는 대리전쟁에 휘말려 박살난 강토에서 전쟁 끝 경쟁 시작이니 몸과 정신이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다윈주의의 무한 경쟁, 적자생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의 축적에 무언의 동의를 해주었다. 캐면 드러나는 부동산 투기는 지겹다. 내 집 칸 하나 없는 서민의 눈에 청문회장에서 앵무새처럼 변명하는 잘난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저러고도 벼슬하겠다고 높은 자리 오르겠다고 뻔뻔한 낯짝 세우는 거 보면 무쇠 칼도 아깝단 생각이 든다. 앞뒤 보지 않고 권력과 재물의 피라미드를 향해 달리는 중에 남의 피눈물은 내를 이뤄 바다로 간다. 그러고도 이젠 남의 피눈물을 씻겠다고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댄다. 쌍년 놈이 따로 없다.
팔월 안에 입추 말복 처서가 들었다.
덥다 덥다 하다 보면 모기 주둥이 비뚤어지는 처서 오고 추레한 가을 매미 소리 잠깐이라지만 그건 편한 사람들 얘기다. 택배 배달 노동자, 청소 노동자, 요양사, 슬라브 철근 콘크리트 인부, 형틀 목수, 산판 일꾼 모두 열탕 속에 죽어난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 대로 밑천 없이 드러난 노천에서 밥을 버는 사람들 고역이 천릿길이다. 툭하면 최저임금 가지고 을의 싸움 부추기는 것들의 저지레에 낮게 사는 사람들의 삶은 고단하다. 더우니 아무 생각나지 않는다. 의욕도 희망도 성합도 수면욕도 입맛도 기름 같은 파도에 잠기고 만다. 서늘한 땅이라면 끝없이 걷고 싶다. 기름 끓는 뻘밭을 건너가는 칠게처럼 복더위를 견딘다. 칠게의 다리가 점점 빨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