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단상

by 소인

휴일 단상


여자가 홈플러스 푸드 코트에서 밥을 먹는다. 옆에는 상품이 산처럼 쌓인 카트가 있다.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여자는 포크로 뜬 밥을 한 알 흘리지 않고 중얼중얼 허공에 얘기한다. 쉴 새 없이 떠들면서 밥을 먹는 여자의 머리가 곱슬대며 하늘로 올라간다. 세계 평화와 인류 구원의 염원을 외며 밥과 주문을 전투적으로 떠 넣는 여자. 상품의 터널을 빠져나온 여자의 뻥 뚫린 눈이 내 눈과 마주친다. 돈가스에 밥이 없어 당황한 나는 여자가 밥을 다 먹었는지 살필 겨를 없이 식판을 반납하고 떠났다.


벗겨진 하늘에서 땡볕이 내리꽂는다.

빨간 고추가 포도처럼 매달린 밭에서 고추 따던 할매 고추 작대기 짚고 나온다. 갈수록 못 견디는 더위. 하얀 머리의 성녀 되도록 고추 땄건만 얻은 건 디스크와 류머티즘 시간의 주름뿐. 고추밭 끝에서 고추 따는 아들 말이 없다. 마누라 도망간 농촌 우수수 쏟아지는 고추 하나도 반갑지 않아. 젊을 적 노인의 눈에 바다처럼 펼쳐진 붉은 고추는 활활 타는 불꽃같았는데 오늘은 핏물 같다.


사람들은 고향 어머니 자연을 추억하고 예찬한다. 심지어 가난까지 칭송하는데 그건 가난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가난을 벗어난 안도 때문이다. 매사 긍정적인 세계관으로 인생의 격랑을 헤쳐온 그들은 가족의 안위와 늙음의 평온을 바라며 고요한 말년을 맞는다. 자본과 국가의 폭압, 남성 가부장의 폭력 문화와 여성주의, 소수자의 차별 뭐 이런 거엔 신경 안 쓴다. 저마다 할 말이 있겠거니 생각할 따름이다. 자연히 역사의 진실에 대해서는 사극의 흥미 정도일 뿐, 나아가거나 파고들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의 안녕과 공동체의 질서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그들은 구태여 일삼아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섭세의 이치라고 굳게 믿는다. 순한 짐승처럼 자본에 길들여진 그들은 변화를 바라지 않지만 경제 성장과 중산층 사수는 내면화된 욕망의 꼭대기다.


차이는 다양성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차별의 위계가 되었다. 태어난 환경과 조건부터 인간의 층위는 달라지기 시작해서 성인이 되면서 계층화 신분화된 위치는 피라미드의 각 층을 벗어나기 힘들다. 국가 인종 성별 혈연 학연 지연 청년/장년 다수와 소수까지 차별의 질료가 된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무능과 게으름으로 보지만 구태여 함께 층위의 동참을 권하진 않는다. 양극화의 신분은 세습되어 사회의 구성이 된다. 그러니 공감 연대 소통 정의 상생 등의 유토피아적 언설은 계층 간에서만 통용된다. 계층 간 화합이 철저히 끊어진 상태에서도 국가는 조직을 정비하며 이들을 통제한다.


개는 중성화 수술을 앞두고 있다.

사람과 함께 장수를 누리려면 거세가 필요하다. 자손 번식과 섹슈얼리티는 개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이 저의 필요에 따라 고막을 찢고 성대를 자르고 불알을 떼낸다. 예전의 수캐는 암내를 맡으면 장마 통 붉덩물 흐르는 강을 건넜지만 요즘 개는 찻길을 건너고 이웃집 담을 넘는다. 어떤 이는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아비를 찾아왔더란다. 저의 수컷이 어찌 될 줄 모르고 산책 홀릭인 개는 저녁 먹고 꼬리 치며 집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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