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by 소인

단상


오늘은 과수원에 일찍 나왔다.

웃자란 사과나무 우듬지에 갈변한 마른 잎사귀가 눅눅한 안개에 젖은 게 정지된 화면 같다. 오늘 낮부터 기온이 떨어져 내일은 낮에도 영하의 날씨란 예보다. 새벽에 최저 기온이었다가 낮엔 풀렸는데 낮에도 영하라니 솜바지를 입고 나서야 할 것 같다. 주말까지 추위는 이어질 전망이다. 어제저녁엔 백신 후유증 탓에 주사 맞은 어깨가 쑤셔 수영장을 쉬고 진통제 먹고 일찍 잤다. 일어나 팔을 만지니 통증이 한결 가신 느낌이다. 바이러스 시대에 앞으로 사오 개월마다 백신 맞으며 살아야 될 것 같다. 문명 과학이 발달하니 삶의 양식도 바뀐다. 전에 없던 것들이 일상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과수원은 출근 도중 쉬어가는 곳이다.

일찍 나와 비듬처럼 상념을 훌훌 털어 날려버리기도 하고 새로운 상념을 키우는 곳이다. 기간제 일은 보름 안쪽으로 남았다. 새벽의 개 산책도 그만큼 남았다. 개는 저 좋은 대로 하는 성미다. 주인을 따라나서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쏜살같이 산을 타지만 주인의 속내는 알 길도 알 바도 없다. 얼마 후 내가 없는 집에서 심심한 새벽을 맞을 녀석을 생각하면 미안 킨 해도 어쩔 수 없다. 녀석은 이런 나의 답가운 심정을 모른다. 개는 경험한 냄새와 기억을 좇아 이리저리 길을 탐색한다. 어둠이 벗겨진 소읍 골목길에 청소차가 지나며 쓰레기를 거둔다. 먼데 다녀왔는지 군민회관 주차장에 사라졌던 제설차가 늘어섰다. 성당의 불은 꺼진 채로 고요하다. 새벽 미사는 요일이 정해진 듯하다. 성당과 교회 두 곳, 절까지 골짜기 동네에 종교 시설이 여러 곳이다. 인간은 종교를 믿으며 삶과 죽음을 일상 가까이 두고 산다. 그들이 믿는 가치가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자유로운 영혼이라 남들은 생각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셨네요.편으로는 선생님의 용기가 부럽기까지도 하군요.'

짧게 요약한 내 글 '밥과 일'을 본 그녀의 감상 평이다. 산책 내내 그 말을 곱씹었다. 자유로운 영혼이란 무엇일까. 용기가 부럽다니 그녀도 용기를 내고 싶었을까. 솔직한 그녀의 내면을 읽은 느낌이다. 답장에서 난 현재도 그다지 자유로운 편이 아니라고 했다. 습속의 구속과 자유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글과 말은 그럴지 몰라도 여전히 구속의 안락과 자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처지다. 나는 그녀의 슬픔과 고통을 조금밖에 헤아리지 못한다. 누구라도 상대의 속내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법이다. 남보다 가까운 공감만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일 수 있다.


어제 퇴근 전 상황부를 제출하러 갔던 동료는 휴대폰을 초소에 두고 갔다. 주위가 완전히 어둠에 잠긴 후 다시 나타났는데 난 동료의 집에 갖다 줄 생각이었다. 아파트 이름과 층수만 아니 몇 집 두드리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도 나도 깜빡하는 일이 잦다. 나이가 아래인 내가 좀 덜한 편이지만. 사람은 나이 들면서 모든 게 변한다. 낡고 병들어 가는 몸이 그렇고 기억과 습관을 놓치는 일이 잦다. 체념과 포기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약이다. 그러면 대처하기가 쉽다. 안달하고 후회하는 건 젊을 때의 몫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체념이 용납되지 않는 게 인간다운 삶이다. '인간다움'이란 물론 개인의 세계관에 국한되는 가치이지만 말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우주 사물의 변화에만 있지 않다. 인간의 사유와 가치도 무시로 변화하는 범주에 속한다. 습속은 일정 정도의 몇 대에 걸쳐 이어지다 변화한다. 그러니 정답이라고 하는 절대 불변의 가치는 없다. 죽고 나는 문제까지 과학으로 뜯어고치려는 인간의 노력은 자칫하면 인류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 어쩌면 그전에 지구는 오염되어 앓다 사망할지도 모른다.


문득 남쪽의 독거 생활을 상상하는 게 버릇이 됐다.

혼자 밥을 끓이고 도서관 수영장 다니고 낯선 도시와 사람들을 만나는 상상을 한다. 가끔 바라보는 바다는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아프지 않고 외로움을 오롯이 나만의 감정으로 다독이며 서늘한 사유를 길어 올릴 수 있을까. 삶의 바다에서 각성의 성찰을 얻을 순 있는 걸까. 몸과 정신이 좀 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을까 상상한다. 마지막이 될 실업급여와 이후의 구직은 순조롭게 이어질까 생각하다 공연한 걱정은 접기로 했다. 부딪치는 대로 순간순간 노력하며 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앞일 걱정하는 모험 없고 집 걱정하는 놈이 집 떠나겠나. 내 앞가림만 잘해도 가족의 걱정을 더는 거다. 밥 끓이고 운동하고 독서하며 잘 사는 일밖에 없다. 사 개월 뒤 일이 잡히면 더 머문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나서는 길이 영영 이별이 될지 모른단 생각도 한다. 인간은 예고 없는 이별로 생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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