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62)
소읍에 첫눈이 내렸다.
어둑 살이 가시지 않은 마당에 싸락눈이 싸락 싸락 내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내린 눈은 양철 지붕을 하얀 옷으로 덮고 있었다. 요 며칠 추운 날씨에 집안에 들여놓은 개는 어서 산책 가자고 보챈다. 남도의 어느 지방은 겨울에도 결빙점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다. 여름에도 시원한 그곳의 강우량은 전국 최고다. 거기 사람들은 영하나 눈 쌓인 날씨를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기후는 삶의 양식을 좌우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농사, 먹거리, 일상 모든 것이 날씨에 따라 적응하고 맞춰진다. 자연환경과 문화는 역사의 우연성과 포개져 새로운 국면을 연출한다. 혈통 학적으로 뛰어난 북반구 사람이 식민지와 노예제도를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다. 환경에 적응한 인간의 욕망이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다 역사의 우연성과 겹쳐 인류의 고통을 야기한 거다. 파푸아 뉴기니의 원시 공동체를 답습하는 사람들의 공생과 연대의 전통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P.A. 크로폿킨은 자신의 연구 경험을 토대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전형을 「상호부조론」에서 보여주었다. 이기적 유전자가 살아남은 건 약육강식 적자 생존의 결과가 아니라 이기적 유전체의 적응에 유리한 결합의 결과다. 분열과 싸움으로 지친 종족은 전멸했다. 현재는 지옥도를 빼다 박은 욕망의 도가니에 다름없다. 타인을 배제하는 이기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연민과 공감, 협조와 공생을 지킨 종족은 살아남았다. 그들이 끝까지 살아남지 못한 건 타 인종의 침략과 학살 때문이었다. 대동아공영을 내걸고 침략 전쟁을 미화한 일본은 아시아 전역을 폐허로 만들고 원폭을 맞았다. 과거의 역사에서 성찰하지 못한 일본은 지금도 영토 야욕을 드러내고 전쟁 준비에 골몰한다. 멍청한 시민은 국가의 잔인성을 그대로 따라 하고 뜻있는 소수의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현재의 인류는 문명의 편리를 당연하게 소비하고 즐긴다.
태어나 보니 인터넷이 범람하고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대였다. 인류는 문명이 가져다준 편리함을 빼놓고 하루도 살 수 없다. '자연 휴양림'이라고 이름 붙이고 와이파이, TV, 에어컨이 팡팡 터지는 별장에서 휴식을 즐긴다. 도시의 일상을 숲 속에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이다. 불편한 건 잠시도 참지 못하게 되었다. 걸으면서 전화하고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는 문명의 혜택을 어찌 한시라도 외면하겠는가. 자기 전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두고 알림음이 울리면 자다가도 sns를 확인한다. 비대면 불특정 다수의 '좋아요' 하나로 우울한 마음이 화들짝 밝아진다. 문명의 대세에서 따돌림당하는 건 불안과 공포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sns에서 나를 만나고 타인에게서 자신을 본다. 극명하게도 인간은 자신의 발등을 내려다보지 타인의 외로움엔 관심이 없다. 오늘 하루 지난 일을 돌이켜볼 때 나를 중심으로 일상을 반추한다. 세계는 자신의 인식이 움직일 때 비로소 작동한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말하지만 내가 죽으면 시간은 영원한 침묵으로 이어진다. 내가 중심이었던 세계의 문이 쾅! 하고 세게 닫힌다. 기억은 남은 자의 몫이지만 그것도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다 영겁의 침묵 속에 묻힌다.
혼자서 등짝에 파스 붙이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날짜가 다가오니 수십 번 생각을 뒤집었다. 습속이란 무서운 거다. 가족과 공동체를 떠난다는 게 이처럼 망설여질 줄 몰랐다. 낯선 곳에서 홀로 산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기도 하지만 난 젊었을 적 주로 일인 생활을 했다. 선택하고 결정한 건 스스로의 몫이었다. 후회도 절망도 없었다. 가족이 생긴 후로 가족을 위해 살았다고 느끼지만 인간은 함께 있어도 외로운 존재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누구의 삶도 그 사람에겐 소중한 인생이고 기회다. 한 번뿐인 인생을 풍성하게 사는 것도 각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개와 충혼탑에 올라 잠든 소읍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아름다운 생이란 무엇인가. 지리멸렬하고 중언부언의 흔해빠진 삶은 싫다. 그렇다고 유난한 삶도 지겹다. 돌이켜보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생각은 중언부언했고 진부한 가치를 새 것으로 여겨 좇았다. 옛사람의 흔적을 따랐고 그들이 욕망한 것들을 욕망했다. 스치는 바람결에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사람처럼 장삼이사의 밋밋한 바람이어도 살만한 가치는 있다고 믿는다. 지향하는 가치가 반생명이거나 반인간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행복을 목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간다. 그러나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다.
늘그막에 객지를 떠돌며 밥을 버는 후배를 생각한다.
그의 한숨과 고독을 지워줄 무엇도 세상엔 없을지 모른다. 그의 고단한 밤을 생각해주는 나의 상념이 자리끼 같은 숙취의 위로라도 된다면 좋겠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했지만 고통과 번민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건 고독한 자신의 몫이다. 농담 같지만 난 요즘 수영을 하며 물에 저항한다. 몸을 물에 맡기고 저항의 동작을 되풀이하며 물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시간 물에 있다 나오는 순간 중력 때문에 몸이 축 갈앉는 걸 느낀다. 고해의 바다인 물속에서 나는 익힌 영법으로 헤엄쳤던 거다. 세상은 부력이 없는 중력의 세계다. 이번엔 날아오르는 거다. 주저앉거나 머물거나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더 멀리 보기 위해 높이 날아오르는 선택을 실행에 옮긴 거다. 「슬로 라이프」에서 쓰지 신이치는 '인생이란 애당초 이런 잡일들의 집적이 아닌가. 할 수만 있다면 하지 않고 지나가고 싶다고 여기는 일들이 실은 삶의 보람이며 우리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친구를 사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작은 꽃을 들여다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도 걸리지 않고 조금도 성가시지 않은 일들에서는 그 어떤 즐거움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거나 경비행기 조종술을 배워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