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점심 전 화이트보드 사러 다이소 가는 길.
아스팔트와 벽 사이 노란 꽃이 겨울 볕을 쬐고 있다. 도시에서도 틈이 있는 곳의 물기를 빨고 식물이 자란다. 저것들의 생명은 끈질겨서 어디서고 고개 들고 존재를 내뿜는다. 농약과 퇴비로 범벅이 돼 물고기가 사라진 더러운 시골의 물에서도 수달과 담비를 목격한다. 우리 주변의 생태는 인간이 자신들의 영토를 침입하고 파괴해도 질긴 생명을 이어간다. 인간은 서로 물고 뜯느라 아우성인데 저 생명은 차별도 혐오도 계급도 없이 존재를 나타내고 사라진다. 후손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준다는 거창한 도덕이나 양심은 가당치 않다. 후손도 끊임없이 터전을 일구고 파괴할 것이니. 다만 길을 뚫고 올라온 작은 생명에 대한 경외와 예를 다해 무릎을 구부려 낮은 자세로 들여다볼 뿐.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그의 저서 「동물 해방」을 통해 '고통은 주체가 무엇이든 고통 그 자체'라면서 동물의 권리에 대해 주장했다.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은 동물 복지를 배려한 가축 시설을 설계했다. 어차피 먹을 음식인데 왜 그렇게 가축을 위해 돈을 들여야 하느냐며 반대하는 사업자들에게 그랜딘은 이렇게 말했다. "소는 인간을 위해서 희생하니까, 더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