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말은 인식의 표현이다.
의식은 무의식과 의식 모두를 포함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던진 말이 타인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뱉은 이에겐 무기지만 받은 이는 고통이 된다. 농담과 시쳇말도 상황에 따라 상대는 시체가 되어 너덜 해진다. 난 한때 함부로 지껄이는 놈이었다. 지금도 더러운 성벽은 남아 있는데 가끔 예전의 나만한 인물을 가끔 본다. 그들은 자신의 말에 복잡한 층위의 그물이 짜여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문제는 자신이 잘났다고 믿는 거다. 정치는 말로써 하는 행위다. 그런 것들이 공익을 앞세워 사익을 노린다면 재앙도 이만한 게 없다. 무지를 무기로 휘두르고 세상을 활보할 때 미세먼지가 풀풀 날린다. 시민의 무지는 자신이 선택한 결과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에서 진심이 우러나온다. 인연은 맺는 데만 있지 않다. 처음의 선연(善緣)이 악연이 되기도 하다. 인연은 지속과 끊기를 반복하는 삶의 행위이자 본질이다. 명필 왕희지가 제자들에게 말했던 ‘非人不傳 不才勝德(비인 부전 부재승덕)’은 인품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는 높은 벼슬이나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이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세상엔 비인(非人)도 덕이 빠진 재주도 넘친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저마다 자신의 깜냥에 넘치는 말을 물처럼 쓰기 때문이다.
말의 차이와 차별.
차이는 언뜻 들으면 다양성으로 읽힌다. 원래의 뜻이 그랬지만 요즘은 너와 내가 다른 차이조차 차별로 변질되는 느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는 능력으로 통한다. 가치의 최상위를 선점하는데, 가치로만 따지면 마치 재화 이외는 낮은 가치처럼 생각된다. 사람들은 물질 이외의 정신 가치를 우위로 치며 자본주의를 밀어내지만 속내는 역시 자본에 기운다. 높은 자리, 큰 집, 좋은 차, 비싼 입성을 보고 사람을 평가한다. 인문적 지식, 인문적 교양 어쩌고 이전에 돈부터 벌고 보자는 심산이다. 가난한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 난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러다 죽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재화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지금은 재화에서 마음이 멀어졌다. 운명을 믿진 않지만 운은 믿는다. 재화는 나의 동무가 아니란 걸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그러고부터 마음도 몸도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하고 싶은 일에 제약이 따르더라도 내일 양식을 걱정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란 걸 늦게야 깨달았다. 무턱대고 부자를 욕하진 않지만 그의 돈에 대한 집념은 부박하게 여긴다.
흠푸하흠-을 종일 연습한다.
영법에 따른 숨쉬기 연습이다. 수영은 호흡이 고르게 되지 않으면 가다가 서고 만다. 삶의 기본도 동작에 있다. 마음과 몸의 동작에서 튀어나오는 생각과 말은 그 사람의 텃밭에서 길러진다. 돌이 섞인 거친 땅이어도 성심으로 일구고 가꾸면 다디단 열매를 얻을 거다. 적은 소출이라도 하늘과 바람과 비에게 감사할 줄 아는 농부는 쭉정이만 남은 빈 밭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만종(晩鍾)」을 그릴 때 모델을 찾아 들판을 헤맨 끝에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자신이 살던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캔버스에 담은 것이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수확을 내준 대지에 대한 감사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가 스민 명작이다. 뒤늦은 각성에서 돈오(頓悟)와 같이 나의 뒤통수를 후려친 건 말을 아끼란 죽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