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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an 04. 2022

도꺼일기

一人暮らし(1)


 집을 떠날 때 영하 13도였다가 대구 지나니 영하 6도로 올라갔다.

문자는 지나는 지역의 확진자 현황을 실어 날랐다. 내가 가는 걸 하늘에서 보고 있나. 해저 터널 지나 불그레하게 동살 텄는데 섬 가깝자 기온은 영상 일도로 오른 후였다. 바리바리 싸온 두꺼운 겨울 옷이 쓸모없게 될 거 같다. 다리 너머로 대나무 숲이 보이고 추레한 곰솔의 군락이 나타났다. 내륙을 달려 짭조름한 공기 마시니 내장의 탁한 기운이 씻어진다. 새벽 세 시 반에 나서 섬에 도착하니 여덟 시. 해장국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선착장에는 드문드문 선객이 어슬렁댔는데 새해맞이 여행객일 뿐 다도해는 한물 간 생선처럼 싸늘하게 식었다. 바이러스는 괴물 같은 공포로 파고들어 일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얗게 피어나는 마스크의 꽃이라니!


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독거 생활을 시작하니 만사가 필요한 것 투성이었다.

물 밖에 나온 잠수부가 산소통을 벗어던지고 맨입으로 공기를 마실 때 그는 거듭난 신자처럼 간증이라도 바쳐야 할 것 같다. 세상엔 공짜로 얻는 게 너무 많으니. 좀스러운 구석이 있는 난 비누가 떨어지면 비누를 샀고 간장이 떨어지면 마트에서 소주와 간장병을 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엔 먹고 쓰고 버리는 상품투성이로 이루어진 듯하다. 철마다 채소를 살피고 찬바람 불면 바다에서 올라온 톳나물, 꼬막을 삶는 아내의 수고로움이 없었다면 영양실조 걸렸을지 모른다. 김치통을 들고 온 것 외엔 죄다 사야 할 것들의 목록만 머릿속을 채웠다. 방을 구하고 이틀째 연신 마트와 다이소를 들락거린다. 젊었다면 계산원과 사귈 정도로 낄낄대며 얘기를 나눴다. 아무려나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기를 쓰고 사다 날랐다. 그래 봐야 고작 한 달을 버티지 못하는 양이다. 내륙의 시골에서 짭조름한 공기가 흐르는 섬이라고 하지만 바다는 발돋움을 해도 까마득해서 마치 낯선 도시에 들어선 느낌이 딱 맞다. 출퇴근 시간에 조선소의 근무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떼 지어 다니는 것 말곤 여느 도시의 풍경과 다른 건 없다.


일탈은 가난한 자의 몫이다.

가진 자나 벌여놓은 일이 많은 사람은 함부로 그것들을 떠나지 못한다. 그것에 치여 죽을지 모르면서 죽기까지 붙들고 늘어진다. 마약처럼 중독성이 치명적인 그것의 이름은 자본이다. 자본은 복어 알처럼 생명의 알이면서 독을 품었다. 문제는 골라 먹어도 결국엔 공멸하는 게 숙명이다. 삶이 우연의 시작인 바,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골몰하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골로 간다. 자유도 빈곤한 자의 몫이다. 사랑에 배부른 이는 사랑을 갈구할 이유가 없다. 뷔페식의 다양한 사랑에 몰두하는 사람은 사랑을 음식 정도의 수준으로 보는 사람이다. 배부르면 배고플 때 먹었던 개떡이 똥으로 보인다. 은어를 도로 묵어로 부르라던 질한 왕처럼. 여러 번 눈물 짜게 사랑한 경험은 풍성한 삶의 경험이다. 하나의 가치는 짜증을 넘어 바보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지고지순도 소중하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잡탕 찌개를 끓여 맛없는 지방 소주를 반주로 마셨다.

잠든 골목에 나섰더니 공기가 차다. 개 산책시키고 도란 툭탁이던 아내와 딸은 잠들었을 시간 소식 없는 아들놈은 무탈하게 사는지 가끔 생각나는 먼데 사는 청년이다. 아침 먹고 시간보다 일찍 나섰다.

예술회관에 있는 수영장으로 가기 전 수변공원을 둘러보았다. 해 뜨는 아침 해송의 겨울눈이 새하얗게 빛난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나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어헛! 너른 수영장에 나 혼자라니. 퐁당퐁당 레인을 두어 번 왕복하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디나 남녀 비율이 2:8이다. 오리발 레인으로 갈아탔다. 옆 레인의 삼총사는 마치 물개처럼 줄줄이 헤엄치며 레인을 왕복한다. 숨을 헐떡이며 그녀들을 쳐다봤다. 같은 레인의 아지매는 올해 칠십인데 체력 충만이다. 수력(水曆)이 십 년이란다. B읍의 수영장만 한 크기인데 수심은 1.2미터로 십 센티 얕았다. 바닥이 미끄럽다고 했더니 소금을 넣었다고 했다. 어쩐지 물맛이 찝찔하고 몸이 둥둥 뜬다고 했더니. 나이 든 여성은 거침없이 얘기하고 물살을 갈랐다. 한 시간 후에 수영장을 나와 고현동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 도서대출증을 만들고 책을 안고 나왔다. 도서관 옆의 포로수용소 유적지는 재작년 자전거 여행 때 들른 곳이다. 어쩌면 이 섬에 포로의 후손들이 살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노인은 여기서 초임 장교로 복무했고 김수영 시인도 포로수용소를 거쳐갔다. 육지와 떨어진 한갓진 섬이 포로를 가두기 적합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빨래를 돌리고 점심을 먹었다.

섬의 풍경을 다니며 눈에 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마음 끌리는 대로 가볼 생각일 뿐. 사람 사는 데 호기심은 애저녁에 졸업했다. 수영장 도서관을 다니며 방에 처박힐 생각이다. 평생 밥 끓이며 수고하는 여성들이여! 밥에서 탈출하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으로 설거지하고 빨래 널었다. 앞가림도 못하면서 뒤치다꺼리하는 여자를 우습게 봤으니 코가 깨져도 잘코사니다. 어쨌든 독거 생활에 슬슬 길이 들어야 윤도 날 거다. 안 나면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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