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

by 소인

미역


바닷가에 살 때 파도가 절벽을 때리는 곳까지 헤엄 쳐 갔다.

어선도 노햇마을 주민도 닿지 않는 험한 절벽의 종아리에 붙은 섭과 미역을 땄다.


시누대에 꿴 홍합살이 꾸덕꾸덕 마르면 말린 미역을 넣어 국을 끓였다. 운 좋은 날엔 물 빠진 개펄에 나가 해삼을 잡았다. 유난히 해삼이 많은 날 퉁퉁 불은 송장에 해삼이 떼로 붙었다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 미역만 먹었더니 미역 똥을 쌌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자를 꼬여 남도로 내려갔다. 경운기 몰고 고물장수를 하며 돌산 벌교를 쏘다녔다. 보리누름의 남도 들판엔 인심이 푸지게 넘쳤다. 다시 중선배를 탔다. 동지나 오사 해구에서 갈치 갑오징어 아귀를 잡았다. 우윳빛 대륙붕 바닥에서 문어와 곰장어가 닻을 타고 올라왔다. 바다 사람들은 폭풍우 속에서 배를 몰고 망망한 바다 쏘다니며 그물을 던지고 닻을 내렸다. 화태도 곰보 선장은 선원들이 몰래 복어를 손질해 먹는 걸 눈감아 주었다. 벽돌공장 사장은 느물대며 월급을 미뤘다. 한 사람이 나가고 내가 두 사람 몫을 했다. 술 취한 날 밤 여자가 달아났다. 아이를 안고 수배자처럼 어둠을 타고 도시로 숨어들었다.


나는 어미의 얼굴을 모른다. 어미는 자식을 낳고 아이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늘 미역국을 마실 때마다 얼굴 모르는 여자를 생각하다 날 떠난 다른 여자를 떠올린다. 아이는 먼 데서 아비를 저주하고 복수의 세월을 불리지만 아직은 모를 거다. 몸을 빌어 태어나고 떠나고 하는 게 아무의 뜻도 아닌 걸. 길은 천 갈래 만 갈래 어디로 가는지 아직 모른 채 볕이 쌓여 가는 고단한 날을 사는 것. AI가 차려주는 생일 상 촛불 세게 불어본들 꺼지지 않듯 살아가는 날의 더럽거나 맑은 정념도 그렇게 흐르다 말 거다. 나는 이기적이다. 세상의 무엇보다 나를 으뜸으로 친다. 내가 보고 숨 쉬고 느껴야 세상도 유의미하다. 나 없는 세상은 지구의 종말이다. 내가 죽는 날이 지구의 끝날이니.


치열한 삶의 전장을 피해 산골이나 바닷가 또는 섬에서 외롭게 살기 위해 독거 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생각해 보면 자연과 더불어 연기처럼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가족 위해 살았다고 하지만 나를 위해 산 것이기도 하다. 고독이나 외로움이란 감정만큼 소중한 감정은 없을 거다. 나와 주변, 나아가 생태와 우주를 살펴볼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람 속에 살면 사람의 생각을 좇느라 늘 헤맨다. 난 비승비속의 반거들충이다. 내 생각을 죽이고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임을 자각할 때 세상은 따스하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커다란 하늘과 땅임을 깨닫는다. 소인은 언제나 *시로도다.


산골과 섬에는 참으아리꽃, 갯메꽃을 닮은 사람들이 산다. 그들도 타인의 욕망을 증오하며 욕망을 꿈꾼다. 그들의 깨끗한 마당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 땅 뒤집고 물 바닥을 살피며 칠게처럼 인기척에 몸 숨기며 살 거다. 나의 외로운 여행에 행하지 마라. 지루한 염불에 싫증 내기 십상이니까. 그대는 그대의 여행을 난 나의 여행을 먼 곳에서 손 흔들며 응원하며 살기로 하자. 어느 날 으아리 꽃이 갯메꽃이 바람결에 떨어지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고 생각하라.


*素人(しろうと)

작가의 이전글잡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