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by 소인

단상


어느 시대나 사람은 뜨겁게 살다 간다.

뜨거움엔 온도 차가 있는데 화약처럼 확 일어나는 불 같은 기세가 있는가 하면 뜨뜻미지근한 삶도 있는 법이다. 온도 차를 결정하는 건 시대 인식이라고 짐작해 본다. 아무리 살아도 억울한 게 없고 분한 게 없으니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자기 복에 겨워 남의 사정 알 리도 알 바도 없는 사람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살다 사라진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하는 의중에는 삶과 세계의 불확실성, 부정성을 내포한다고 하겠지만 어느 시대나 의식은 있으며 올바른 삶의 근사치는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잠시 길을 잃는다. 멀리 갈 짐을 싸기 위해 커다란 비닐 백을 알아보려 들렀는데 없었다. 물건 정리함은 크기 별로 많았지만 내겐 턱없이 비싸 보였다. 창고를 뒤지고 보자기를 모으면 해결될 것 같다. 뭐든 사고 보는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다이소에서 잡동사니를 사려다 그것도 관두었다. 집을 뒤져 중복된 건 하나를 가져가기로 한다. 삼각 김밥과 크림빵 생수 한 병 샀다. 점심시간이 지난 터라 차 안에서 먹었다.


가령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말과 행동이나 해서는 안될 말이나 행위는 시대의 인식이 말해준다. 그 시대의 공통적 인식이라면 상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상식과 습속의 경계를 허물며 태어난 것이 앞서간 사람의 시대 인식이다. 분명한 건 습속의 지층을 쌓으며 이루어진 상식, 문화, 문명조차 절대 인식의 범주에 들어가는 건 없다. 그래도 안온한 오늘과 내일로 충분하다면 그대는 사유하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다. 이는 시대를 읽는 의식 중에 문제의식이 없거나 희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는 발전, 개선하는 능력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불합리한 제도와 법, 심지어 관습까지도 고치고 뜯어내려 한다. 공동체가 발전해 온 요인 중 하나도 저러한 변화에 공감하고 연대한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혁명적 세력에 맞서 구 체제를 고수하고 반혁명 세력의 결집을 원하는 사람은 현재의 권력층이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 아(我)와 피아(彼我)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다. 역사는 환경 조건과 인간의 의지, 우연성의 세 요소로 구른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아픈 기억을 몸과 혼에 새긴 민중이다.

친일과 반일의 독립 투쟁과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전쟁을 거쳐 군사독재를 향한 민주화 투쟁과 가난 탈출의 욕망을 체화해왔다. 선진국에 진입한 오늘날의 현실에 견주어 볼 때 가장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부면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몇 번의 대선과 숱한 총선을 거치면서도 민중의 정신에 뿌리 깊은 좌익 빨갱이의 레드 콤플렉스는 민중의 트라우마가 되어 대를 이어 세습되고 있었던 거다. 골수에 박힌 극우 사상은 언론을 통해서도 이어져 정작 사건의 전말과 진실은 언제나 호도되었고 선거 때마다 민중은 어리석은 선택을 했고 결과는 고스란히 민중의 고통으로 남았다. 보수 우익의 가짜 뉴스와 헛구호에 매몰된 민중의 선택은 왜 되풀이되는 걸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식민지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과 후예들, 군사 독재정권에 뿌리를 이어온 세력의 영향이 경제 일상 전반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정의는 악의 청산에 의해 재도약한다. 5개월밖에 활동하지 못하고 이승만과 친일 경찰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결과는 688명 조사에 221건 기소, 12명 실형 후 5명 집행유예, 7명 형 집행정지였다. 5년 간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의 경우 부역자 가운데 1,558명 사형 집행, 9만 7천여 명이 실형 선고를 받았다. 우리 사회는 똘레랑스의 관용의 정신은 사라지고 혐오와 분열이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 여야를 떠나 검찰 출신의 정치인이 대거 포진한 검찰 공화국이 된 슬프고 뼈아픈 현실이다. 흑과 백이 뭉그러지고 우기면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민중은 자본주의에 도취돼 잘 살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라도 표를 던진다. 과연 잘 산다는 정의는 무엇에 기준을 두고 있는 걸까. 정의, 평화, 공생의 가치는 진영의 논리가 되어버렸고 대중의 인기를 모으는 자가 권력의 칼을 휘두르게 되었다.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이 장악한 가짜 뉴스에 선동된 대중은 다수의 횡포를 일상화하는 데 토대가 된다. 타락한 민주주의의 형태인 중우(衆愚) 정치로 빠진다. 어리석은 대중은 자기 손으로 뽑은 지도자의 칼에 목을 베인다.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분리수거함에 갔다.

검은 차가 서더니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건너 동네에 사는 몇 번 본 사내다. 얼마 전 열처리 업체에서 퇴직한 그는 지자체 의원 선거에 나가게 됐다며 명함을 내민다. 나는 그의 성정을 안다. 남의 집 지붕 고칠 때 일꾼에게 사소한 말을 붙이다 뼛성을 낸다. 간장종지만 한 도량이다. 술이 취해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고 지나는 개가 짖는다고 씨팔! 욕을 퍼붓는 그릇이다. 그런 인격이 재취업하겠다고 친한 척을 안다. 명함에 '국민의 짐' 로고가 박혔다. 이 지방에선 통하는 당이다. 봉사한다는 종재기가 의원 배지 달고 얼마나 행세하려고 나서는지 알만 하다.


경북 지자체 의원 반이 3년 오 개월 동안 군정 질의 하나 없다는 통계를 보고 혀를 찼다. 얼마나 문제의식이 없으면 시민의 삶에 불만 한 티끌 없단 말인가. 서민들은 사는 게 고통이고 정치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국량이 없다. 선거 때는 간신 밉보지 마냥 조아리며 공손하게 표를 애걸하던 것들이 되자마자 입꼬리 올라가고 거들먹거리며 의원 나리 행세하니 오사리잡놈이 따로 없다. 청소업체 노동자가 부당노동행위를 견디다 못해 퇴사한 지 오일만에 죽었다. 딸이 국민청원을 올려 매스컴을 탔다. 군수는 업체 사장에게 점심값으로 오백만 원을 받았다. 점심 한 끼에 오백이면 저녁 만찬은 수억은 되겠다. 실제로 군수는 태양광 업자에게 받은 수억 뇌물 혐의로 재판 중이다. 민주노총, 농민회, 시민단체가 소읍과 군청사에서 농성을 해도 그 많던 군의원, 도의원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짜고 치는 도둑 소굴 아닌가. 주민을 위하는 순수한 열정에서 출마한다는 나이브한 후보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시위소찬(尸位素餐), 직위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벼룩처럼 서민의 밥만 축내지 말라는 뜻이다.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를 들먹일 필요야 있겠냐만, 최소한의 공동체적 가치관과 양심은 지닐 일이다. 어중이떠중이의 오합지졸로는 공동체 눈물의 끄트머리도 씻어줄 수 없다.


변화와 성장은 삶의 축이다.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다면 죽은 삶이다. 변화의 테제를 오독하면 변질된다. 변질은 본래의 성질을 잃고 부패하고 썩어버린다. 멈춤은 고인 물의 상태가 아니라 썩어가는 퇴보의 단계다. 건강한 습속은 오래 가꾸고 키워 전통이 된다. 건강하지 못한 습속의 하나가 개인의 이기심으로 공동체 기둥을 갉아먹는 일이다. 최소한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모아둔 양식이나마 아껴 먹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게 낫다. 썩은 물이 활개 치면 공동체의 맑은 물도 덩달아 썩는다.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이가 설치면 재앙도 이만한 재앙이 없다. 나는 얼마나 성찰하며 사는가. 뜨신 밥 먹고 초소에 나와 때아닌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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