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바이올린을 전공한 할아버지는 해방 후 군예단을 만들어 미군 부대에서 공연했다. 현인 신카나리아 나애심 등 가수들이 종로 3가 집에 찾아와 젓가락을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일제 때 거실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시대의 비극을 견딘 할아버지는 전쟁 때 의친왕의 후실인 누이가 운영했던 대전 금성장 여관에서 타계했다. 미국의 막내 고모가 보내준 희귀 사진으로 할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았다. 큰아빠의 얼굴이 들었다고 딸아이가 놀란다. DNA는 후손에게 이어져 음악을 하는 조카가 여럿이다. 고모할머니 김금덕 여사가 낳은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해경 여사는 독신으로 살며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정년퇴직한 구십이 넘은 고령이다. 고모할머니 김금덕은 당대의 문인과 교류가 많았는데, 배고픈 문인들에게 호떡을 잘 사주어 '호떡 선생'으로 통했다. 한국 전쟁 때 대전 금성장에 피난 온 이승만과 이시영 부통령 등이 다시 대구로 내려가려 하자 찦차 앞을 가로막으며 '나라님이 백성을 두고 달아나기만 하면 어떡하냐!'라고 일갈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녀는 두 번 다 낙선했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며 말을 타고 국회의원 선거 유세를 하기도 했다. 가족의 역사든 시대의 역사든 빛바랜 사진 속에서 형형(炯炯)했던 그들의 정신을 읽는다.
일제 식민지 때 친구들과 찰칵! 맨 왼쪽이 할아버지.후손들은 할아버지 얼굴을 조금씩 얻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