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57)


"뭐 하는 분이세요?"


한국인들은 왜 상대의 직업부터 알고 싶어 할까?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상대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직업, 즉 돈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태도를 정하는 데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 상대의 직업이 자기보다 더 잘 버는 것이면 다소 주눅 들어 위축되거나 상대와 친하게 지내서 손해 볼 일은 없으므로 친절하게 대한다. 그 반대 경우라면 어떨까? 자기도 모르게 우월감이 주는 은근한 쾌감에 취하기 쉽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를 꼿꼿한 자세로 대하며 친하게 지낸들 별로 유익할 게 없으므로 사무적으로 대하거나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한국인의 전형적인 대인 관계 방식은 상대를 돈으로 평가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자각조차 못하는 한심한 상태라는 것이다.

「가짜 자존감」 김태형


수영장의 다와


도서관을 나와 문구점에 갔다.

흡착판을 사서 주차표지판을 붙였다. 군청사 옆에 멋지게 지은 실내 체육관으로 갔다. 가을의 아침 햇살이 환하게 퍼지는 실내 체육관 주변에 공설운동장, 테니스장 등이 깔끔한 모습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휴지를 줍고 있었다. 일층 안내실에 가서 수영장 회원권을 물어보았더니 월 중이라 다음 달 초에 시작하는 회원권 대신 일일 이용권을 끊으란다. 복지카드를 보여주고 감면을 받았다. 안내하는 여자 얼굴이 낯이 익었다. 마스크를 써서 못 알아보았는데 몽골 새댁 다와였다 '다와 씨 아냐?' '네, 안녕하세요' 하며 밝게 웃는다. 몽골 새댁과 몇 해 전 산불감시원을 함께 했다. 조용하고 참한 성격이다. 송이축제 때 다리에서 잠깐 보았으니 이 년만이다. 다와는 날 삼촌이라 불렀다. 아들이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단다. 러시아와 국경인 북방에서 자란 다와는 키가 큰 미인이다. 생김도 광대뼈가 도드라진 전형적인 몽골인과 달라 한국인과 구별이 어렵고 우리말을 잘한다. 처음에 보았을 때 몽골인인 줄 모를 정도였다.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솔롱고스'라 부르는데 무지개란 뜻이다. 아마 한복의 색동저고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친정 엄마가 일 년에 반은 한국에 와서 일하다 간다. 다와에게 몽골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다음 해부터 보이지 않았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서 다와에게 가져간 커피를 따라주고 나왔다.


돗밤실 공원의 색소폰


쉬는 날이라 마당 개를 관찰하는 일이 많다.

녀석은 잘 먹은 다음날이면 도통 사료를 먹지 않는다. 맛있는 걸 내놓으란 시위다. 아내는 버릇 고친다며 사료 외엔 주지 말라고 하지만 늘 지는 쪽은 나다. 점심 지나 녀석을 태우고 읍내를 벗어났다. 길에는 탈곡기를 싣고 달리는 트럭이 보였다. 누렇게 익은 논은 타작을 끝낸 논이 버짐 난 머리처럼 드문드문 보였다. 메주 콩잎이 노랗게 단풍 들었다. 본격적인 단풍은 남았지만 산에도 활엽수는 물들고 있었다. 시내로 가는 옛길을 타고 달렸다. 개는 바람을 느끼며 가을 냄새를 맡느라 콧구멍을 벌름댄다. 가는 길에 돗밤실 마을의 가로 공원에 멈췄다. 산을 뚫어 고갯길을 낸 곳인데 계곡 양쪽으로 구름다리를 놓았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개와 함께 올라갔다. 작은 밤송이가 보이고 이어 앙증맞게 생긴 산밤 몇 알을 주웠다. 석축을 쌓은 산소를 돌아 오르니 구름다리 입구였다. 잠깐 올랐는데 숨은 가쁘고 펼쳐진 풍경이 아득하다. 전국 어디에나 공원, 산책로의 정비가 마치 경쟁하듯 벌어지는 세상이다. 주민 휴식공간으로 만들고 보수하는 공원 비용만도 엄청날 거다. 관광지가 아니라도 군데군데 화장실을 만들어 관리한다. 예전에 도시의 공중 화장실에선 5원, 10원 돈을 받았다. 길 가다 물 얻어먹기는 쉬웠는데 요즘은 돈 주고 사 먹어야 한다. 남의 집 문 두드리고 물 좀 달라고 하면 아래위로 째려볼 거다. 서로를 불신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구름다리 위에 서니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올라올 때 가로 공원에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내는 소린가 보았다. 입문자 수준의 소리였다. 퇴직하고 나서 장년들이 유행처럼 색소폰을 배운다. 작은 군에 동호회도 여럿이다. 기타보다 배우기가 쉬운가. 기타는 나이 들어 배우면 힘든 악기란 생각이 든다. 치열하게 살아온 장년들이 악기 하나라도 취미 삼는 건 좋은 일이다. 사내는 연습실이 없는지 조용한 시골길의 공원에서 색소폰을 분다. 자주 막히는 게 한편으론 재미있다. 개와 함께 내려가 사내 쪽으로 가니 인사한다. '조용한 곳에서 색소폰 소리 들으니 좋네요' 하자 그는 부끄러워하며 이제 초급이란다. 아파트나 주택이라도 이웃에게 방해되면 연습이 어려우리라. 아내의 무서운 표정에 쫓겨 나왔을까. '열심히 하세요' 하니 '안녕히 가세요!' 하고 씩씩하게 말한다. 솜털을 잔뜩 매단 갈대꽃이 바람에 춤춘다. 개를 태우고 시내 쪽으로 달렸다.


상담사 아가씨


금연 3개월 차.

금연 치료제 약값을 환급한다는 문자를 받고 전화했다.

ARS 문을 몇 개 열어 상담사와 통화 연결됐다. 금연에 성공했냐고 물었다. 계좌번호와 주소를 확인한다. 용건을 마치고 끊으려는데 아가씬지 새댁인지 왈, '봉화는 아버지 고향이에요'한다. 전화를 닫으려다 멈칫했다. 어릴 적 기억인데 사슴인지 야크인지 키우는 뒷산이 선산이어서 성묘를 가곤 했단다. '?' 봉화 사람 아니니 추적이 불가했다. 성씨를 물었다. '배요' '아, 흥해 배 씨!' '네!'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난다. 산불감시원 경험이 떠올랐다. 석평 2리는 유록 마을로도 부르는데 유록(呦鹿)은 사슴이 운다는 뜻이라고 말해주었다. 배 씨 마을은 점잖은 사람들이 산다고 하니 기뻐하는 눈치다. 석평 2리는 산불감시원 때 담당 구역이었다. 난 서울 놈인데 고향이 사라져 처가 동네에 내려와 산다고 했다. 상담사는 요즘 시골은 살기 좋다고 했다. 어릴 때 내려가면 온통 흙길이어서 애먹었다며 웃는다. 난 길이 뻥 뚫리고 공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티 없어 보이는 상담사와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며 통화를 끝냈다. 사람의 온기가 잔잔하게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늦은 밤 양조장 사장으로부터 모레 새벽 술 뺀다는 문자가 왔다. 알람을 새벽 다섯 시로 설정했다. 이달 초에 빼고 두 번째다. 추석 지나니 술 소비가 줄었다. 오늘 내가 만났거나 통화, 문자를 주고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자존감을 만들 거나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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