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갭니다

by 소인


나는 갭니다.

우연히 태어난 존재라고 의지 없이 살 순 없겠지요. 하지만 의지는 내가 선택하는 항목이 아니었지요. 엄마와 형제의 얼굴 익힐 새 없이 입양되었으니까요. 다행히 새로 만난 가족은 좋은 사람입니다. 자고 나면 서로 날 보겠다고 난리들입니다. 아침저녁 산책은 기본이고 날 케어하려고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니까요. 덕분에 난 폭풍 성장하면서 매일 바람 냄새 풀 냄새 마시며 풀밭에서 뛰놀지요. 난 무조건 사람에게 충성하는 개보다 까칠한 고양이를 닮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뒤로 넘어지도록 내 매력에 빠져들곤 하니까요. 그게 인간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점인데 물어뜯고 싶은 고양이에게도 배울 점 하난 있다구요.


내가 아는 척하는 단어는 아저씨 아줌마 누나와 앉아, 기다려! 장난감 가져와 정돕니다. 나머진 사람의 말귀 알아들어도 모른 척하지요. 그래야 개로서 인간으로서 각자의 다른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요.


얼마 전 수술했습니다.

사람 곁에서 오래 살려면 불가항력이라고들 얘기합니다만 내 생각은 좀 다르지요. 성호르몬에 무댑뽀로 환장하는 건 인간이지 짐승은 아니라고요. 새나 아이벡스를 보셔요. 아무리 신혼방 꾸미고 깃털 화려하게 치켜세워 꼬셔도 눈도 깜짝 안 하는 암컷 쌨다니까요. 산양은 뿔 겨루기로 결투한 다음 승리자가 암컷의 허락을 받지요. 인간은 늙어서도 약물과 장치를 빌어 성적 욕망을 채우려 애쓸 뿐 삶의 각성이란 도대체 먼 얘기지요. 그런 세상에 무슨 전망이나 평화가 깃들까요. 단단하고 오래가는 건 따로 있답니다. 난 기능을 잃어버린 불구지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를 살려 세상을 보려 합니다. 불구는 채움의 과정이지요. 사람의 생각이 변하기 힘든 건 진영의 이데올로기에 안주하려는 확신의 혐의가 짙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세상은 경계 없는 선악의 이분법이 판치는지 모르지요. 요즘 선거판 돌아가는 꼴 좀 보셔요. 건달 세계의 패싸움 같다니까요. 지구를 보살피는 독수리 오 형제 되기보다 코앞의 밥그릇 세기 바쁘다니까요. 가만 보면 후보들 면면이 생각 없는 짐승의 얼굴을 닮았어요. 성찰의 결락이란 애초에 없는 꼴들이지요. 함 보셔요.


나는 개로서 일생을 살아가겠지만 인간의 세상을 보면 우습고 슬프기 짝 없어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참, 끝으로 팁 하나 드리지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처럼 습속을 좇아 너무 열심히 살지 마셔요. 지구는 유한하고 하늘과 땅, 바다 또한 수명이 다해 갑니다. 적게 쓰고 적게 버려도 자가 증폭하는 지구가 티핑포인트를 향해 달려가는 관성은 멈출 수 없어요. 남은 바람의 숨결, 별들의 속삭임과 존재의 성찰만으로도 할 일은 수두룩 빽빽입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가짜지요. 허상의 거울 뒤의 싸가지 없는 천지가 가르쳐주는 깨달음이지요. 너무 아는 척해서 송구합니다. 난 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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