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3)


한 것도 없는데 피곤했다.

엎드려 책을 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깼다. 혼몽 중에 여기가 집인가 착각을 했다. 점심 먹고 소화시킬 겸 산책을 했다. 카카오 맵 검색으로 길 건너 바닷가에 조각공원을 발견했다. 거기로 걸어서 다녀오자고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차게 느껴졌는데 고갯길을 오르면서 금세 바뀌었다.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자 양쪽으로 조각보 같은 밭들이 나타났다. 남도라 그런지 정원수와 수목이 잎이 두껍고 윤이 난다. 동백나무 무화과나무는 알겠는데 모르는 나무가 더 많았다. 한반도의 식생대는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는데 중부 지방에서만 수목을 다루었으니 당연하다. 남부권에서도 이곳은 제주도 식생에 가깝다. 감탕나무과의 먼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졌고 상록 활엽수가 대부분이고 주택에는 담장 위로 소철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서 있다. 몇 해 전 울릉도 자전거 여행 때 나리분지의 작은 카페 앞의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물었더니 카페 주인이 웃으며 '이나무'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이나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산책 차림으로 앞서가는 두 아주머니에게 한 나무 이름을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그녀들은 손주 크는 걸 얘기하는 중이었다. 노랗고 작은 열매가 달린 유자나무가 밭 가운데 서 있다. 고갯마루가 가까워지는데 길가 돌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나비야 부르며 사진을 찍으니 냐옹 대꾸를 한다. 뒤이어 위에서 한 녀석이 내려와 발치에서 논다. 두 아지매는 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고개 넘으니 해안도로가 나타났고 해송 숲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짙은 쑥색의 바다 색깔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는데 동해의 시퍼런 것과 대비되었다. 멀리 LNG선과 화물선이 정박해 있었다. 수평선 끝에 가물하게 보이는 육지가 부산인지는 모르겠다. 부동산 사장의 말로는 맑은 날엔 부산이 보인다고 했다. 해안도로는 인근 주민의 산책로였다. 한낮인데 걷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맵을 검색 하다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어 발을 돌려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대나무 숲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동백꽃이 피면 장관이겠다. 꽃봉오리가 셀 수 없이 달렸고 이미 핀 몇 개는 바닥에 떨어졌다. 누구 말마따나 모가지가 떨어진 동학 농민군처럼. 골목을 나와 거리를 걸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난 철저히 이방인이다. 잠시 주민으로 등록되었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생각해 보니 떠나온 B읍에서도 난 이방인이었다. 유태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우리는 유동하는 존재인 거다. 사냥터에서 사냥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일뿐이다. 이곳에서 나와 대화하는 사람은 수영하는 여자밖에 없다. 수영 얘기만 한다.


마트에서 김과 두부, 콩나물을 사고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맨날 그런 걸로 끼니 때우지 말고 생선을 사다 구워 먹으란다. 가스레인지에 두 개뿐인 불구멍이라 그릴은 없다. 생선 코너를 흘깃 보고 지나쳤다. 다이소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사서 오는데 시커먼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문을 열지 않은 술집 처마에 의자를 놓고 앉아 비 긋기를 기다렸다. 몽골 양털로 짠 비니 모자가 더워 벗었더니 영락없는 독거노인 형상이다. 오래전 여행 다녀와서 비니 모자를 선물했던 여자는 소식이 없다. 짐작은 가지만 내게 단단히 삐친 거였다. 그녀의 가시 돋친 문자를 보고 그녀를 달랠 자신도 달랠 생각도 없어졌다. 감정의 진폭이 엄청난 여자였다. 두 개의 모자 중 하나는 너덜 해졌고 벌써 오래전 일이다. 비는 금세 약해졌다. 방에 돌아와 정리하고 책을 폈다. 졸기 시작했다. 오전에 수영하고 한낮에 오래 걸었다. 그동안 산 것들의 총액을 계산했다. 마트와 다이소 두 군데서 식료품과 살림 집기를 사들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써서 놀랐다. 당분간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흐린 탓인지 일찍 어둠이 찾아온다. 내일은 수영장 끝나고 북쪽 도시의 고용센터에 들릴 예정이다. 실업급여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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