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6)
바다가 발끝에 닿는 수변 공원 건너편에 수영장이 있다.
호텔과 나란히 붙은 수영장 바깥쪽을 돌아가면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문화예술회관이니 문화와 예술하고 맞짱 뜰만큼 우아한 느낌의 건물이다. 호텔과 예술회관 사이에 잘 다듬은 해송이 높은 대리석 화분에서 우람한 어깨로 내려다본다. 집을 떠나기 몇 달 전부터 남쪽 지역의 사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후보지에서 결행 지로 낙찰된 곳이 G섬이었다. 재작년 자전거 여행으로 밀양에서 진영 창원을 거쳐 G섬에 들어갔다. 한국 전쟁 당시 좌익 우익 포로를 가둔 수용소가 있던 유적지를 둘러봤다. 섬을 관통해 섬의 남쪽으로 내려가려던 계획은 새로 생긴 터널과 자동차 전용도로 탓에 포기했다. 작년 시월부터 시작한 수영을 여기서도 계속할 욕심으로 실내 수영장이 가까운 동네를 점찍었다.
이십오 미터 여섯 개의 레인은 성인 전용인데 다이빙 발판이 있는 곳의 수심은 1.4미터, 반대편은 1.2미터다. 아침부터 줌바댄스의 요란한 음악이 쩌렁쩌렁한 이층 창문 아래는 유아용 풀과 어린이 풀이 있다. 바닥에 돌고래 모양 타일이 깔려 있는데 며칠 동안 아이들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오리발 레인 두 곳과 나머지는 자유수영 레인이다.
맨 가장자리 오리발 레인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칠십 대 아지매와 레인을 왕복했는데 한 번 왕복에 숨을 헐떡대며 쉬기 일쑤고 아지매는 한 번에 십여 차례 왕복을 거뜬히 해낸다. 옆의 오리발 레인은 더 가관이다. 삼총사에서 달타냥처럼 한 명이 더 불더니 줄줄이 물개처럼 연신 레인을 왕복한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의 접 배 평 자 영법을 번갈아 가며 쉴 새 없이 돈다. 눈과 입을 벌린 나는 촌놈처럼 멀거니 그녀들의 물 잔치를 구경했다. 나이는 오십 대부터 육칠십 대로 다양했다. 처음엔 그녀들의 체력에 놀랐는데 문제는 근력도 근력이지만 호흡이었다. 수력이 십 년은 기본이고 이십오 년 된 그녀들의 호흡은 이미 체화된 터다. 세쨋 날 조심스레 예를 갖춰 호흡법을 물었다. 경북 산골의 B군에서 수영 배우러 예까지 내려왔다는 말에 여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옆 레인의 남자는 여유가 부럽다며 웃었는데 난 한사코 여유 아니라고 물을 튀겼다. 그에게 쥐꼬리만 한 생계비를 믿고 결행한 속사정을 말할 이유는 없는 거였다.
수영은 중력에 저항해 팔다리로 부력을 일으켜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다.
요즘엔 운동과 스포츠로 인식되지만 역사적으론 수렵 채집하던 원시 인류부터 전쟁 등의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던 인간의 행위였다. 맨몸에 팬티나 원피스 하나 걸치고 팔다리를 놀려 물 위에서 미끄러지는 동작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숨쉬기는 고통스럽고 몸은 자꾸 가라앉는다. 처음 발차기를 배우고 호흡법을 익힐 때는 토할 정도로 물을 먹기도 한다. 수영이 몸에 좋다지만 나이 든 사람의 몸은 여기저기 엉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릎 연골 수술, 어깨 회전근 파열, 아킬레스건 수술, 고혈압 등 온통 지뢰밭이다. 사람들은 가벼운 걷기나 조깅, 등산, 사이클링 등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수영은 일단 벗고 시작하는 운동이기에 뚱뚱하면 남 앞에 나서기가 두렵다. 집 근처에 실내 수영장이 있다는 보장도 없고 초보라면 강습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 무턱대고 첨벙 뛰어들어 개헤엄을 칠 순 없는 노릇이다. 개나 말, 소는 본능적으로 물에 빠지면 수영을 하지만 사람이 개처럼 헤엄치면 자칫 개로 오해하기 쉽다.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수영을 배우게 하는 건 찬성한다. 물의 공포를 이기고 스스로 헤엄쳐 생존한다는 건 거친 바다 같은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소중한 능력이다. 또한 심폐력과 지구력이 늘어나고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
삼 일째부터 남자와 같은 레인을 탔다.
그는 수영 배운 지 십오 년이 됐으며 이곳은 직장 때문에 왔다가 눌러살게 되었노라고 했다. 입도 37년이며 이 년 전 퇴직했다. G섬의 인구 중 7,80%는 직장으로 내려왔다가 눌러앉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고향에 돌아가 봤자 노인만 남았고 고향도 변해버려 아이들의 고향인 이곳에 사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자전거를 탄 것도 나와 닮아 얘기가 금세 통했다. 그는 아지매 틈에서 나를 보니 반갑다며 이것저것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먼저 물에 들어가면 킥판을 잡고 오 분 이상 발차기로 왕복하며 몸을 풀어주고, 풀 부이를 사타구니에 끼고 팔과 상체 동작 연습, 잠영 25미터와 자유형으로 왕복하는 연습을 매일 반복한다. 실제 강 수영, 바다 수영대회에도 참가했다고 했다. 금요일만 쓴다며 그는 오늘 숏핀을 가져왔다. 사내의 몸풀기를 따라 하는 데도 숨이 가빠 헐떡거리며 자주 쉬었다. 새로운 호흡 동작이 들어맞는 것 같았다가도 금세 숨이 찬다. 호흡은 자신의 몸에 편안하게 체질화될 때까지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호흡이 되면 팔다리가 힘들어 못 가도 숨이 차서 못 간단 소리는 안 나온다.
수영을 시작한 지 삼 개월 돼가는데 뱃살은 늘어나길 멈춘 것 같고 편평해진 느낌이다. 나이 들수록 몸매를 유지할 생각이다. 배가 들어가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실제로 팔십 키로를 유지하던 체중이 근육이 빠지고 팔다리가 가늘어지면서 77kg까지 빠지더니 수영하고부터 두 달만에 이 킬로가 빠졌다. 탈의실 체중계에 올라가면 지금은 74kg 대에서 바늘이 떤다. 키에 비하면 이것도 과하다. 70kg 정도는 돼야 활동에도 좋다. 시시콜콜 관심 없는 몸무게를 늘어놓는 건 수영이란 운동이 여러모로 좋기 때문이다. 등산 헬스 농구 축구 등 여가 운동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수영은 물에 저항하는 원시 인류의 몸짓이다. 어류에서 진화했다는 현생 인류의 진화론이 아니더라도 아가미가 없는 이상 인간은 물에서 살아남으려면 팔다리를 움직여 머리를 내밀고 숨을 마셔야 한다. 세상의 탁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헤엄쳐 바다 건너 새로운 세계로 도약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구의 반대편으로 한 바퀴 돌아 원위치에 이르는 도로에 그친다 해도 인간의 행위는 멈추지 않을 거다. 섬에 들어와서 수영장 사람들과 매일 만나 물 튀기니 구면이 되었다. 주말엔 쉬는 수영장. 다음 주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