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10)
초저녁 파리바케뜨 지나다 흘낏 안을 들여다본다. 노인 한 사람이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앉아 있다. 누구를 기다리나. 심심해서 나왔나.
다 저녁 답 파리바케뜨에서 커피를 앞에 둔 노인은 어색한 입맛을 다신다. 친구라도 돼줄까. 어깨가 벌어진 노인은 옛날에 힘 꼴깨나 썼겠다. 깡다구라면 나도 못지않은데. 손님 없는 휑한 빵집 환한 조명 아래 커피와 마주 앉은 노인은 집에 갈 생각 없나. 돌아갈 집은 있을까. 뭐 했던 사람일까. 노인은 심신이 타들어가는 열렬한 연애를 경험해 봤을까. 꿈이란 게 있었겠지. 혹시 배를 타고 대양을 누볐을까. 남태평양의 산호를 안고 배에서 내린 적 있었을까. 치매가 온 건 아니겠지.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잡는다. "죽으려는 생각도 안 해. 원래부터 살아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여기서 버틸 뿐이지." 간이 숙박소 80세 노인의 말이 밤하늘에 휴지처럼 떠올랐다.
조만간 노인의 대열에 낀다.
가족은 날 찾지 않고 친구도 부르지 않는다. 신병은 도져 몸이 늘 아프다. 가끔 젊은이가 된 느낌이다. 치매의 기미도 나타난다. 고독사란 말이 저승사자처럼 느낀다. 글이 써지지 않고 생각이 말이 되어 튀어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배고프다고 느끼면 밥을 먹는다. 사람이 두렵기도 그립기도 하다. 많이 살았단 생각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한다. 함께 잔 여자 생각을 한다. 태어나 산 게 공허하다. 사회에 기여한 게 무언지 하나도 모르겠다. 가족에겐 상처만 주었다. 사랑한 이도 사랑받은 기억도 가물하다. 사랑이 무언지 모르겠다. 꿈은 무지개일 뿐이었다고 느낀다. 그런 확신이 허망하게 발목을 잡는다. 남도의 끝 밤바람이 차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일생을 마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저무는 이상 통계와 수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인도나 산속에서 홀로 산다고 해도 독거인의 통계에 잡히는 사회적 존재란 사실은 비껴갈 수 없다. 고령화 시대는 저출산과 함께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베이비 부머인 나도 조만간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처지가 된다. 통계와 수치는 한 사회의 지표가 된다. 통계를 읽으면 사회의 외피는 물론 내피도 읽힌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OECD 통계는 우울을 넘어 지옥에 다다른 느낌이다. 노인의 빈곤율, 자살률은 불행하게도 최고 수치를 나타낸다. 각자도생의 무한 경쟁에서 한국인은 나이 들수록 생존 불안에 휩싸인다. 청년의 실업률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는 청년을 절망으로 몰아가 끝내는 이번 생은 망했고, 현재를 즐기자는 쪽으로 가치를 선회한다. 즐길 수 있는 입장이라면 다행이다. 정치가는 선거 때마다 성장과 분배를 외치지만 자산가, 고소득층은 세금을 더 낼 생각이 없다. 저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탈성장의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길은 멀고 멀다. 유럽은 사회주의의 장점을 본떠 복지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다. 미국 젊은 층의 사회주의 찬성률은 갈수록 높아지는 경향이다. 한국은 현재 OECD 국가 중 노후빈곤율이 49.6%로 1위, 노인 자살률이 1위, 7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이 1위로, 노년에도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한 게 아니라 죽지 못해 일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평생 살아가다 늙은 후에 제 손으로 목숨을 끊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사는 게 지옥이니 차라리 이 꼴 저 꼴 안 보겠다는 거다. 사회 속에 포함된 나의 미래는 어떨까.
누구나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공적 연금을 비롯해 노후 수입이 보장되고 사회 안전망이 튼튼하면 병에 걸려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다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의 통계와 지표는 암담하다. 상위 몇 프로의 부자와 노후 수입이 보장된 일부 계층을 제외하면 노인 대다수는 빈곤에 허덕이는 말년을 보내야 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노인의 3대 고통은 빈곤과 질병, 외로움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무위(無爲)가 추가되었다. 가난하지 않고 건강하고 고독하지 않은데도 아무것도 이룰 것이 없다는 건 고통이다. 인간은 극도로 심심하면 우울에 빠지거나 미친다. 그만큼 인간은 관계 속에서 만족을 얻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가족 간에 불화하면 이웃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라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고립된 인간은 아무와도 소통할 수 없으며 그런 존재는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끝내는 살 의욕을 잃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살았다고 하나 돌아보면 남은 게 없다.
몸고생 마음고생하면서 살다 보니 여축은 없고 이리저리 일을 찾아 가족을 고생시키며 끌고 다닌 꼴이 됐다. 이것이 개인만의 잘못일까. 국가와 사회는 개인의 생존을 위해 책임이 없을까. 공동체의 가치는 구성원 모두의 인간다운 삶에 있을 터인데 부자와 빈자를 다층의 위계로 나누어 차별하는 사회는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일까. 모두가 복지를 누리며 살기 위해선 소수의 자산가와 고소득자가 자신의 부를 덜어 낮은 계층에게 분배하는 제도가 구조적으로 마련돼야 하는데 그들은 물론이고 정치가와 관료 또한 그럴 생각이 없다. 내 것을 내놓으라고 하면 레드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들은 빨갱이 공산주의 운운하며 눈을 부라리고 피를 토하며 달려든다. 결론적으로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문제 해결은 막대기 허리에 실을 묶어 바느질하는 행위이다. 여기에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 파괴를 논하는 건 거시적이고 상상만의 일이라고 침을 튀길지도 모르겠다. 쓰나미는 해변가의 집을 골라서 덮치지 않는다. 코앞에 닥친 모두의 문제다.
남도에 내려와 객창한등(客窓寒燈)의 고독을 맛보는 중이다.
열심히 살았다고 하나 초년의 뼈아픈 실수와 눈에 띄지 않는 장애는 삶의 고비마다 발목을 잡았다. 애먼 가족은 가장이 이끄는 대로 도시로 시골로, 바닷가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동안 발목이 굵어진 아이들은 떠났거나 돌아와 옆에 살지만 빈한한 형편의 살림에선 곰팡내가 풍긴다. 일탈과 고독은 내 주특기였다.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는 가장의 구실은 그나마 나이 들면서 쇠약해졌다. 아내가 일하고 난 비정규 일자리를 하다 쉬다 했다. 돌보미 일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다. 오십 대 여성들의 묵묵한 노동이 사회의 지반을 떠받친다. 아내는 늘 아프다고 하고 한 달이라도 편히 쉬고 싶은 바람을 노래 부른다.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휴일이 지나면 꾸역꾸역 일터로 나가는 게 일상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강원도 바닷가 솔숲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늘어나는 평균 수명을 따지니 연금을 일찍 받는 게 낫다 싶어 손해를 감수하고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한 달 칠십만 원의 연금은 통신료 보험료 등을 떼고 나면 금세 바닥이지만 요긴하게 쓴다. 그러나 내가 독립을 선언하고 독거 생활에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초노령연금을 타면 백만 원이 모자라는 수입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노인 중에 아예 연금을 못 받거나 받아도 형편없이 낮은 금액을 받는 것에 비하면 나을지 모른다. 내게는 부동산도 동산도 전무하다. 말 그대로 무(無) 자산가다. 가진 게 없으니 물려줄 것도 쓸 것도 없어 홀가분한데 식구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이야 정한 직업이 있으니 제가 벌어 쓰면 되지만 비정규직을 살피는 딸의 입장은 궁색하다. 돈이 전부가 아니니 미래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피천이 아쉬운 결핍은 당하는 사람이 안다. 이런 형편에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생기면 쪼들리는 살림은 그야말로 무너지고 만다. 대개의 서민이 이렇게 살다 파국을 맞는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불화하는 풍요 사회다. 자본의 위계는 계층을 백 가지 넘게 갈라놓고 위계 간, 위계 내 차별을 굳건하게 다졌다. 위계를 뛰어넘는 신분 상승은 허망한 꿈이 되었다.
인간은 돈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돈은 벌어 쓸 수 있는 '사용 가치'를 지닌 삶의 윤활유다. 자본의 입장에선 없는 가치도 새로 만들어 부추겨 무한 증식을 하는 게 목표지만, 인간은 생존과 인간 존중의 불안을 씻어내고 이웃과 사랑을 주고받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을 누리는 존재다. P.A. 크롯포트킨은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라고 했지만 인류는 자본주의를 맹신한 결과 지옥도와 다름없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시장주의자,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다윈주의로는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는 없다. 에리히 프롬은 인본적 사회주의를 주장했지만 사회의 공기는 미쳐 돌아갈 정도로 탁하다. 세대를 넘어 위계를 넘어 국가와 인종을, 남녀와 소수자를 넘어 조화로운 지구를 살려내는 일은 꿈에 불과할까. 길은 어둡고 바람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