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11)
섬의 역사는 육지와 다르다.
바다에 솟아 있는 지형 상 뭍과는 단절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섬 주민들은 바다에서 고기와 갯것을 잡고 산자락의 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뼘뙈기만 한 논에 벼농사를 짓고 살았다. 태풍과 비바람의 자연재해를 고스란히 견디는 것 외에 지리적으로 쓰시마와 가까워 왜구의 침입을 자주 겪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옥포 해전, 칠천량 해전, 한산도 대첩 등이 섬 주변의 바다에서 벌어졌고 가까운 T시에는 삼도수군 통제영이 설치되었다. 또한 제주도 추자도 등과 함께 귀양살이의 섬으로도 알려졌다. 1971년 거제대교가 개통되고 2010년 가덕도와 해저터널로 섬은 이제 섬이 아니게 됐다. 공항과 철도까지 생긴다며 섬은 들썩이기 시작한다.
G섬의 인구 변화는 시대에 따라 역사와 경제의 모습이 달라졌다.
한국 전쟁 때 넘치는 포로를 수용할 곳으로 육지와 단절된 이 섬을 활용했다. 1•4 후퇴 이후 중공군과 인민군 포로 등 17만의 포로와 밀려든 피난민 십만, 섬 주민 십만을 포함해 총 37만 명의 인구가 볶닥였다. 섬의 서북쪽 고현동에는 지금도 남아 있는 포로수용소 일부를 유적지로 관리한다. 두 번째의 인구 변화는 조선업의 약진이었다. 현재 섬 인구 25만 명 중 70%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다. 은퇴해서 섬에 눌러앉아 정착민이 된 경우가 많다. 중국의 선박 제조업이 앞지르면서 우리나라의 조선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근동의 T시와 섬의 조선소는 구조조정과 해고의 쓰나미를 고스란히 덮어썼다. 대우해양조선과 삼성중공업의 양대 조선소 외에 줄줄이 딸린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잘리거나 해서 섬을 떠났다. 섬의 경제를 지탱하던 노동자가 떠났으니 당연히 섬의 살림도 거덜 나기 시작했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치고 식당, 술집이 문을 닫았다. 주민들의 노후 대책으로 우후죽순 들어섰던 원룸의 공실률은 치솟고 월세는 자꾸 내려갔다. 섬이 가진 자연 자본은 바다가 유일하다. 선박 제조업이 불황을 타자 관광 레저산업이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원주민과 뭍에서 들어온 외지인들은 풍경 좋은 땅에 펜션, 리조트와 호텔을 짓고 포구는 어선보다 유람선, 낚싯배가 차지하고 관광객을 기다린다. 전국 어디를 가도 풍치 빼어난 땅에는 펜션 식당 술집이 자리 잡았다. 원주민 이주민 할 것 없이 돈 내고 돈 먹기가 대세다. 자본이 득세한 판에서 밑천 없는 놈은 손가락 빨다 세월 보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대만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쫓겨 들어온 외성인(外省人)과 그전부터 살아온 본성인(本省人)과의 알력이 지금도 심하다. 몇 해 전에 외성인과 본성인의 차별과 갈등으로 삼만 명이 넘는 학살이 벌어진 타이페이의 2•28 공원에 간 적이 있다. 이 섬에서도 알게 모르게 원주민과 이주민의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차별이나 혐오와는 결이 다른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성질이다. 관광 어업, 체험 농원, 숙박 시설 등으로 소득을 도모해야 먹고살 처지가 되었다.
아침 먹고 집을 나섰다.
커피를 싸고 B군에서 사과 농사하는 지인이 보내준 사과 한 개를 가방에 넣고 출발했다. 원룸 골목을 나서는데 주인 아지매가 개와 산책하고 있다. 인사하고 개의 이름을 물었다. 마루란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소형견인데 영리해 보였다. 폭포처럼 흘러내린 털이 귀와 몸통, 꼬리에 멋스럽다.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밖에 나와 오줌을 누인단다. 아주머니에게 곰돌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잘생겼단다. 그러면서 마루는 서울의 아들이 보내준 개인데 견종이 빠삐용이라며 섬에선 마루밖에 없을 거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새끼는 백만 원이나 한다고. 속으로 웃었다. 잘생긴 나무도 개도 자본의 가치를 비껴가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집 곰돌인 돈 주고도 못 산다. 어디 가냐고 묻는다. "조각 공원에 다녀오려고요." "걸어서요?" "아뇨, 차로 주차장까진 가야지요." 솔직히 조각 공원을 지나 등대가 있는 바다의 산책로까지 갔다 올 자신은 없다. 너무 먼 거리라 지난번에도 갔다가 포기하고 돌아섰다. 초롱한 눈을 반짝이는 마루의 머리를 쓰다듬고 바다 쪽으로 차를 몰았다.
조각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었다.
주 오 일제가 굳어진 예전의 반공일 날 오전 산책하는 사람이 하나둘 보인다. 낮게 전정한 동백나무 생울타리 너머 뱀의 허리처럼 구불텅한 곰솔 숲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중천에 뜬 해가 수면을 눈부시게 찌르고 거대한 화물선이 꼼짝 않고 떠 있다. 잔잔한 물결은 쉬지 않고 드러난 섬의 발목을 찰싹찰싹 때렸고 그때마다 하얀 거품이 끓었다가 사라졌다. 해송의 뻐등한 바늘잎 사이 까마귀가 날아오른다. 저것들은 도심의 원룸 숲을 지배하더니 이쪽의 영토도 차지한 모양이다. 공원의 잔디밭에 모인 새들은 저희들끼리 장난치며 오전의 망중한을 즐긴다. 검은 중절모를 쓴 젊은 여자가 개 두 마리의 리드 줄을 잡고 조각상 앞으로 지나간다. 젊은 여자가 중절모를 쓰니 멋스럽게 보였다. 지팡이에 목도리를 두른 내가 느릿느릿 가는데 라디오 볼륨을 키운 사내가 팔을 홰홰 저으며 홱홱 지나쳐 나아간다. 모자 아래 드러난 뒤통수가 하얗다.
원형으로 꾸민 길가 정원의 가운데에 금목서가 아담하게 서서 잔잔한 해풍을 맞는다. 남부지방의 식생에 관한 한 일자무식이라 도서관에서 수목도감을 빌렸다. 상록 활엽수의 대부분이 온대지방의 남부 해안의 수목이라 눈으로 외울 요량으로 도감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봐야 제대로 익히는 법이다. 암만 봐도 그게 그거 같다. 지천인 동백나무야 익히 알지만 나머지 수목은 식나무, 먼나무, 꽝꽝나무 등 이름만 들었지 식별하지 못하는 까막눈이다. 중부의 식생만 보고 살았으니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명색이 나무 자격증이 세 개나 있으면서 수목을 구별해 내지 못하다니 딱할 노릇이었다. 시간 되면 섬의 북쪽에 있는 식물원에 종일 퍼질러 앉아 수목 공부를 하리라 다짐한다. 상록 활엽수의 잎은 대부분 두껍고 광택이 났다. 바닷바람에 섞인 소금기와 사나운 비바람을 견디는 데 적응한 결과일 거다. 인간도 사물의 제도와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거듭했다. 산업 혁명 이후 자본가와 노동자의 위계로 시장을 형성한 지 이백 년이 지난 동안 자본주의는 인간의 삶을 위해 얼마나 기여했을까. 갈수록 벌어지는 양극화와 사회의 불평등, 위계 간 위계 내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차별은 개인은 물론이고 집단마저 갈가리 찢어 분열시켰다. 물질이 풍요한 시대에 살면서도 개인과 개인, 사회와 국가 간의 불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정치가와 관료들, 자본가와 노동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흔적은 없고 서로의 밥그릇과 권력을 위해 다투는 동안 애먼 시민만 피눈물을 억누른다. 분노가 일상화되고 체념이 세계관으로 굳어지고 꿈을 꾸지 못하는 청년이 넘치고 노인은 죽지 못해 일하는 사람들의 눈치만 본다. 이십일 세기 인간의 삶을 포용하는 철학과 정책은 멀기만 한지 걸음이 무겁다. 무너지는 개인의 불행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게 분명하다.
곰솔 숲이 끝나는 바다 위에 배 한 척이 떠 있다.
가만히 보니 남자 서넛이 뱃머리에서 낚시를 던지는 중이다. 산책로에는 긴급 시 구조 요청을 하는 안내문이 있었다. 리아스식 해안으로 섬을 빙 둘러 온통 낚시 포인트이니 그럴 법도 하다. 아까도 사내 둘이 낚시 가방과 미끼통을 들고 잰걸음으로 지나가는 걸 보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인 산책로는 산마루를 타고 계속 이어졌다. 일 킬로미터쯤 갔을까 멀리 왼편 아래쪽에 바다가 나타났고 수면을 따라 부교 같은 산책로가 보였다. 그 끝에는 하얀색을 칠한 무인 등대가 있었다.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걷는 건지 선채로 낚시를 던지는지는 너무 멀어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내리막길로 걸어갔다가 되오려면 한참은 걸리지 싶었다. 슬슬 등짝에 땀이 배인다. 목도리를 어깨 가방에 넣고 장갑마저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오늘로 조각 공원에 세 번째 왔다. 다음에는 동무와 함께 얘기 나누며 걸어서 등대까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함께 산책할 동무는 어디서 구하나 가 문제다. 발길을 돌려 걷는데 몸통이 회색인 제비만 한 새가 머리 위에서 삐육삐육! 소리 낸다. 목청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