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58)
바람은 찬데 햇살은 따갑습니다.
침 맞으러 간 동료는 여적지 감감소식입니다. 접촉 사고 후 치료 중이지요. 하루 걸러 아침 답엔 혼자 초소를 지킵니다.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지요.
B초소 앞으로 고추 포대 실은 트럭이 지나갑니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사들인 마른 고추 포대가 뒤뚱대며 달려갑니다. 고추 상인 오늘 일당 짭짤합니다. 뒤이어 들판에서 타작한 나락을 담은 톤백(ton bag)이 지나갑니다. 가을 되니 수확물 나르는 차가 많이 지나갑니다. 단풍 든 들깻잎 따고 낫으로 벤 들깻단 실은 트럭이 조심조심 지나갑니다. 고소한 들깨 알 떨어질까 고양이 걸음입니다. 누런 들판에 산책 나가면 수확을 포기한 논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목도열병이 퍼져 쭉정이만 달았기 때문이지요. 늦더위에 급작스레 찾아온 한파로 김장 배추 물러 터져 배추밭에 시름이 한가득입니다. 참깨는 대풍이란 소식입니다. 하늘 보고 짓는 농사는 날씨가 풍흉을 좌우하기 때문에 농부는 하늘에 대고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인간들 보면 벼락은 어디 다 떨어지나 모르겠습니다. 잘났다고 설치는 물건들 보면 살아 있는 재앙이 따로 없습니다. 전용도로 아래 교차로엔 여러 사정의 차들이 지납니다. 초소 뒤 공터는 터미널입니다. 일하러 가는 사람, 동해 쪽으로 소나무 찾아 카메라 들고 가는 사람, 애인 만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 등 가지가지입니다. 저녁 답 이들은 터미널로 돌아와 차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어떤 날은 며칠씩 잠자는 차가 있습니다. 일이 쉬 끝나지 않거나 연인과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양입니다. 나도 한때는 좀 놀았지요. 여자랑 바다를 보러 가거나 숲 속에 들어가 산딸기를 따먹거나 돌 틈의 가재를 구경했지요. 맛난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에 빠지곤 했답니다. 지금은 가끔 머릿속에 떠올리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길에서 만나고 길에서 헤어지는 건 인간의 오래된 습속입니다. 만남이 없다면 삶은 확장되지 않지요. 루쉰(魯迅)은 길을 희망의 비유로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해서 언제나 옳은 길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누구나 공감하지요. 자본주의가 가리키는 길은 임금 노예, 이기적 대세 추종 집단의 확산입니다. 표류하는 자아의 군상입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마따나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로의 대안이 맞을지 모른단 생각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의 토대는 종교처럼 단단해 죽음 이후의 내세까지 통제하는 듯 보입니다. 무한 경쟁으로 인간의 삶은 피폐해지고 무너져 각자도생 하는 힐링이 유일한 구원 방식처럼 유행합니다. 다 함께 잘 사는 길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흙을 잔뜩 실은 덤프트럭과 레미콘 트럭이 쉴 새 없이 지나가며 먼지를 일으킵니다. 다른 조는 한 여름에도 초소 문을 닫고 지냈습니다. 한증막 같은 더위를 어떻게 견뎠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우린 서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뒤에야 문을 닫았습니다. 어쩌다 비 오는 날이면 먼지가 씻기지만 달리는 차량이 하도 많아 비가 그치면 금세 말라버립니다. 동료와 나는 마지막 두 달 남은 S면 초소로 옮겨 가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긴 교차로가 두 군데라 ++ 길을 살펴야 하지만 S면 초소는 ㅡ자의 양방향만 보면 되기 때문에 일하기 편합니다. 다음 달 초에 가면 이미 추수가 끝나 주민들 얼굴 보기도 힘들 겁니다. 텅 빈 논과 밭, 잎을 떨군 나무들, 헐벗은 겨울 산이 배경이 되겠지요.
쉬는 날 나가미네 마사키(長嶺超煇)가 실화를 그림책으로 쓴 「마지막 산책」을 읽었습니다. 전범 국가 일본의 책을 의심을 품고 꺼내 든 거지요.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주인공 '하루'는 치매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마지막 산책을 합니다. 추억이 깃든 강변 나무 아래에서 밤을 보낸 하루와 어머니. 하루는 어머니의 목을 조릅니다. 간병에 지친 자녀의 '존속 살인'은 어제오늘 벌어지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독박 간병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나오고 실업급여마저 끊겨 이틀에 한 끼를 먹으며 어머니를 간병했던 하루는 여러 기관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한계에 다다릅니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부끄럽게 사회에 손을 내밀 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존속 살인을 택한 것입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지만 가까운 미래의 한국의 모습입니다.
가족에게 사랑과 물질로도 해준 것 없이 늙고 병들어가는 게 나의 경우입니다. 늙어 병 들어 죽는 건 누구나 겪는 개인의 마지막입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경험으로 인간은 고통과 도락을 느낍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건 누구나의 바람이지만 불행히도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닌 우연에 기인합니다. 환경에 처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일정 정도의 삶은 바라는 대로 이뤄질지 모르지만 행불행의 요인 중에 재수라고 하는 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결코 무시하지 못합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과 '자다가 떡이 생긴다'는 말은 운의 있음과 없음의 우연을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아무리 싫다고 달아나도 돈이 쫓아오는 사람과 기를 쓰고 가난 탈출을 하려고 애쓰는 데도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의 경우는 천지 차입니다. 포병 장교였던 나폴레옹이 패전한 마지막 전투 워털루에서 비가 조금만 늦게 내렸어도 프랑스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비가 그쳐 땅이 마르길 기다렸던 나폴레옹의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불렀고 이 전투의 패배로 그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단재 신채호가 지룽항(基隆港)에서 체포되지 않았다면 그는 뤼순(旅順) 감옥에서 뇌일혈로 3일간 방치되어 죽지 않고 해방을 보았을까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긴 기회주의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마지막에는 심복에게 피살당하는 역사의 예도 있습니다. 그럼에 오항녕 교수는 역사를 시대 환경과 인간의 의지 외에 우연성을 요소로 두었습니다. 개인의 일생 또한 거시적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의원에서 침 맞고 온 동료가 이번에는 출석부를 들고 군청으로 달려갑니다. 매월 출석부 점검이 끝나면 급여가 나옵니다. 이번 달도 벌써 끝물입니다. 자잘한 일에 성이 찰진 미처 몰랐습니다. 하지만 큰일은 디테일부터 출발합니다. 넉넉한 마음먹어야지요. 먼지가 다시 들어옵니다. 창문까지 꼭꼭 닫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