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5)


다리가 연결돼 육지와 다름없는 섬.

하긴 우리나라 서남 해안에 수제비처럼 둥둥 떠 있는 섬들 중 어지간한 섬은 다리를 놓아 뭍이 된 지 오래다. 작년 완도 갔다가 정약전 선생이 유배 간 적 있는 신지도에 배 타고 갈까 했는데 다리가 놓여 놀라며 둘러보았다. 한센병 환자가 헤엄쳐 탈출했다는 소록도조차 다리로 건너는 시대가 됐다. 비가 많이 내리고 물가가 비싸다는 섬이다. 주민의 70%는 조선소에 일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은퇴 노동자. 고향에 가봤자 서로 변해버린 모습 알아볼 사람도 없어 아이들의 고향 섬에 남았다. 나는 촌에서 도시 한가운데 이방인으로 떨어졌다.


사람들 보러 매일 저녁 길에 나간다. 부쩍 줄어든 조선소 사람들 장 보고 술 마시는 퇴근 무렵의 풍경에 섞이면 나도 바삐 일하는 노동자 된 기분이다. 발걸음에 힘이 나고 여기저기 기웃대며 엿살피는 게 좋다. 살 거도 아니면서 물건을 들여다보고 김 오르는 찜솥 만두 세본다. 혼자서 먹긴 양이 너무 많아 며칠째 술 고프기만 기다리는 시장 집 통닭.


오랜만에 통화하는 P시에 사는 시인은 아는 이도 없는 곳에 홀로 내려간 용기를 칭송한다. 용기는! 진부한 시골의 공기를 벗어나 해방 전사가 된 기분인데. 혼자서도 잘 논다는 시인은 방학 때도 회의하고 글 쓴다. 강의와 글 쓰기를 병행하는 시인은 책을 만들 때마다 잊지 않고 보내주었다. 그녀로 인해 젠더에 눈 뜨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열렸다고 해도 좋으리라. 가까운 T시에 산 적 있는 시인에게 싱싱한 굴을 파는 어시장을 물어보고 시간 나면 만나기로 했다. 십오 년 전 흑산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시인은 반갑게 나와주었다. 책 읽느라 눈알이 빠질 것 같아 sns도 끊었다는 시인은 얼마나 변했을까.


아내는 버터 간장에 밥 비벼 먹는 청승 고만 떨고 생선 사다 구우라지만 박주산채라도 홀로 즐기는 해방감을 이해 못 할 거다. 방은 집과 비교하면 두 배는 넓고 새집이라 모든 집기가 미니멀한 것 빼면 완벽하게 갖춰 있다. 마누라 잔소리 없으니 통장 두둑하면 몇 년이라도 살지 싶다. 오늘 라꾸라꾸 침대 들이니 고대광실이 부럽잖다. 초등 이 학년 때 전역한 아버지 따라 서울살이 시작했을 때 양변기 보고 놀란 강원도 촌놈이 이번엔 비데를 기다린다. 뭐니 뭐니 해도 위생이 젤이라 덜컥 쌈직한 비데를 주문하고 집기는 이걸로 끝이라 다짐한다. 더 사들일 여력이 없음은 물론이고.


한낮엔 침대를 조립하고 능포(菱浦) 바다에 연해 있는 조각공원에 가보았다. 집에서 차로 오 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양지암 등대까지 가보려 했지만 등대는 내리막길 바다 위에 있어 다음을 기약하고 발길 돌렸다. 오르막 내리막을 스틱 짚고 걸으니 등짝이 땀에 젖었다. 흔한 조각공원이겠거니 했는데 작품이 뛰어나다. 관광객과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산불감시원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젊은 사람인데 성실하게 근무한다. 수영장은 주말엔 쉰다. 함께 물장구치던 사람들이 '주말 잘 보내요!' 해서 환하게 웃으며 나도 잘 보내라고 했다. 며칠 본 사인데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주말 동안 빌린 책 마저 떼고 방콕 하며 쓸쓸하고 고요한 나만의 적요(寂寥)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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