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308)
휴무일은 아침부터 바쁘다.
먼저 하는 일은 빨래 돌리기다. 수고는 세탁기가 하지만 일상의 정리 정돈에 꼭 필요한 일. 작업복과 모자, 속옷을 종류별로 돌려 마당에 넌다. 영하로 떨어져 빨래는 금세 동태가 되었다가 햇발이 넘어오면 풀풀 김을 피우며 꾸덕하게 말라간다. 간밤 잠을 설쳐 늦잠을 잤다. 서둘러 개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돈다. 날이 새자마자 현관문 앞에 앉아 내가 나오길 기다리는 녀석을 외면할 수 없다. 내가 집을 떠나면 녀석도 포기하겠지. 공터에 세워둔 차는 서리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이른 아침 추위에 덜덜 떤다. 월요일이라도 이른 시간이라 집집마다 조용하다. 밥을 끓이고 출근 준비하는 소란이 벌어지고 있을 터다. 성당을 지나 군민회관을 돌아 집으로 왔다. 물그릇이 꽁꽁 언 걸 확인한 개는 물 먹기를 체념하고 집으로 뛰어간다. 화분의 베어낸 메리골드 밑동을 잘근잘근 씹더니 화분에 올라가 뽕나무 겨울눈을 씹어본다. 저러다 내년 봄에 뽕나무 새순 보기 힘들겠다.
아침 먹고 아내를 태워주러 나갔다.
아내 차는 딸아이 병원 갈 때 쓴다고 저녁에도 데리러 오란다. 어제 퇴근하자마자 시내 나가 아내에게 청바지 하나 사주었다. 내 것도 하나 샀다. 겨울 청바지 두 벌이니 더 필요 없다. 청바지라도 검은색 청바지다. 예전엔 푸른 청바지를 잘 입었는데 어느 땐가부터 청색이 촌스럽단 느낌이 들고부터 검은색만 입는다. 색깔도 마음의 유행을 타나. 아내를 내려주고 아침 햇살이 눈부신 시골길을 달려 실내 수영장으로 갔다. 12월 자유이용권을 끊고 안내실의 다와 씨와 아가씨에게 초콜릿 하나씩 주었다. 다와는 산불감시원 할 때 알게 된 몽골 새댁이다. 키 크고 미인인 데다 우리말을 잘한다. 날 삼촌이라고 부른다. 한 달 더 자유 수영으로 동작을 익히면 초급 수준은 넘어서리란 생각이다. 자유형과 평영의 완전 숙지가 목표다. 접영은 수술한 왼 어깨로 무리다. 흉내 냈다가 이틀 동안 아팠다. 배영은 딱히 배울 게 없는데 잠영과 수상 구조사의 영법인 트루젠 정도까지 익히면 만족한다. 뱃살은 더디게 빠지지만 몸이 날씬해지는 걸 느끼니 수영에 재미가 붙는다.
수영을 마치고 카센터에 갔다.
엔진오일을 갈고 라이닝도 교체했다. 꽁지머리의 기사에게 수영하느냐고 물었다. 샤워실에서 몇 번 본 것 같은데 긴가민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 옳거니! 내가 본 사람이 맞았다. 그는 소읍에 실내수영장이 생기고부터 수영을 시작했다는데 수준급이었다. 어깨가 탄탄하다고 했더니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한단다. 내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오래 했다고 하니 기회 되면 데려가 달라고 한다. 그에게 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보여주었다. 바다에서 물질로 잡은 문어 조개 생선이 그득하다. 언젠가 카센터에 갔을 때 수리하는 차가 없어 한산한 모양인지 꽁지머리의 기사가 구석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다가가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수필집이란다. 며칠 지나 지역 문학 동인지를 구해 그에게 주었다.
집에 돌아오니 빨래가 많이 말랐다.
햇볕에게 고맙다. 당연하게 공기를 마시며 살다 물속에서 숨을 참다 산소에게 감사한다. 언 손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에게도 감사한다. 비와 바람, 햇살, 세상의 구석구석 쓸고 닦는 이들의 수고에 우리는 얼마나 빚지고 사는가. 아내와 아이들, 밥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는 손길에 나는 얼마나 무심했나. 간밤의 떨어진 기온은 해가 뜨기 무섭게 올라갔다. 마당 개는 따스한 햇볕을 쬐며 노곤하게 몸을 덥히고 있다. 수영복을 널고 물안경에 묻은 물기를 털었다. 오늘은 물안경에 김이 서리지 않았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세제와 식초를 섞어 닦으면 김이 서리지 않는다고 해서 어제 다이소에서 작은 스프레이 공병을 샀다. 평소엔 레인을 돌 때마다 물안경을 벗어 물에 씻었다. 인터넷이 편리한 상식을 전하기도 한다.
젊은 작가가 쓴 산문집을 읽는다.
요즘 젊은이는 글에서도 내밀한 표현에 거침이 없다는 느낌이다. 그런 글이라야 독자에게 울림을 주기 마련이다. 자신의 고통, 방황, 사랑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글은 읽으면 후련해진다. 딱딱한 철학서보다 말년의 작가가 되돌아본 삶의 이야기보다 경쾌하고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젊은 작가들의 공통점은 남의 눈치에 가치관을 맡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사유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아픈 것, 부끄러운 내면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확신으로 자기중심의 다양한 삶을 열어 가는 젊은이들의 고백과 용기를 좋아한다. 지나간 세대로서 그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경의를 느낀다. 우리는 얼마나 조바심 내며 편협한 삶을 살았는가 반성한다. 타인이 강요한 삶을 열심히 사느라 정작 인생의 깊은 부면을 외면하고 여울물 같은 얄팍한 감정을 첨벙 대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타인을 내 속에 득시글하게 붙안고 살아왔다. 인간은 좀 더 외로워야 한다. 철저하게 고독해야 자신에게 솔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