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4)
단독주택과 아파트 외엔 원룸이 많은 이곳의 주민은 두 부류다.
원주민과 이주민인데 이주민의 경우 세분되어 아예 정착하고자 이주한 사람과 직장 때문에 임시로 사는 경우다. 가족과 떨어져(학교 문제로 아이들만 둔 경우나) 임시로 거주하기 때문에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은 사람이 많다. 유동인구는 많은데 실제 주민 숫자는 줄어든다. 구 시가지인 이곳은 대로변의 상점과 재래시장이 가까워 생활이 편리하다. 아침 출근길과 퇴근 시간에는 조선소 근무복 차림의 노동자가 거리를 메운다. 같은 원룸에 살아도 옆방 사람 얼굴 보기가 힘들다. 주민은 낯선 사람이 지나가도 쳐다보지 않는다. 터놓고 인사를 나눌 형편이 아니다. 한동안 보이다가 보이지 않으면 이곳을 떠난 거다. 웃음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쩌다 술 취한 사내 몇이 노래 부르거나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잘 집으로 간다. 경사로를 오 분만 내려가면 짠물이 찰방대는 바다에 코를 박기 좋은 지형이라 해안선을 따라 호텔, 리조트, 식당이 즐비하다. 포구에는 고깃배보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유람선이 더 많다. 군데군데 공원과 주차장을 잘 만들었다. 무시로 걸으며 산책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유자향이 흐르고 까마귀가 슬피 운다.
나는 촌에서 나와 도시 한가운데 떨어진 이방인이 되었다. 내가 살던 B읍은 모르는 얼굴이 나타나도 한 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람이다. 간밤에 어느 집 부부싸움이 나면 아침이 되기 전 소문이 쫙 퍼질 정도다. 시장 골목에서 '낭만 술집'이란 간판을 봤는데 여기는 낭만이 흐르는 도시의 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더 잘살기 위한 욕망이 소리 없이 불꽃 튀기는 낯선 사냥터일 뿐이다. 서로 적당한 무관심을 지닌 채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가난한 이는 가난한 대로 존재감 없이 숨죽여 살고 더 큰 부자도 없이 노후 대비로 지어놓은 원룸의 월세가 오르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늙어 가는 곳이다.
햇살이 골목을 빠져나가기 전 오후에 잠깐 밖에 나갔다.
한 여자가 발을 천천히 떼며 오르막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주차된 차 쪽으로 가면서 돌아보니 여자는 동그란 눈으로 내 얼굴을 잠깐 뜯어본다. 여간해선 만나기 어려운 시선이었다. 그냥 지나치거나 아예 눈길도 주지 않기 십상인데. 생각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따스한 눈길이라고 느꼈다. 내가 차에 가자 길가 집 문을 여는 노인에게 여자가 인사를 한다. 원주민일까 이주민일까. 형사 같은 추리가 여기 와서 버릇이 되었다. 수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함께 수영한다는 공동의 놀이가 있었다. 내가 인사하고 물어도 남자나 여자나 모두 친절했다. 타지에서 온 나를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내는 동생이나 아저씨처럼 대했다. 수영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까닭이다. 여기 와서 만나고 얘기한 사람을 일일이 기억한다. 얼마 지나면 기억의 아카이브에서 지워지겠지만. 처음 도착한 날 청진동 해장국집의 내외, 문화예술회관 주차장 관리인, 부동산 사장, 원룸 부부... 그리고 주민센터 직원, 도서관 사서, 수영장 안내원, 길을 물어본 사람 등등.
오자마자 매일같이 잡문을 써댔다.
생각은 천리 길을 내려오는 동안 줄줄이 달려왔다. 오래된 시인의 시처럼 '고향에 돌아온 밤 백골이 따라와 누운'꼴이었다. 나는 고향이 없다. 맘 붙이고 살다 떠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실제로 강원도 바닷가에서 살다 사귄 형과 친구는 차례차례 세상을 떴다. 문학 모임을 탈퇴하자마자 글쟁이들이 연락을 끊었다. 하긴 내가 먼저 끊었으니 뭐라 할 말도 없긴 하다. 남들 그 흔한 송년회 씨가 말랐고 동창회 한 번 나가지 않았다. 고교 동창회는 친구에 대한 나의 씻을 수 없는 배신 행위로 나가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나갔다. 이후 내 인생은 그늘로만 찾아다니게 되었다. 가족이 고생했다. 대학 친구는 내가 멀어지니 그들도 유야무야 멀어지게 되었다. 아내는 나이 들면서 친구가 있어야 덜 외로운데 당신은 자꾸 인연을 끊기만 하냐고 퉁박을 준다. 불알친구 아닌 담에야 서로 보는 곳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이해도 오해도 성가시단 생각이다. 점점 소견이 좁아지고 국량은 간장종재기가 되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절친한 동무가 되었다. 설사 내가 방 안에서 갑자기 죽더라도 나의 죽음은 '고독사'라는 지금껏 으레 있어 왔던 일로 여겨질 뿐이다. 딸은 슬퍼하고 아내는 이를 갈며 재를 뿌리겠지. 난 어쩌다 보니 가난한 사람이 되었는데 나 혼자의 가난이 아닌 게 가슴 아프다. 가난해도 너무 가난해서 겉만 보고는 빈곤의 질감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집을 떠나 독거 생활을 시작했다. 밥은 먹고사는데 가난하면 앞일이 어둡다. 큰 병이나 큰돈 들어갈 사건이 터지면 보호막 없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사회 구조를 보면 가난한 사람이 담배 피우고 더 아프다. 살만한 사람은 건강을 위해 술을 끊고 부자는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게 억울하다. 기를 쓰고 부를 세습한다.
저녁 먹기 전 밖에 나갔다.
여기 와선 거리에서 사람들을 보는 게 낙이 되었다. 집에서는 개를 데리고 들로 나갔다. 퇴근하는 조선소 노동자 셋이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여기저기 근무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땅을 보고 걷는 노동자. 한 손에 냉동밥을 들고 찐만두를 기다리는 노동자의 웃는 얼굴이 찜솥 김에 지워진다. 시장 통닭집에 앉아 닭다리 집으며 소주를 마시는 노동자 남녀 노동자가 어깨를 맞대고 걷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여긴 조선소 노동자 천국이다. 그들이 소비를 하고 돈줄을 푼다. 똑같은 근무복을 입었으니 차별도 따가운 시선도 없다. 다이소와 마트에서 만 원을 썼다. 잘 참았다. 사람들 틈에 섞이면 나도 그들처럼 된 기분이다. 그들처럼 꿈을 키우고 설계할 내일이 있는 것 같다. 신호가 바뀌면 바쁘게 걷는다. 내일 침대가 들어온다. 간이침대지만 여기 와서 처음 사는 가구다. 누구에게 소비는 즐거움이고 의미겠지만 내겐 절벽이다. 통장이 조금씩 마른다. 일하고 쓰는 사람은 좋을지 모르지만 소비는 마약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자본의 착취와 연결시켜 논한다는 건 너무 거시적이다. 자본은 모세혈관에도 의식에도 산소처럼 떠다닌다. 나와 대부분의 사람에게 소비는 생존이다. 환경문제를 후대를 생각하거나 지구의 생태 보전을 위한 착한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도덕쯤으로 생각하면 문제의 해결은 멀어진다. 먹고사는 걸 걱정하는 사람에게 추상적인 접근은 문제의 본질만 흐린다.
실업급여를 주기적으로 타 먹는 실직자를 게으르다느니 실업급여로 취미생활을 한다느니 씹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고용센터 강사는 실업급여는 구직 활동비이지 생계비가 아니라고도 했다. 니기미, 떡을 쳐라. 실업급여는 엄연한 실직 동안의 생계비다. 실직자라고 취미생활도 못하나. 여축없는 열악한 비정규 노동에 연애도 못하면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실업급여를 공동체 구성원의 노동권 인권에서 보지 못하고 시혜적 제도로 보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거다. 이런 것들은 죽어도 기본소득을 반대할 거다. 어쨌거나 난 산속에서 살면 딱 좋을 체질을 타고났다. 게으름과 놀고 싶은 건 천성인가 보다. 여기서 잘 놀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