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301)


나이 든 사내가 걷고 있다.

내가 나이 든 남자라면 육십 대에서 칠십 초반의 사내다. 노인은 칠십오 세를 기준으로 친다. 좀 마른 작은 체격에 모자와 조끼 차림의 사내는 버스정류장이 없는 시골길을 혼자 걷고 있다. 고갯길을 막 내려오는 참인데 고개 방향으로는 집이 몇 채 있고 솔숲 너머 레미콘 공장이 전부다. 마을에서 나온 행색으론 보이지 않는데 그는 어디서부터 걸어왔을까. 몸에 가방이나 물건을 지니지 않고 맨몸으로 걷는다. 초소 앞을 지날 때 왼손으로 모자를 살짝 벗었다가 다시 고쳐 썼는데 검게 탄 얼굴 피부가 마치 연탄 공장에서 일하는 인부처럼 보였다. 주름살 사이로 깊게 내려앉은 석탄의 찌든 때는 평생 문대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면 동동 칠월 등짝에 땡볕 쏟아지는 무논에서 피사리하는 농부인지 모른다. 머리 위로 사 차선이 지나가는 다리는 지름 2.5미터의 콘크리트 기둥이 길 양쪽으로 세 개씩 박혔다. 거대한 회백색의 기둥을 지나는 사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인데 그는 어디로 걷고 있는 걸까.


기둥 주변에 함부로 자란 환삼덩굴이 덩굴손으로 허공을 쥐고 쓰러져 있다. 기둥 안쪽으로 물길의 흔적을 증거 하듯 웃자란 버드나무 세 그루가 용케 낫질을 피하고 자란다. 버들치를 닮은 이파리가 낭창대며 하늘로 오르는 하늘엔 하얀 구름이 덮여 있고 사이사이 파란 하늘이 보인다. 가을장마가 며칠 전 쏟아붓고 지났으니 이제 물기는 김장밭에만 필요하다. 맑은 날씨가 계속되면 참깨, 콩 등속이 속을 채우며 여물 거다. 지난달 패기 시작한 벼는 묵직해진 고개를 떨구고 익어가는 중이다. 다리 밑으로 칡덩굴의 야심은 영토를 키워 길을 넘보는 중이다. 풀베기 인부가 길로 넘어서는 칡의 손목을 댕겅댕겅 잘라 놓았지만 칡은 흥분을 갈앉히지 못하고 심장을 팔딱대며 금방이라도 차도로 뛰어들 기세다. 겨울이 없었다면 등칡은 대만의 반얀나무처럼 사철 뿌리를 벋어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로 흘러들 거다. 여름 동안 무성한 수풀 사이로 갈대가 고개를 내밀었다. 솜사탕 같은 갈품이 소슬한 바람 따라 나부낄 거다.


외양으로 사람의 형편을 가늠할 수 없겠지만 그는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분명히 나와 입장도 다르고 편안할지 모른다. 무슨 주제로 초소에 앉아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해 연민을 헤아리는 건가. 그건 아마도 내가 먼길을 떠나려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일 거다. 가여워 보인 것도 자신을 대입해 비춘 거울의 영상 때문이지 사내가 스스로 연민을 일으킨 건 없었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에 두 아이가 자는데 한 아이 얼굴에 검댕을 칠하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는 쪽은 말짱한 얼굴의 아이라는 거다. 친구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보고 자신의 얼굴에도 묻었을 거라 생각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지금 내 생각과 상관없이 그는 오던 길에서 초소를 지나가고자 하는 길을 걸을 뿐인데 난 그와 함께 걷고 있다.


사 차선이 지나는 다리 아래는 네 방향으로 통하는 사거리가 두 군데다. 사 차선 진출입로가 사거리를 두 개 만든 셈인데, 사 차선을 가로로 긋는 남북은 태백과 안동 방향이고 사 차선의 진출입로 방향의 세로는 내륙의 영주와 동해의 울진으로 나뉜다. 큰 지역을 대별한 이정표인데 세분하면 봉화, 예천, 상주로 내려가는 영주와, 봉성면과 영양읍으로 빠지는 안동, 유곡리, 금봉리로 거치는 태백 방향, 현동과 동해, 삼척으로 이어지는 울진 방향이다. 주말을 제외하면 평일에는 차량의 이동이 꼬리를 문다. 근처에 레미콘 공장이 있어서 레미콘의 재료를 실어 나르는 25톤 덤프의 행렬이 종일 계속된다. 5% 정도의 경사로라 오르내리는 차가 사 차선 진출입로에서 드나드는 차를 피하느라 브레이크를 밟으면 접시 깨지는 소리와 함께 타이어 가루가 날리는 분진이 심하다. 다른 조가 근무할 때는 매연과 분진을 피해 두 사람이 초소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근무한다. 우리 조는 걷기 운동하는 동료와 답답한 걸 싫어하는 내 성미로 문을 열어놓고 초소 바깥을 서성대기도 하며 매연과 타이어 가루를 마시는 꼴이다.


사거리 갓길의 산으로 이어지는 임연부에 공터가 있어 평일엔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차를 세워두고 한 차로 가기도 한다. 늦은 오후 일을 마친 동료가 사거리에 내려주면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린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걸 본다. 때론 집 없는 남녀가 잠을 자기 위해 사거리 공터에서 만나 함께 어디론가 떠나기도 한다. 그런 불우한 이웃을 위해 새로 생긴 무인 모텔 사장이 팻말을 박아 두었다. 가을 들어 벌초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예초기를 메고 음식이 담긴 보자기를 들고 남녀가 사거리 샛길로 들어선다. 대여섯의 벌초꾼은 모두 나이가 들었다. 사거리는 사방으로 확장하는 길이면서 사방에서 모이는 역할도 한다. 급한 사람들은 사거리에서 만나 물건을 전해 받는다. 화분, 과일, 선물 상자를 차에 옮겨 싣는 걸 보았다. 동료와 나는 '혹시 화분 밑바닥에 마약을 숨긴 건 아닐까?'하고 마주 보고 웃었다. 한 번은 아줌마가 초소에 들어와 '여기에 누가 맡긴 물건 없었니껴?' 물은 적이 있다. 아는 이라면 몰라도 초소에 물건을 맡기는 사람은 없었다.


칠 개월째 길 위의 초소에서 나무 실은 차량을 노려보고 있다.

3월부터 연말까지 기간제 계약으로 일하는 임시직 노동자다. 업무의 명칭은 '재선충병 감염목 무단이동 감시초소 근무원'인데 명칭에 일의 성격이 그대로 담겼다. 솔수염 하늘소가 매개하는 소나무류 재선충병은 제주도와 남쪽 지방에서 피해가 심하며 점점 북상 중이다. 육 년 전 제주도 모슬포에서 차를 타고 가며 산방산을 보니 산기슭에 불긋불긋한 소나무 주검을 여럿 보았고, 안동 주변의 산에서도 파란색 방수 커버에 싸인 소나무 무덤을 많이 보았다. 한 번 감염되면 치명적이라 소나무 에이즈로도 불리는 재선충병은 한반도의 산림 면적 중 소나무 임상(林相)이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커서 예방이 어렵다. 근래 정보엔 대학교수가 예방과 치료를 겸하는 재선충병 약제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현장에선 언제 쓰일지 기약이 난망이다.


아이엠에프 구제 금융 사태 이후로 비정규직 일자리가 쏟아졌다. 쉽게 뽑고 간단히 자를 수 있는 임시직 일자리는 최저시급으로 급여가 유리 천정이다.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정부는 예산을 풀어 지자체의 기간제 일자리를 만들고 구직자들이 몰렸다. 농촌의 기간제 일자리는 산불 감시원, 산림 병해충 예찰원, 산불 진화대, 휴양림 관리인, 가로공원 관리 등 다양하다. 나는 오 년째 기간제 일을 해오고 있는데, 산불 감시원, 휴양림 관리인, 재선충병 감염목 무단이동 감시초소 근무원까지 세 가지째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기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다 나이 제한에 걸리거나 몸이 허락하지 않을 때까지 밥을 벌 생각이지만 모든 일은 의지대로 가지는 않는다. 한 번은 랜덤으로 남쪽 지방의 시청 홈피에 들어가 기간제 일자리 공고를 검색해 보았더니 예상외로 많았다. 연육교로 뭍과 연결된 G시의 경우인데, G시 기간제 일자리 현황(2021년)은 다음과 같다.

식물원, 환경미화원(동별로 상하반기 선발), 문동폭포 휴양림 환경정비, 피서철 해수욕장 관리, 목재문화체험장 관리운영, 노상 적치물 단속원, 농업개발원 기간제 노동자, 재선충병 예찰조사단, 방역소독사업, 농업기술센터, 시가지 가로청소, 장승포항 친수시설 관리원, 몽돌해변 몽돌 지킴이, 양지암 조각공원 기간제 근로자, 어르신 환경정비원, 신중년 우리 마을 숲 정원사 기간제, 농업기술센터 청소 기간제(1월부터 역순으로 모집) 등이었다. 도시의 경우 인구수 대비 실업자가 많아서 기간제 일을 많이 만드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같은 명제다.

아이에게 미래를 물으면 직업을 말한다. 어떠하게 삶을 살 것인가에 밥벌이는 기본이겠지만 거기에 자신의 세계관은 들어 있지 않다. 대개 어른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직업을 정하거나 자라면서 현실 위주로 바뀐다. 이력서는 개인의 살아온 길, 개인의 역사다. 학력과 직업이 나열된다. 자기소개서는 인사 담당의 구미에 맞춘 서식일 뿐이니, 어디에도 자신의 내면은 꼭꼭 숨어 있다. 나이 들어도 자신의 삶을 석 줄 문장으로 설명하라면 낭패스럽긴 마찬가지다. 핍진한 구석 없이 얼마간 속악하고 사단 칠정(四端 七情)이 적당히 버무려진 존재로 여러 직업을 거치는 게 삶의 노정이다. 나는 하등 밥벌이에 도움 안 되는 걸 공부했고 건설회사, 광고회사를 거쳐 수목관리를 하다 현재는 기간제 노동자다. 남매의 아버지고 아내의 배우자다. 생각의 변화를 거듭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나 성장과 열매라는 부면에선 대체로 불안, 불확실하다. 여기까지가 세 문장의 나다. 첨언하면 무엇을 이루려는 욕망을 죽이려고 노력 중이며 독거 생활의 신산한 맛과 고독을 즐기려 날마다 '직방'을 뒤지며 도모하는 중이다.


사내의 감청색 조끼 위에 구름 사이 드러난 햇살 몇 점이 떨어진다.

사내는 아래쪽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로칼 푸드 건물을 향하고 코너를 돌고 있다. 신발이며 입성 전체가 오래 입고 빨고 한 듯 낡은 차림이다. 물이 날아간 감청색 조끼도 햇볕에 반사되니 회백색으로 착각할 정도다. 사람을 피해서 산으로 들어간 시인과 상처 받기 두려워 사람과 엮이길 피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인간은 의지와 관계없이 환경과 조건과 엮이면서 의지를 키우는 존재다. 의지 전과 후는 사람의 인생이 전혀 다르게 구성되지만 실은 그가 지닌 의지란 순전히 그를 둘러싼 사회의 산물이다. 인간의 자유란 것도 사회 구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한된 자유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그러니 좀 더 솔직해지자. 그레고리 잠자의 페르소나를 지닌 벌레처럼 살다 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불과함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치는 게 인간 존재다. 희망의 전언은 그것뿐이다. 사내가 시야에서 멀어진다. 작은 점이 되었다가 로컬 푸드 쪽 에움길을 돌아가자 사라져 버렸다. 사내와 더불어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상념도 어느샌가 식어버렸다. 다시 길을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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