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52)
엄청 쏟아진다는 예보대로 아침부터 줄기차게 퍼부었다.
와이퍼를 빠르게 돌리며 빗속을 뚫고 동물병원에 갔다. 드디어 예약한 곰돌이 수술 날이다. 잠시 후의 제 미래를 알 리 없는 개는 달리는 차 안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내다보며 설렌 표정이다.
동물병원 로비에서 영역 표시로 찍! 오줌 갈긴 녀석은 몸무게 달고 피검사 후 입마개를 하고 케이지에 갇혔다. 눈이 동그래진 녀석을 두고 집에 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마취가 일찍 풀렸으니 와서 데려가란다. 젊고 힘 있어 그런가. 다시 빗속을 달렸다.
오후 되어 소독 솜을 들고 꿰맨 부위를 소독하다 보았다. 아하! 당연히 사라진 줄 알았던 고환이 멀쩡히 달려 있는 게 아닌가. 불 까기는 면한 셈이다. 봉합한 부위는 음경과 고환 사이인데 사람처럼 정관을 잘라낸 모양이다. 피임을 목적으로 정관을 잘라 두 끝을 묶어(레이저 시술) 정자의 이동을 차단하는 시술은 사람에게만 하는 건 줄 알았다. 전에 본 작은 개는 분명히 고환을 제거했었다. 큰 개라서 그런지 의술이 발달한 건지는 모르지만 겉모양은 전과 다름없어 웃음이 나왔다. 작은 호두알만 하게 탐스러운 불알이 사라진다는 것에 수컷으로서의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었는데.
곰돌이는 나와 같은 내관의 반열에 들어섰다. 건설회사 시절 난 우습게도 년월차를 다 쓴 줄 알고 수술했었다. 수술하면 삼일 휴가를 주었다. 정관수술과 성욕은 하등 관계가 없지만 나이 따라 성욕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꽃도 피었다 지고 달도 차면 기울고 벼도 익으면 수그리는 게 섭세의 이치다. 맨날 청춘이면 지구 상엔 근육질에 성기 흔들고 다니는 미친 늙은이들만 설칠 거다.
난 상선(尙膳)을 자청하여 돼지 등뼈를 삶아 살을 발라 먹였다. 고깃국물을 사료와 섞어주니 맛나게 먹는다. 개는 자손 번식이나 짝짓기의 쾌락에 탐닉하지 못한다. 배란기의 암컷이 분비하는 페로몬에 반응할 뿐이다. 수캐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해서 건너 마을 암캐가 발정하면 장마 통 붉덩물이 콸콸 넘치는 강에 뛰어들 정도다. 이웃집 개가 냄새로 유혹하면 높은 담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불가에선 구무 불성(狗無佛性)이라 해서 개는 업장(業障)을 모른다고 하지만 불성이 없으면 어떻고 업장을 모르면 어떤가. 사람도 무지의 늪에 빠졌으면서 안다고 뇌까리며 세상 활보하는 것들 쌔발린 담에야 주인과 친구하고 바람 냄새, 풀 냄새 맡으며 생명을 즐기는 짐승이면 행복하지 아니한가.
거세한 개를 보며 거세당한 남성을 생각한다. 남성은 모든 차별과 폭력의 근원이다. 백인 남성 중산층은 이성적 권력관계를 형성했다. 여성은 차별당하는 불가시적 존재였다. 거세하지 않으면 지구의 평화는 불가능한 얘긴가. 니코틴 중독은 질병이고 약물로 금연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섹스 중독에 빠진 연쇄 강간범은 화학적 거세가 옳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건은 무기가 아니다. 난 스스로 거세를 택했지만 이젠 가족으로부터 거세당했다. 그랬으면서 더러운 성질은 그대로다.
개를 거세하면 나이 들어 생기는 전립선 비대증을 예방하고 고환암도 막을 수 있다. 강아지가 3,4개월 넘어 중성화 수술을 하면 이미 밴 습성은 그대로다. 다만 암컷에 대한 로망은 사라진다. 순전히 인간의 관점이지만. 돌아오는 도중 빗줄기가 머춤해졌다. 상처가 무사히 아물고 다시 풀밭에서 비호처럼 뛰놀면 좋겠다. 사람 곁에서 언제나 행복한 견생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