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302)
휴무 이틀 동안 자잘한 일들을 처리했다.
마치 술 덜 깬 출근길 전철 안에서 하루 일정을 체크하던 때가 생각났다. 광고회사 매체국을 다녔다. 열댓 가지의 업무를 써내려 갔고 하루에 다 진행했다. 한 달 20억 가까운 빌링을 계산기 두드려 가며 처리했던 치밀했던 시절이었다. 보일러 회사에 전화해 물 새는 보일러 물통을 교체했다. 기사는 물통 정도야 집주인이 철물점에서 사다 간단히 교체할 수 있다고 있다. (당신도 나처럼 살 수 있습니까) 갈아달라고 했다. 개가 산책 나간 사이 마당에서 기계톱 시동 걸어 기름을 비웠다. 봄철 아카시나무 벤 이후 쓸 일 없어 그대로 두었는데 언제 쓸지 몰라 기름을 태워버리는 게 올바른 보관 요령이다. 봄에 산 새 톱은 톱날이 뻐등뻐등한 게 새 신 같다. 다음날 오후엔 식구 몰래 개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실밥을 뽑았다. 몰래 데려간 건 충분히 시일이 지났음에도 완전히 상처가 아물 때까지 더 기다리겠다는 식구의 염려를 무지르기 위함이다. 때론 급해 보여도 과감한 게 나을 때도 있다. 문자로 연락 온 희망 도서 세 권을 찾아 번갈아 읽으며 보냈다. 시인이 보낸 비평집은 중간쯤 읽다 밀어놓고 다른 책에 빠졌는데 잊고 있던 희망 도서가 도착해 머리맡엔 책이 쌓였다.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읽다 다시 앞으로 가서 좀 전에 읽었던 문장을 재독 하는 상황이 빈번한 나의 굼뜬 책 읽기로선 홍수에 해일이 덮친 꼴이다.
희망 도서는 P.A. 크로포트킨의 「빵의 쟁취」와 「청년에게 고함」그리고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다. 읽던 중인 책은 「최진석의 대한민국」과 과학 교사 김추령의 「내일 지구」였고, 시인이 보낸 비평집 「현대시로 읽는 식인(食人)의 정치학」이었다. 내가 이 책 다섯 권을 굳이 들추는 이유는 책의 주제와 내용이 얼마간 현재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것 때문이다. P.A. 크로포트킨은 130년 전 사람이다.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민하던 지식인, 운동가들은 제국주의에 맞선 사상의 무장을 위해 어둠을 헤매며 고투의 길을 걸어갔다. 그중 P.A.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은 무너진 왕조를 다시 찾겠다는 복벽파와 싹이 트기 시작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혁명적 새길을 열어준 이념이었다. 단재 신채호와 박열, 이회영 선생 등은 일체의 권력의 지배에 저항한 무정부주의자였다. 그러나 무정부주의 하면 정부 없는 무질서의 혼돈 상태를 연상하지만, 법에 의한 지배와 통제가 아닌 연합 공동체 간의 계약을 중요시하는 인민이 중심에 서는 자유연합주의다. 제국주의를 거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였다가 사회주의권의 나라들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로 갈아탄 지금 일부 사회주의권 국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이식했고, 북유럽 국가는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해 복지제도를 다지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무슨 주의가 필요한가. 이제까지 이념으로 무장한 정치 경제는 숱한 시행착오와 목표와 굴절된 결과를 반복한 역사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부자 나라가 공평한 분배를 통해 배고픈 사람을 돕는다면 이상적이지만 지식은 실천과는 괴리가 있다. 더군다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산업이 확장되고 국가 간 세계 교류가 일상화되면서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기후 변화의 위기였다. 제주도의 바다는 아열대 물고기가 헤엄치고 연분홍의 산호가, 구멍갈파래가 악취를 풍기며 해안을 덮었다. 십 년 후면 기름 넣은 자동차보다 전기를 충전한 전기자동차가 길을 채울 거다. 문제는 오염과 탄소 배출로 더워진 지구의 생태계가 인위적 조절이 아닌 자가 증폭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구인의 대부분은 하루하루 빵의 해결을 위해 분투한다.
백여 년 전 크로포트킨은 젊은이에게 상호부조를 통한 아나키즘을 권하고, 오늘의 레베카 솔닛은 재난에서 살아나는 인간의 능력인 이타주의를 말한다. 인간은 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한 걸 신자유주의자들이 추종하듯 무한 경쟁 속의 적자생존으로 진화한 게 아니라 서로 도우며 생존해 왔다는 증거를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론」에서 동물과 원시인, 미개인의 공동체를 통해 증명한다. 철학자 최진석은 대한민국의 내장을 뒤집어 분석했다. 날카로운 비판과 선진 미래 지향에 대해선 일부만 동의한다. 그는 뜻이 좋으면 어디고 후원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가는 도정이다. 그도 장자에게 배웠고 과거에게 배웠음에도 역사를 가벼이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신념의 확신에 빠지기 쉽다. 과학 교사 김추령은 기후 변화에 대한 얘기를 원론적으로 탐구하여 담담히 얘기한다. 문학 비평가 김순아는 현대시를 통해 나타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인간 해방, 여성주의의 내면을 파헤치고 드러내며 사회의 여성에 대한 억압을 고발한다. 살아가는 각자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는 각자의 신념에 속한 화두에 달렸지만, 사실은 모두의 화두이기도 하다. '그걸 알아서 뭐하게?'나 '그런 게 사는 데 도움이 돼?'는 무지하거나 독한 이기심의 경우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는 없기 때문이고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중간 지점이기 때문이다.
육 년째 같은 동네에서 산다.
문학 모임을 탈퇴한 이후 조용히 지낸다. 모여 술 마시고 떠드는 것도 한창때의 도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 없는 열매는 없다지만 삶 전체가 고통이 되면 삶은 그대로 지옥이 된다. 그러니 고통을 이겨내라고 함부로 어깨를 두드릴 수 없다. 하지만 슬픔에 잠겨 흐느끼는 이의 곁에 서거나 그의 어깨를 적시는 슬픔이란 빗물을 우산으로 막아주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정치와 경제를 따로 떼놓을 수 없듯이 시민의 고통을 씻어 주는 게 정치 지도자의 역할 중 하나다. 상대 후보의 개인사를 물어뜯어 표를 가져올 수 있다면 네거티브가 야전의 교본일 수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정치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리하단 것들이 법복을 벗고 정치판을 기웃대며 침 흘리는 거나, 한 줌 인격도 없으면서 양아치처럼 시민을 위한다고 배 내미는 걸 보면 역겹다 못해 토 나올 정도다. 이 꼴의 판을 키운 건 시민 대중의 힘이 크다. 딱 자신 수준만큼의 후보를 지도자로 뽑고 임기 동안 후회하며 고통받는 게 천박한 유권자의 수준이다. 숱한 경험을 거치고도 성찰하지 못한 유권자는 다시 양아치에게 표를 던진다. 그러니 깨 놓고 얘기하자. 어디 제대로 된 인물 있겠는가. 최악이 아니라면 차악을 선택하자. 그러는 게 양아치의 굿판을 고통스레 지켜보기보단 나을 거다. 부딪치고 깨어져야 껍질 안의 알맹이가 비로소 얼굴을 내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