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50)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의 꼬리 질기다. 아침부터 종일 비 내린다. 점심 도시락 먹고 우산 쓰고 오줌 누러 나갔다 오는데 우산에 단풍잎이 붙었다. 가을 멀었는데 단풍이라니... 지난 폭염에 말라죽은 단풍잎이다. 기후 변동은 수목의 순환을 끊어놓는다. 멜랑꼴리 한 풍경을 연출한 단풍잎을 보며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떠오른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한 이후 카불 공항에는 탈출이 러시를 이룬다. 반 탈레반 세력은 난민의 이름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피난 중인데,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국을 도운 아프간인을 난민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나라도 아프간인 사백여 명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런데 난민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오백여 명을 받아들였을 당시와 다르지 않다. 그걸 보면서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은 더럽게도 뿌리가 깊어서 타자의 환대조차 선별적이란 걸 느낀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의 선진국에 들어선 나라가 난민을 받는데 경제가 어렵다느니 우리도 살기 힘든데 세금 헐어 남을 먹인다느니 구실을 단다. 하다 하다 종교, 범죄까지 들먹인다. 먹고살기 힘든 건 한국전쟁 이후의 얘기다. 지금은 너무 먹어서 병나고 욕심껏 쟁이지 못해 탈 난다.
유엔 난민기구(UNHCR)가 지난해 12월 한국리서치와 진행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난민 수용 반대 의견은 53%로 찬성(33%)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반대 의견이 과반을 차지했다. 반대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64%), 범죄 등 사회문제 우려(57%) 등이 꼽혔다. 그들이 만일 백인이라면 어땠을까.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에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산불과 해수면 상승으로 대규모 탈출 사태에 직면해서 나라 별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상황에 처했다면 여론은 어떨까 궁금하다. 한 해 예산이 600조가 넘는 경제 대국에서 난민 몇백 명을 포용하지 못하는 건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의 본질이 깔려 있다.
그들 난민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설움과 구박,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차별은 지구 상에서 멸절되어야 한다. 혐오와 전쟁, 범죄는 차별에서 비롯된다. 차별에 대해 차이를 인정하라고, 서로 다른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주문하지만 실은 차이도 차별을 품고 있다. 차이인데도 차별적 시선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차이도 위계와 서열을 띠게 되면 차별로 간다는 뜻이다. 무능력하고 게을러 빈곤에 허덕이는 하층민에 대한 시선이 그것이다.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지 그들 자체에게 문제의 본질을 떠안기는 건 자기기만이고 폭력이다. 공감과 연대, 환대와 경청을 신물 나도록 외치면 무엇하나. 우리 안의 이기적 차별의식은 타인을 밀어내고 배제하는데.... 결국 우리 사회 내에서도 공감 연대 경청과 환대는 서열화, 계층화되어 동일한 신분 내에서 들먹이는 화두일 뿐이다. 씻어내지 못하는 불신과 차별의 폭력이다. 다문화가족,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 편입해 공존 공생을 도모하는 인간 군상이다. 소수자란 이유로 함부로 대하고 차별하는 대상이 아니다. 불과 몇십 년 전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로 중동, 베트남 땅으로 떠났다. 절체절명의 가난과 피난의 역지사지를 팽개치면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것은 부동산과 돈이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부(권력)를 향한 추종과 쟁탈은 광신도의 뺨을 후려갈긴다. 부와 권력의 위계에서 배제되거나 가망이 없는 사람들은 굴종의 생을 택해야 할 정도로 부와 권력은 거대하고 단단한 카르텔이 되었다. 그들이 정치가로 변신하면 공감과 연대는 다수 시민의 가치가 아니라 그들만의 정의로운 가치가 된다. 공명정대한 지도층은 항상 시민에게 가르치고 따르라고 주장한다. 때로 서민 코스프레하며 표를 읍소하지만 선거가 지나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뉴스 1:국민권익위원회가 야당 의원의 부동산 불법 거래를 발표했다. 모 의원의 아버지가 S시 땅을 투기 목적으로 샀다는 것이다.
이에 모 의원은 아버지가 땅 산 건 난 모르는 일이며 농사를 짓기 위해 샀다며 억울해했다.
뉴스 2:곧바로 모 의원은 의원직 사퇴와 대선 경선 후보를 사퇴해 정권 교체의 밑거름이 되겠다고 결연히 발표하고 야당 대표는 소명되셨으니 사퇴하지 마시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렸다. 또한 야당 의원들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여당은 국회의장에게 사직서를 내지도 않으면서 쑈라고 쏘아붙였다. (표결에 부치면 부결이 확실하다)
해설:모 의원이 S시 KDI에 근무할 때 아버지가 S시의 땅을 샀으며 이를 딸에게 비밀로 했다? 그리고 농사짓겠다며 팔십이 된 아버지가 산 땅은 축구장 한 배 반의 넓이다. 게다가 시세차익이 십억을 넘는단다.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5분 연설로 유명세를 탄 모 의원의 실상은 S시의 자기 집을 팔고 지역구에 출마하려고 전세를 살던 거였고 나머지 주택을 두 채나 보유한 자였다. 이러고도 망가진 나라를 바로잡겠다며 설레발치는 것들이 제1야당 의원들이다. 좆 까고 나빌레라다. 국민을 기만하고 저들 끼리의 세상을 위해 지랄하는 것들의 가짜 뉴스는 걸러내야 한다. 비판의식, 사실 확인 없는 기사를 무지한 시민은 쓰는 대로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인권 의식이란 인권에 머무는 단일 개념이 아니다. 인권의 말속에는 인권에 국한되지 않는 가치가 담겼다. 사람을 존중하는 사고는 생태와 동물,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와도 맥락을 잇는다. 딱 부러지게 경계를 구분 지어 사고하는 행위는 DMG의 철조망 같을 것이다. 철조망으로도 바람이 지나고 산양이 다닌다. 인종과 신분과 국가와 민족의 차이와 차별을 넘어 상호 부조하는 건 인류의 DNA에 새겨진 질긴 무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