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7)


떻게 했으면 양쪽 무릎의 연골이 죄다 찢어졌을까.

격한 운동이 원인이 아니고 직업병이었다. 연골이 파괴될 정도의 자세라면 용접사임이 분명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가 평생 때운 철판의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그는 퇴직했지만 그가 매만진 수만 톤급의 배는 지금도 바다를 누빌 거다. 군대 제대하고 내려와 조선소 일한 지 37년 되었다. 고향 하동으로 돌아가 봐야 얼굴도 희미한 친척 노인 몇 분이 남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여기가 고향이었다. 눌러살기로 했다. 섬 주민 중 70% 이상이 일 때문에 내려왔다가 눌러앉게 된 사람들이다. 원주민은 집 터를 밀어버리고 원룸을 지어 노후를 기댄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조선 경기가 적어 빈방이 남아도니 월세가 자꾸 떨어진다. 퇴직 후 수영으로 수술한 무릎을 달래고 있다는 그는 육십 초반이었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건 사십 대 후반부터였다. 바다 수영대회에 나가 상도 탔다.


새벽에 일어나 물이 똑똑 떨어지는 변기 물통의 너트를 풀어 다시 조였다.

마른 욕실 바닥에 아예 드러누워 몽키 두 개를 잡고 씨름하니 이내 풀렸다. 어제 원룸 주인이 올라와 둘이 위아래서 힘쓰다 오버플로우 플라스틱이 좀 깨졌는데 그 부분은 끼워 콩나물 끈으로 조이니 그런대로 작동했다. 내일 아침 설비 기사를 부른다고 했는데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깟 너트 풀지 못하고 기사를 부르다니. 박 선생도 나처럼 기계치인 모양이었다. 출장비를 줘야 할 거였다. 아마 설비 기사는 속으로 남자 둘이 요런 거 하나 손보지 못한 데 대해 쾌재를 부르며 돈을 챙겨 갈 거다. 사소한 데 돈을 쓰는 게 아까웠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욕실 바닥이 마른 걸 보고 몽키를 잡고 드러누웠다. 자세가 문제였다. 누우니 조여진 양쪽 너트가 잘 보였다. 물린 부분에 몽키를 끼워 반대편으로 돌리니 그제야 스르르 풀린다. 다시 조이고 물통 벽에 닿은 오버플로우 추를 손을 넣어 조절했다. 물을 트니 좔좔 물이 차기 시작했다. 떨어지던 물방울도 사라졌다. 성공이다. 바보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흥분했다. 일곱 시가 가까웠으나 밖은 이제 막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박 선생에게 문자를 띄웠다. ' 박 선생님, 302호입니다. 새벽에 아래 너트 풀어서 고쳤습니다. 번번이 수고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그저께는 박 선생과 동네 철물점을 순회하며 오버플로우를 샀다.


수영장에 다른 날보다 늦게 도착했다.

주말을 쉰 사람들이 퐁당퐁당 돌을 던지며 헤엄치고 있다. 남자는 킥판을 잡고 물 차기를 왕복하고 있었다. 나도 같은 레인에 들어가 킥판을 잡았다. 지난 주보다 호흡이 되는 느낌이지만 여전히 레인을 왕복하면 숨이 찼다. 남자를 반밖에 따라잡지 못한다. 그를 따라 풀 브이를 끼고 왕복했다. 옆 레인의 물개 아지매가 아는 척을 한다 이제 나도 수영장 단골이다.


탈의실에서 옷을 입다 집에서 보내준 스타벅스 쿠폰이 생각나 샤워장 문을 열고 들여다봤다. 남자가 알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었다. 시간 되면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 먼저 나가 기다리란다. 그러마고 했다.


커피를 주문했다.

스타벅스는 여기서 멀었다. 남자는 가까운 호텔 커피숖으로 가자고 했다. 문화예술회관 건물에 수영장과 호텔, 문화원이 함께 붙었다. 방역 체크를 하고 자리에 않았다. 오전 시간이라 손님은 둘 뿐이었다. 다크 브라운의 질감이 기름한 나무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았다. 통성명을 하는데 성이 같고 이름도 가운데는 같고 끝 자만 달랐다. 누가 들으면 형제인 줄 알겠다고 둘이 웃었다. 하동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난 고조부가 하동에서 살다 경성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그는 부모가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했다고 했다. 선친은 본가인 의령으로 가지 않고 처가인 하동에서 터를 잡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하동으로의 발길이 차츰 멀어졌다고 했다. 딸은 동사무소에서 일하고 아들은 서울서 직장 다니는데 둘 다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비혼이든 미혼이든 젊은 사람들 뜻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부모 생각대로 바라는 건 아니라고 삶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게 낫다고 했다. 난 동해에서 물옷(wet suit) 입은 사진과 물질로 잡은 생선과 문어를 보여주었다.


그와 빠르고 간결하게 서로의 과거와 현재의 신상을 말하면서 단순히 수영의 인연이 두 사람을 마주 앉게 했다는 사실에 훈훈했다. 공통의 관심사에서 모든 위계는 지워질 수 있다. 동호회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호회에서조차 보이지 않거나 과시하며 드러내는 위계는 존재한다. 한국 사회는 위계가 차별로 굳어진 사회다. 사람은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생존 불안에 대한 공포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상실과 낙오를 더 크게 여긴다. 생물학적 죽음보다 사회적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차별과 학대, 무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반증이다. 떠나온 B읍은 전형적인 시골의 습속과 문화가 배인 곳이다. 하지만 도시와 다른 점은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드러내 차별하지 않고 어울려 사는 공동체라는 점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살만한 곳이기도 하다. 각각의 내밀한 속내는 모르더라도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한다. 아내의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 구성원 간의 신뢰와 배려는 관계의 본보기로 이해한다. 물론 인간의 심리는 끝 간 데 없이 복잡하고 난해해서 한마디로 개념 지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에게 굴을 살 수 있는 어시장을 물었다.

그는 호텔 앞에서 바다 쪽의 건물을 가리키며 지금 가서 둘러봐도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와 헤어지고 가보니 미끈한 외관의 건물보다 작은 규모였다. 호객하는 상인은 없고 고무 앞치마를 두른 청년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조개를 포장하고 있었다. 저울 옆에서 택배 딱지를 붙이는 사람도 묵묵히 일에만 열중했다. 나처럼 둘러보는 이 없이 고요한 분위기였다. 삼삼 해물을 둘러보고 나와 문화원에 전화했다.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수채화 강좌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들었다. 상냥한 목소리의 여자는 수채화 선생님이 강의를 정말 재미있게 하신다고 했다. 난 웃으며 그건 말하는 분의 주관이 아니냐고 했더니 여자는 웃으며 모든 수강생이 다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열흘 후 수강을 결정하면 수강료 결제를 안내한단다. 설에 집에 가면 미술도구를 챙겨 오리라 생각한다. 수채화를 많이 그렸지만 기법에 대해 배워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 한 학기 배우고 집에 가면 근동의 아는 화가에게 배움을 청해 보리라 다짐한다. 상반기까지 쉬면 하반기부터는 기간제 일을 찾아 해야 한다. 마냥 놀 순 없는 처지다. 방에 돌아와 변기 물을 내렸다. 이상무다. 뭘 만들고 고치는 덴 잼병인 내가 너트 하나 풀고 조였다는 게 신기하고 바보스러워 또 웃었다. 나무 베고 가지 자르는 건 자신 있지만 고치고 뜯어보는 데엔 서투르다. 파괴적인 성벽이 있음일까. 쉴 새 없이 써대는 잡문도 파괴적일까. 그렇진 않다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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