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8)


원룸 삼 층에 휴게 공간이 있었다.

물 모서리 부분에 목재를 써서 지붕과 탁자, 긴 의자를 배치했다. 방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월세를 받는 입장에선 파격적이라 생각됐다. 이웃한 원룸엔 옥상을 빼곤 다닥다닥 창문만 빼꼼하다. 사장 내외의 마음씀이 엿보이는 공간이다. 입주 나흘째 옥상이 있는가 계단을 오르다 출입문을 발견했다. 동네가 훤하게 조망된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주택 사이 빼곡히 들어선 원룸의 숲이다. 언덕 꼭대기와 건너편 산자락 따라 아파트를 병풍처럼 둘러쳤다.


칠 전 동네 언덕길을 산책한 적 있는데 고갯마루 올라서자 거대한 크레인이 바다를 가리고 우뚝 선 게 보였다. 말로만 듣던 옥포 조선소였다. 크고 작은 크레인이 거미줄처럼 엉킨 사이로 물 위에 뜬 철선이 아침 햇발에 시커먼 몸집을 쪼이고 있었다. 중국의 조선업 약진에 밀린 불황의 여파는 섬에 여지없는 직격탄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구름같이 오가던 출퇴근 노동자의 모습이 썰물 빠지듯 줄어들었다. 구조 조정과 정리해고 등으로 일자리가 급한 노동자들이 차례차례 섬을 빠져나갔다.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섬에서 꿈을 키울 기회를 상실했으니 미련 없이 떠나버린 거다. 실직한 노동자는 일자리를 찾아 더 낮은 임금의 전혀 다른 직종에라도 매달려야 할 거였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거나 독신이거나 수입이 막히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스로의 의지 외엔 굶어 죽지 않는 사회라지만 여전히 가난의 고통은 상대적이다. 돈에 의해 다층적 위계로 분화된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자유도 존중도 사랑조차 돈의 권력에 무릎 꿇고 복종하고 만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으로 빈곤은 대물림된다. 소수의 부유층이 부동산, 생산 재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위계의 상승이 불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낮은 위계의 사람은 생존 불안, 존중 불안 때문에 위해 목숨을 건 경쟁으로 자신이 처한 위계를 벗어나려 안간힘 쓴다. 돈이 없으면 평등과 공정, 자유로운 삶에서 멀어진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한 터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풍요로운 사회지만 위계 간 불평등은 불화하는 사회의 몸집을 불린다. 가난했지만 화목했던 공동체 시대는 붕괴되었고 풍요-불화 사회가 일상이 된 것이다. 열심히 사는데 돈이 모이지 않는다. 노동하면서도 가난한 현실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안 먹고 안 입고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도 일 년 새 수억이 오르는 아파트값을 보는 서민의 눈이 짓무르다 못해 한숨이 쏟아진다. 욕망이 좌절된다. 이런 사회에서 청년에게 성실히, 부지런히 살아라는 말은 공허하다 못해 욕이다. 죽어라 일해도 노예의 노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의 자조적 어휘가 남발하는 사회는 희망이 죽은 사회다. 병든 사회에서 몸과 마음이 병들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희극이 다수의 비극을 덮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다. 내가 떠난 농촌은 그마저도 없다. 뉴스로 보는 부동산 광풍에 날뛰는 사람들을 그저 먼 나라의 신기한 풍경 보듯 할 뿐이다. 사과 따고 흙 뒤집고 술 따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직조한다.


둠이 깔릴 무렵 종일 머문 방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다.

선소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근무복을 입은 채 거리로 쏟아진다. 숙소로 곧장 가는 사람, 장을 보러 마트에 들어가는 사람, 동료와 술집에서 닭갈비를 뒤집는 이 등 다양한 모습을 만나는 게 여기 와서 낙이 되었다. 젊은 노동자는 모퉁이에 서서 누군가와 통화에 열중이다. 신호등 건너편에 하얀 머리의 노동자와 앳된 얼굴의 노동자가 서서 얘기를 나눈다. 나이 든 노동자는 조선소에서 무슨 일을 할까. 아내와 함께 내려와 있는 걸까. 별 게 다 궁금해진다. 그들의 걸음에 섞여 걷는다. 발에 힘이 실린다. 나도 여적지 밥을 버는 노동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팔뚝에 힘줄 불거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월은 지나려니 생각해도 너무 빨리 흐른 느낌이다. 순식간에 지나갔어도 많은 사건을 경험했다. 부끄럽고 치명적인 실수, 연인과의 가슴 뛰던 산책, 해질 무렵 마당 숯불에 된장찌개를 올려놓고 가족과 도란도란 얘기하던 귀농 초년 시절, 일터에서의 한숨과 눈물...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고물장수, 벽돌공장, 동지나해 중선배 선원을 거쳐 건설회사 광고회사를 다니다 귀농한 시골에서 다시 강원도 바닷가 솔숲으로 일터를 옮기며 참 불나게 돌아다녔다. 가족을 먹이느라 동분서주했지만 가난의 넝마는 여전히 걸치고 산다. 일 년 열두 달 쉬지 못하고 일하는 아내는 늘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산다. 덕분에 난 기어들고 그녀의 목소리는 커진다. 지금은 놀면 쉬면 기간제 일을 한다.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층에서 내려다보면 원룸 숲 사이로 까마귀가 점점이 날아다닌다.

상 모서리에 앉아 깍깍 울며 동료를 부르기도 하고 훌쩍 날아올라 건물 사이를 지나 다른 건물 꼭대기에서 날개를 접는다. 마치 수확이 끝난 시골의 하늘에 떠다니는 검은 비닐 같다. 이곳의 까마귀는 만장처럼 아카시나무에 걸려 겨우내 바람에 떠는 폐비닐의 모습과 겹친다. 까마귀는 어디서 취식을 할까. 고양이처럼 음식 쓰레기봉투를 뒤질까. 그랬다간 매운 길냥이에게 걸려 혼찌검이 날 수도 있다. 고양이들은 낮에도 골목을 쏘다니며 울어대 고요한 공기를 찢어놓곤 한다. 까마귀는 영리한 새다. 산에서 일할 때 도시락 배낭을 한데 모아놓고 산에 올라가면 까마귀가 배낭을 뒤지는 일도 있었다. 동료는 간식으로 챙긴 두유팩을 물고 도망가는 걸 봤다고 했다. 까치를 길조, 까마귀를 흉조라고 하지만 일본에선 반대다. 불길한 조짐을 알려 몸가짐을 삼가란 새가 경박하게 떠들며 몰려다니는 까치보다 낫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도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