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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Dec 23. 2021

어떤 방문

어떤 방문


성탄절 전야에 노인들이 시골 교회 앞마당에 모였다.

국보마애불이 있다는 절 입구의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대여섯 집이 사는 작은 마을에 낮게 웅크린 지붕의 교회다.

도시의 하늘에 촘촘히 박힌 빨간 십자가와 대비되는 시골 교회의 밤 풍경은 어둠 속에서 야차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섬증이 일었다. 어디선가 고요한 밤이 흘러나올 것 같은 성탄 전야였는데 정말 귀신 나올 것 같이 적막과 어둠에 싸인 교회 첨탑 위에 쌀가루 같은 별이 쏟아졌다. 영하 십도 아래 떨어진 기온에 노인들의 입에서 허연 김이 연신 터져 나왔다. 인기척에도 사람이 나오지 않자 노인 일고여덟 명이 서성거리다 문을 두드렸다.

한참에야 예배당 문이 열렸는데 알고 보니 본관에 붙은 사택에선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은 까닭이었다. 방에서 내외가 텔레비전을 보느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며 젊은 목사는 미안해하며 놀라는 눈치였다. 성탄 전야에 텔레비전을 보다니 작은 시골 마을 개척교회 목사다운 분위기에 노인들은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노인 대표가 각자 조금씩 모은 봉투를 내밀었다. 목사는 손사래 치며 한사코 사양했지만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에겐 좋은 분이네. 기쁜 날에 성의를 모았으니 거절하지 말게'라는 완곡한 대표의 말에 고마워하며 봉투를 받았다.

목사는 가끔 체육관에 나와 탁구  동호회 회원들과 어울려 탁구를 쳤는데 실력이 좋아 노인들에게 친절히 가르쳐주곤 했다. 동호회 노인들이 성탄 이브에 모여 좋은 데 갈까 궁리 끝에 시골 교회에 들른 거였다. 서로의 종교를 떠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 흐뭇한 일이다. 사람은 종종 인종과 국가, 성별과 신분에 따른 차별을 사정없이 드러다. 차별과 혐오는 공동체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눈물이 되곤 한다. 예수나 석가나 여타 종교의 신들이 인간에게 반목과 분열을 가르치진 않았을 거다.

차라도 한잔 하고 가시라는 목사의 간곡한 청을 부드러운 미소로 물리친 탁구 동호회 회원들은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별이 빛나는 하늘 한가운데 아기 천사가 빙그레 웃었을지도 모르는 추운 겨울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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