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61)


12월이다.

흔해빠진 상념이 유행가처럼 떠오르겠지만 사는 게 그런 것 같다. 시간도 빠르고 사건도 많다. 오늘부터 낮에도 춥단 예보다. 바람이 몹시 불었던 한밤중이었다. 마당에 나가니 양철 지붕 위에 사라락 사라락 싸락눈이 떨어진다. 골목 외등 불빛에 몰려가는 눈보라가 실비 같다. 장마철에 노드리듯 퍼붓던 빗줄기도 저 모양으로 바람에 쓸려가 마음까지 서늘해진 적 있었다. 한동안 내리던 싸락눈은 멈췄다. 겨울비치고는 청승맞게 철철 내린 비가 눈으로 변했다면 폭설이 되었을 거다. 이번엔 비로 뿌리다 싸락눈이 됐지만 날씨는 언제고 제 성깔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 거다. 사람의 기분도 날씨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햇살 투명한 날에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아도 마음이 씻겨지는 느낌이 든다. 흐린 날보다 비라도 죽죽 긋는 날이면 우울을 가장하지 않더라도 우울해지기 십상이지만 외려 차분히 상념에 젖을 수 있어 좋다. 인간은 반추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지난날을 더듬어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음습하거나 궂은날이 제격이다. 포시라운 마른자리보다는 진 자리에 생각의 싹이 자라기 쉽다.


ML라고 별명을 붙였던 강원도 친구가 죽었다.

멜랑꼴리 한 분위기를 풍긴 친구였다. 이웃 야영장에 근무하면서 사귄 친구였다. 폐교를 야영장으로 활용한 교육청 소속 공무원이었다. 그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염세적이어서 별명을 잘 붙였단 생각이 들었다. 늦게 장가들어 남매를 키웠는데 그들도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고, 대학을 다니는 성인이 된 터였다. 내가 경북으로 이사하고 나서 담낭암에 걸렸다고 했는데 일 년 약 먹고 치료하고 다 나았다며 공허하게 웃었다. 가끔 노햇마을에 갈 때마다 얼굴을 보았는데 좋아하던 담배도 끊고 월급날 찾던 다방 아가씨도 뚝 끊었단다. 퇴직 후 연금 생활하면서 집에서 놀던 그의 낙은 음악 듣기와 고물 전자기타를 퉁기는 거였는데 실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다섯 형제의 맏이어서 모친을 모시고 살았는데 실상은 모친이 그를 데리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선친이 물려준 전답을 틈틈이 팔아 목돈을 쓰곤 해서 이젠 텃밭 정도 남은 형편이었다. 강원도 바닷가에서 십오 년 사는 동안 사귄 친구 둘 중 남은 친구였다. 첫 번째 친구는 재작년에 떠난 일구 형이다.


일구 형은 어느 해 겨울 바다에 붙은 도서관에서 만났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안면이 있어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더니 도서관 경비란다. 형은 베트남전에 다녀왔다고 했다. 더블백에 돈 되는 물건을 꾸역꾸역 가져와 수송대에서 군수품을 삥땅 친 것 합한 돈으로 전답도 샀다고 했다. 형은 군 체육대회 마라톤에서 우승할 정도로 달리기를 타고났지만 일찍 찾아온 당뇨로 매일같이 산책을 했다. 그 무렵 당뇨약을 먹기 시작한 나는 우리를 슈가 브라더스라고 불렀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산길을 걷기도 하고 뜨거운 여름날 바다에 들어가 조개를 캐고 고동을 잡았다. 만두 잘 빚던 진부 출신 형수가 쓰러져 이년 고생하다 먼저 떠나고 형의 낙은 노인복지관 미녀 삼총사를 만나는 일이었다. 홍조 띤 볼에 쌍꺼풀 진 눈에다 부드러운 말씨의 형을 따르는 여자가 셋이나 있다며 갈 때마다 헤헤거리며 자랑을 늘어놓던 일구 형이었다.


사실 형은 분식, 세탁소를 하며 잘 나갈 땐 밤마다 항아리의 돈을 쏟아 셀 정도였다. 땅도 사고 큰 집도 지었다. 어느 날 차압 딱지가 날아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장질 오래 했던 선친이 늦바람이 나서 아들 도장을 훔쳐다 여자들에게 돈을 뿌리고 난 뒤였다. 마른오징어를 두툼하게 싸들고 서울을 오간 소송 끝에 알거지가 됐어도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는 건 한국전쟁 때 어린 형을 업고 며칠 눈 쌓인 피난길을 걸었던 아버지의 따스한 등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후로 도서관, 학교 경비일을 했다. 당뇨를 이겨낸 형은 숙직실 의자에 앉은 채 숨을 거뒀다. 형이 떠나고 여름에 찾은 노햇마을은 온통 낯설었다. 언제고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사라진 상황은 가슴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웠다. 일 그만두면 아우 사는 경북 땅에 기차 타고 놀러 가마고 했던 말은 빈 약속이 되고 말았다.


한 동네서 살았던 이웃 중 세 남자가 떠났다.

서울이 고향인 옆집 형은 강원도 여자와 만나 바닷가에 정착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다. 두 아들을 걱실하게 키워내고 손주 보는 재미에 빠진 어느 해 여름 비지땀 흘리며 풀 베던 나를 울타리 너머 형이 불렀다. 예초기 내던지고 형의 집 정자에 앉아 흑맥주에 소주랑 양주까지 곁들여 거나하게 취했다. 형은 이웃에 맘 맞는 동향의 술친구가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이틀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형은 복지관 점검 중 쓰러졌다. 퇴직을 일 년 앞두고 이쁜 손주와 며느리를 두고 서둘러 떠난 거였다. 형이 떠나고 다음 해 봄 난 약속한 대로 형의 집 마당을 넘보는 등칡을 뿌리째 자르고 약을 발랐다. 내가 낫 들고 나무 사이를 기는 동안 양양 형수는 눈물을 찍으며 술상을 차렸다. 이사하고 앞집 할머니의 전언에 의하면 형수는 일 년 후 오대산 홀아비를 따라나섰다고 한다. 살아 부부의 정이 깊으면 속정도 빨리 떼고 싶은 모양이다.


이사 전에 나무 일하던 진순 씨가 좋아하던 술과 함께 죽고, 동네 반장 땡칠 씨가 한여름 산에서 소나무 캐다 쓰러져 떠났다. 내가 살던 집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살던 남자들이 하나 둘 이승을 떠났다. 삶에서 느닷없는 이별은 무수히 많다. 혈육도 배우자도 하물며 연인도 영원한 약속은 금물이다.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로 만나 금석 같은 언약을 맺은들 아침이슬만도 못함에랴. 여적지 내가 살아 그들과의 뜨거웠던 인연을 곰곰 생각하니 삶이 꿈인 듯 긴가민가한 느낌이다. PSA가 elevated 되어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은 동료는 말이 없다. 그는 야뇨증으로 찾아간 의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휴무일 지나고 출근한 동료는 유난히 상기된 얼굴로 말을 많이 꺼냈다. 난 그에게 더 물어보지 않았다. 인간의 수명에 대한 운수를 믿지 않는다. 다만 풍요로움보다 풍성한 인생이었길 바랄 뿐이다. 더는 아프지 말고 마누라 잔소리도 없는 곳에서 평온히 잠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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