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56)
팔십 중반 노인의 여행기를 본 적이 있다.
노인은 굽은 허리로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이국 땅의 정취에 빠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계획을 실천하고 다음 계획을 세운다. 열정은 노인을 움직이게 한다. 청춘이 가진 열정과 진취성, 호기심은 청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노인도 그런 감정을 소유하고 실천하며 움직인다. 다만 젊은 날의 근육과 육체는 아니니 더디고 굼뜨다. 감정은 청춘인데 몸은 노인이다. 그걸 인정하면 먼 길이 안전하다.
노인도 사랑하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은 여전하다.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친구들과 탁구를 치고 밥을 먹고 등산한다. 건강한 하루가 행복하게 흘러간다. 스마트폰으로 가짜 뉴스를 나르고 확인되지 않은 건강 상식을 주고받는다. 의심이 부족한 노인들은 그대로 믿고 따르기도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초점이 맞춰진 노인들은 가짜 정보가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식도 부모 말을 신뢰하지 않는 데야 청년을 가르칠 생각도 얘기를 나눌 꿈도 꾸지 못한다. 늙은 사람들끼리 만나 소통하고 떠드는 게 즐겁다. 동시대의 파도를 헤쳐 왔으니 서로의 감정과 형편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 서로를 알아준단 거다. 어쩌다 회원 중 하나가 편향된 보수 우파 꼴통의 주장을 퍼 날라도 답장 없이 무시하면 그만이다. 누가 그 회원을 나무라거나 핀잔주는 사람 없다. 가짜 뉴스를 옮긴 회원은 심드렁해져 다시 다른 걸 찾아 유튜브를 검색한다. 나이는 나이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 안다. 몸만 아니라 세계관도 먹혀들지 않는다. 백 세를 살면서 백 년의 역사를 꿰지 못하고 진부한 경험만 들먹이면 젊은이들은 돌아선다. 농경사회에서의 노인의 경험은 공동체의 지혜가 되었지만, 오늘에는 그저 낡고 고루한 고정관념으로 전락했다. '나 때는 말이야'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쪽팔린 걸 모르는 무지는 목숨을 연명하는 재앙과 다름이 없다. 빨리 사라져야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존재다.
강원도에서 출발해 전라도와 보길도, 부산 등지를 여행하고 들른 지인을 만났다. 이북 음식점에서 평양냉면과 어복쟁반, 굴림 만두로 슴슴하고 깊은 맛을 즐기며 여행 얘기꽃을 피웠는데 자꾸 내 목소리가 크다고 딸과 아내가 주의를 주었다. 요즘 차량 통행이 많은 초소 근무를 해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귀가 어두워졌나. 술이 오르면서 목청이 커지자 아내는 청력검사를 받아보라고 핀잔을 준다. 어쨌든 평생 처음 봉화에 들른 지인을 떠나보내고 얼큰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마당 개에게 여름 사과를 깎아주니 사각사각 맛있게 먹었다. 나도 흔해빠진 노인이 돼가는지 요즘 가족에게 핀잔을 자주 듣는다. 식사 후 트림이 제어되지 않아 눈흘김을 받는다. 말이 많아지고 자잘한 잔소리가 늘었다. 예전엔 없었던 것들이다. 진부하고 중언부언하는 지리멸렬한 꼰대가 될까 두렵다.
요즘엔 건강하면 나이 칠십도 빛이 난다. 그러나 사유의 무늬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구태의연한 모습이 아니길 노력해야 한다. 기대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청년과 장년, 노인이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졌다. 노인은 아프고 가난하고 외롭다. 남은 세월 스스로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노인은 차고 넘친다. 럭셔리한 말년이 보장된 노년은 얼마 안 된다. 게다가 세대 간 차별과 혐오는 점점 심해져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출근 지하철에 탄 등산복 차림의 노인을 바라보는 청년의 시선이 따갑다.
요즘 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나오는 캠페인이 마음에 걸린다. 팔십 전후의 노인들이 번갈아 나와 삶을 대하는 자세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는데 듣다가 토 나올 뻔했다. 대충의 요지는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복잡한 생각은 피하고, 남과 얼굴 붉히는 대화는 삼가며 현실을 긍정적으로 살라는 거다. 이게 무슨 늙다리들 헛소리란 말인가. 사회가 이만큼 성장해 온 것은 진부한 현실을 깨부수고 싸운 선대의 피땀이 아니었던가. 독재 정권에 아부하고 엎드린 다수의 시민과 달리, 의연히 맞서 싸운 열사들의 목숨 값 아니었는가. 기성세대의 주장과 담론을 긍정해서 뭐가 달라지고 고쳐졌는가.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얼굴 붉히면서까지 대화를 끌어내야 현실의 상황을 넘어서지 않겠는가. 법이 아니면 법을 뜯어고치고 제도가 부조리하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만히 있으면 악의 싹은 점점 자라 자신의 발목이 썩어간다. 잠자는 민중의 의식을 두드려 깨운 선각 제현의 고투가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가 존재했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선두를 바라보기만 하고 동참의 호소에 입을 닫고 외면한 '44번 버스'의 승객이진 않았는가.
누가 들을까 부끄럽고 두려웠다.
나이 처먹으려면 제대로 처먹어야지 늙어 욕망은 그대로인 채 노욕이 질펀하고, 삶의 성찰은 딴 나라 얘기고 가족 공생 이기주의에 빠져 이웃의 눈물은 외면하고 제 자식 앞길만 꽃길 되길 빈다면 너무 추하지 않은가. 누구라도 개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순 없다. 그러나 자신이 이룬 모든 게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쳐야 한다. 나를 제외한 타인이 없었다면 없었을 것이었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라는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끝을 모르고 재생, 반복된다. 황소를 흉내 내는 어미 개구리의 배는 점점 불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