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by 소인

편두통


두통이 왔다.

일 년에 한 번은 찾아와 꼬박 이틀을 머물다 간다. 엊그제 수영할 때 동작이 잘못되었는지 등짝이 아파 파스를 붙이고 근육 이완제를 먹었는데, 이번엔 편두통이다. 주말엔 쉬고 월요일부터 하는 수영을 못할까 봐 덜컥 걱정이 났다. 아내는 매일 수영을 해서 몸이 무리했다고 당분간 쉬란다. 천지개벽하듯 소읍에 생긴 수영장도 다닐 날은 한 달 안쪽이다. 남도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도 수영을 일상으로 할 생각이다. 일요일 오전 문 연 약국에서 편두통 약을 샀다. 약사는 미가펜이 생산 중단되었다며 내가 문을 열고 나가는 중에도 뒤통수에 대고 중얼댔다. 말 많은 사내다.


편두통은 원인이 불투명한 병증이다. 뇌혈관이 확장되거나 염증으로 인해 신경을 건드려 통증이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수영하기 전후에 초콜릿을 떼어먹고 근무 중에 커피는 달고 사는데 이틀 간은 끊기로 한다. 몸의 고통이 일상화된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이 간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고통이 습관화되어 고통의 강도가 무뎌진다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자는 동안 잊었던 정신의 고통도 아침에 깨면 새살 돗듯 살아난다. 고통은 또한 철저히 개별적이다. 고통받는 이의 고통을 대신할 순 없어도 옆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우산을 받쳐주기보다 함께 비에 젖는 게 낫다. 고통이 낙인이 되어 삶을 잡아 흔드는 걸 트라우마라고 한다. 스트레스나 짜증은 일시적 쾌락이나 휴식으로도 해소가 가능하지만 트라우마는 일생을 통해 치유해야 한다. 어릴 적 개에 물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커서도 개를 두려워한다. 트라우마는 인간의 존재를 물어뜯는 괴물 같은 대상이다. 나에겐 가족과 관련한 트라우마와 몸에 관한 트라우마 두 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희미하게 흔적만 남았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으니 극복이라곤 할 수 없어도 트라우마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느낌에 가깝다.


어릴 때 부모의 이혼과 태어나자마자 목욕물에 덴 오른손의 화상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나의 삶을 쥐고 흔들었다. 아이들과 싸움을 하고 복싱도 했다. 싸우고 나서 친구가 되었다. 쫑파티에 나가 사회를 보고 기타를 쳤다. 그림을 그렸고 글씨는 달필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나 군 면제를 받았고 해외 취업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얼굴 모르는 생모에 대한 원망이 모성에 대한 부정과 여성에 대한 적대감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여성 편력은 뼈아픈 훈장이 되었고 지금은 모성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정도로 나이 들었고 여성은 남성보다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의 모태와 평화 지향은 남성성을 초월한 가치로 여긴다. 나이 들수록 내 안의 여성성을 키우는 데 골몰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와 인간성 회복에 으뜸의 사상이라고까지 믿게 되었다. 반 생명, 반 여성은 반 인간적이며 반 공동체적이다.


글을 끼적이는 동안 편두통이 점점 물러간다.

내일은 수영장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수영은 여타 운동과 마찬가지로 동작의 세밀함이 조화를 이룬 운동이다. 생존 수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긴박한 상황에 살아남기 위해 물에서 버티는 동작이다. 하지만 숨이 가빠지고 물을 먹는 형편에서 생존 수영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나 있겠는가. 물은 자꾸 끌어당기고 몸은 따라 가라앉으니 죽어라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을 거다. 생존 영법은 누워서 하늘을 보고 떠 있거나 선 자세로 팔다리를 흔들어 입영(立泳)하는 건데, 평소에 훈련하지 않았으면 하기 어려운 동작이다. 내게 생존 영법은 수영하던 사람이 휴식하는 자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헤엄칠 수 있는 건 아니니 생존에 필요한 동작을 알아둘 필요는 있다. 당황하지 말고 누워서 하늘만 봐도 코로 숨 쉴 수 있다. 팔다리는 살살 흔들어 몸을 띄우는 정도로 하고. 입영 자세는 선수도 하기 힘든 동작이다. 파도가 덮치지 않는다면 무조건 누워서 하늘을 보며 구조되길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나는 자유형과 평영 연습을 주로 한다.

이십오 미터 레인을 한 시간에 스무 번 이상 왕복한다. 배영은 심심하고 접영은 왼 어깨 인대 수술로 접었다. 사이사이 가끔 횡영(橫泳) 왕복을 하는데 예전엔 모자비 헤엄이라 불렀는데 수상 구조사의 영법 중 하나다. 모자비 헤엄과 송장 헤엄(배영)으로 소싯적엔 한강과 한탄강을 건넜다. 수영장에서 횡영으로 머리를 내놓고 쓱쓱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수영도 세대 차이인가 싶었다. 아내는 개헤엄이 수준급이고 딸아인 물을 무서워한다. 수영 가르쳐주겠다고 하니 손사래부터 친다. 개헤엄으로 세계 신기록이 나왔다면 모두 개헤엄 배우겠다고 난리 칠 거다. 생존 수영의 으뜸은 개헤엄이다. 곰돌이가 지난여름 물속에서 네 발을 저으며 헤엄 치는 걸 물속에서 봤다. 말이나 소도 물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다리를 젓는다.


수영장에 다닌 지 한 달 넘으니 사람들의 사정이 한눈에 보이는데 거개가 개장 후 수영 강습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나이 든 노인은 물에서 걷는 운동만으로도 효과를 본다. 나는 자유형과 평영 영법을 유튜브로 배웠다. 유튜브엔 국가대표 출신의 기라성 같은 강사가 즐비하다. 하도 보니 강사마다 차이가 있는 걸 알아챌 정도다. 코로나로 요샌 강습 없이 자유수영이다. 꾸준한 연습과 정확한 동작을 익히는 게 목표다.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심폐 기능, 지구력도 올라간다. 장거리 수영이 결코 꿈만은 아니다. 물속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며 호흡! 동작! 을 끝없이 되뇌며 나아가다 보면 벽이 코앞이다. 편두통도 끝물이다. 딱 이틀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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