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일

by 소인

밥과 일


올해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삼월부터 소나무류 무단이동 단속초소 근무원을 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길 위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감시했다. 장애인 등록을 했고 담배를 끊었으며 남도 행을 결심했다. 매듭 몇 가지를 익혔고 수영을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은 잘게 거품을 내고 끓었다가 잠잠해지곤 했다. 올초 식구가 된 곰돌이가 들어왔고 여름 한 달은 아이스박스와 스노클 장비를 싣고 동해로 달렸다. 진도견 곰돌이는 우리에게 웃음과 보살핌의 미덕을 알게 해 주었다. 물 바닥을 뒤져 성게와 조개를 잡아 이웃과 나눠 먹기도 했다.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젊은 작가가 거개인 브런치에서 선뜻 댓글을 달지 않아도 그들의 삶에 대한 치열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근 이년 동안 매일 아침 공부했던 외국어를 접으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줄창 머리맡을 떠나지 않던 책과 좀 떨어지니 생각이 외려 자유로워졌다. 익숙한 습속은 벗어날수록 새로운 물이 틈입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단 말이 맞다.


장애인 등록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었다.

돌 되기 전 목욕물에 데었던 오른손의 정체성을 찾은 거다. 불편한 손으로 숱한 노동을 견디고 그림 그렸던 오른손에 대한 휴식 같은 징표다. 장애는 정상, 비정상의 규준이 아니고 일반적인 인간의 다양성으로 읽어야 한다. 성차별도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가부장적 남성의 사고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간섭하려 든다. 내가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그건 여성주의로 읽혔다. 지금은 페미야말로 인간주의고 생명주의, 반차별주의란 걸 깨달았다. 차별의 뿌리는 혹독하고 끈질겨서 우리는 차별 철폐 운동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차별을 혹처럼 달고 산다. 어릴 적부터 공 던질 때는 왼손으로 던졌고 좌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탁구나 그림을 그릴 때는 오른손으로 한다. 사과를 오른손으로 쥘 수 없어 사과 선별 알바는 꿈도 꾸지 않는다. 소나무 전지 할 때 손톱은 오른손으로, 가위는 왼손에 잡는 식이다. 오른손으로 사회에서 보이거나 눈에 뜨이지 않는 차별을 겪기도 했다. 군 면제와 해외 취업 신체검사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광고회사 시절 거래처 접대에서 남모르게 진땀을 흘렸다.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도 순전히 오른손 덕분이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오른손 얘기를 꺼내는 것도 우정 오른손 덕이다. 장애는 극복이 아니라 차별이 배제된 시선으로 인정함으로써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십 개월 동안 초소 근무를 하면서 동료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감방 안이라면 내장까지 뒤집어 보여주었을 정도로 서로 속엣말을 털어놓았다. 살아온 얘기, 여자, 음식 등이 주였는데 마침 동료의 낚시 취미와 나의 조력 경험이 맞아떨어져 한 마디만 해도 얼른 알아들었다. 동료는 나보다 열 살이 많다. 난 동료를 '김 선생님'이라 부르고 그는 날 '김 선생'이라고 부른다. 말을 절대로 놓는 법 없이 날 대하는 그를 보며 대접은 대접하는 자의 몫이란 걸 배운다.


밥을 버는 일은 고단하지만 위대한 생명 활동이다.

중국의 철학자는 정신은 위(胃)에서 나온다고 했다. 위(胃)가 위(形而上學)를 좌우하므로 밥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는 존재론적 당위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존재를 두 번째로 둔 사고이므로 존재함으로 사유한다로 고쳐야 한다. 민중의 밥그릇을 엎으면 왕이 탄 배가 뒤집힌다.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라고 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는 뜻의 이 말은 거대한 민심의 바다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언제든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배고픔보다 불공정에 분노한다. 다 함께 가난했던 시절에는 이웃과 쌀 한 톨도 나눠 먹었다. 상호부조의 연대가 통했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지금도 밥을 벌기 위해 고단한 삶이다.


대가리에 피도 마르기 전 가출을 일삼던 버릇은 스무 살이 돼서야 접었다. 이후는 출가쯤 되리라.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싸돌아다니면서 우선 곡기를 해결해야 했으니 닥치는 대로 일했다. 노가다는 기본 밥벌이였고 차츰 구체적인 직종을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공사장 건물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국어사전을 베개로 잠을 잤다. 남의 발아래 무릎 꿇고 구두를 닦았고 꼴머슴을 하기도 했다. 남도에서 쿠데타 일당이 시민들을 학살할 무렵 직업훈련소에서 미장을 배웠다.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나 배고픔은 동무처럼 따라다녔다. 세상 엿보기는 성이 차지 않아 여자를 데리고 도시를 탈주한 뒤 남도에 내려가 경운기를 몰고 노햇마을의 고물을 샀다. 벽돌공장에 다닐 때 아들을 얻었고 중선배를 타고 동지나해 우윳빛 바다에서 그물을 당겼다. 음력 사월 봄바다에 눈이 펑펑 쏟아졌고 갈치 아구 수조기가 눈깔을 데룩거리며 갑판 위에 뒹굴었다. 그 무렵 여자와의 탈주 행각은 나의 뼈아픈 실수로 끝났다. 독설을 칼처럼 품고 살았다. 아이를 안고 서울로 돌아와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삼 년 동안 노조 활동을 하며 노동자의 고통에 눈을 떴고 다른 공장의 노조 활동가를 만나 다시 가정을 이루었다. 딸이 태어났고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라는 광고회사에 십 년을 다니며 도시의 스트레스에 점점 지쳐갔다. 탈주의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IMF가 터진 일 년 후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갔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남의 땅을 얻어 농사를 짓고 숲 가꾸기 공공근로에 나섰다. 도시의 가난은 시골로 따라와 나 혼자만 괴롭힌 게 아니라 줄줄이 딸린 식구를 흔들었다. 철 모르던 아내는 휴게소에 나가 맥반석에 오징어를 구워 여행객에게 팔았고 나는 영림단에 들어가 경북 내륙과 동해안을 오르내리며 기계톱 메고 산등 넘으며 간벌작업을 했다. 끝물인 광산 막장에 들어가 아연 원석이 수북한 광차를 밀었다. 늦가을 케이지 타고 밖으로 올라오면 폐석 너머로 쑥부쟁이 꽃이 하늘거렸다. 눈물이 났다. 시를 쓰기 시작했고 문학 모임에 나갔다. 좋은 사람, 그러구러 한 사람을 만났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중학교를 들어가자 이렇게 벌었다간 밥 먹기도 빠듯하지 싶었다. 전부터 오라고 하던 일을 찾아 낡은 이삿짐 탈방이며 강원도로 건너갔다. 바닷가에서 십오 년 동안 수목 관리하는 동안 아이들의 발목이 굵어졌고 아내도 조금씩 주름이 늘었다. 바다에 들어가 문어를 잡고 조개를 캐던 무렵에는 왕성한 성욕만큼 지겹도록 잡문을 써댔다. 남우세스러운 글을 모아 시집도 한 권 냈다.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고기 맛을 안 중놈처럼 밤새도록 연애를 했고 쓴 이별도 맛봤다. 부자가 땅을 팔자 자연스레 퇴직하고 처갓동네로 돌아왔다.


처음 일 년은 게걸 들린 사람처럼 도서관 서가의 책을 죄다 훑으며 핀둥였으나 차츰 배가 고팠다. 다시 일을 찾으러 나섰다. 시골집을 고쳐 살았는데 지붕에 빗물이 새자 베어링 공장에 들어가 청소를 했다. 지붕 값을 벌자 그만두고 산불감시원에 지원했다. 일하고 놀면서 휴양림 관리인을 했고 지금은 이름도 거창한 소나무류 재선충병 무단이동 단속초소 근무원이다. 연말이면 기간제 일이 끝난다. 늦게 도진 탈주의 병은 독거살이로 나타났다. 일이 끝나면 남도로 떠날 생각이다. 몇 달 살아보고 괜찮으면 내처 눌러앉을 심산이다. 후배는 따듯한 봄에 떠나라고 하지만 인생은 우물쭈물하다 놓친다는 버나드 쇼우의 묘비명이 떠올랐고,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자유라는 크레타섬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도 생각났다. 더 망설이다간 이도 저도 못하게 된다. 나이 듦의 적 중 하나는 결행의 빈곤이다. 저지르고 후회하자. 철저히 고독에 처한 인간만이 별처럼 서늘한 사유를 길어 올린다.


살아오면서 했던 일을 대별하고 보니 입에 넣는 밥의 소중함과 고단함을 알겠다. 딱 먹을 만큼의 밥을 버는 일에는 여축이 없었다. 늘 가난을 형제로 알고 살았다. 혈육인 형제의 반은 타국에서 여전히 고단한 밥을 벌며 산다. 죽을 때까지 허접한 잡문을 써대며 살아도 그것이 나의 미욱한 페르소나라면 피하지 않겠다. 스무 살의 출가 후 수십 년이 흘렀다. 인생은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 눈 깜짝할 새에 지난다고 하지만 참 많은 일을 겪었고 슬픔과 즐거움을 도락으로 삼았다. 인간은 완벽하게 자기중심적 존재다. 남의 일은 아무리 겪어도 머리에 두지 않는다. 자기 일이라면 개미 발톱만 한 거라도 온통 머릿속을 헤맨다. 또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무인도에 살아도 익숙했던 습속을 버리지 못한다. 지리멸렬한 일상의 관계에 물려 벗어나려 하지만 인간 환경은 어디에 가도 부딪치고 만난다. 이전의 관계와 조금 다른 새로운 만남을 원하지만 진부한 관계는 도로 제자릴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와 성장을 모색한다. 빈곤과 병, 고독은 말년의 세 가지 멍에라고 한다. 이에 더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욕도 없는 무기력 상태인 무위(無爲)는 죽음과 같다. 백세가 되어도 사고 치고 저질러야 수습하며 배운다. 뒷방 늙은이는 저승사자를 기다리는 상태다. 기력 떨어지기 전 나서야 한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늙은이 같다. 노쇠함, 무위는 몸과 마음의 병이다. 초록별에서 태어난 우리는 언제나 무엇으로부터 탈주를 꿈꾼다. 그게 인간의 생명 활동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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