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12)
식물원에 갔다.
섬의 동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은 새로 뚫린 터널이 새신을 신은 것처럼 곧고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섬의 중심을 지나자 바다가 다시 나타났다. 푸른 물결의 밭에는 양식장의 부표가 하얀 점으로 촘촘하다. 멀리 나무 모자를 쓴 것 같은 섬들이 수제비처럼 둥둥 떠 있다. 섬은 사방으로 길을 내고 터널을 뚫어 남북으로 달리면 한 시간 거리이고 동서는 삼십 분 정도 걸린다. 신 도심의 도서관 가는 길은 이제 네비를 켜지 않고 오갈 정도로 익숙해졌다. 돔형 식물원의 모습은 인터넷에서 봐서 낯설지 않았다. 주차 안내원이 빨간 봉을 양손에 들고 바쁘게 차에게 손짓한다. 벌써 도착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미소 지으며 보는 데서 신나게 미끄럼틀을 탄다. 너른 주차장은 금세 차 버렸다. 여행 온 사람들의 주요 코스라고 생각되는 것처럼 차들은 속속 도착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매표소 앞에서 안내원이 QR체크를 한다.
그에게 물었더니 돔 안에는 열대 식물이 있고 바깥 공간에 식물원이 있단다. 나무 이름표가 붙었느냐고 물었다. 물론 붙어 있단다. 그의 말은 사실과 달라 실망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복지 카드를 보여주니 무료 입장권을 내준다. 돔 입구에서부터 길목마다 안내원이 서 있다. 난 그들이 기간제 직원이라는 걸 안다. 시청 구직 공고에서 '신중년 일자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기간제 일자리는 상 하반기로 나눈다. 많은 수의 실업자를 참여시키려는 정책이지만 구직자는 짧은 기간 일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만큼 노동의 안정은 흔들린다. 열대 식물이 인공 암벽을 따라 빼곡하게 심어졌다. 물보라를 튀기는 인공 폭포, 겨울에도 꽃을 피운 갖가지 열대 식물은 흥미로웠다. 안내원들은 비로 바닥을 쓸거나 작은 원예용 가위로 말라죽은 이파리를 잘라 봉지에 담기도 했다. 돔 식물원의 모든 곳은 정갈하게 관리되고 실내의 공기는 수목에서 뿜어내는 산소로 눅진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바쁜 안내원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동굴 형태의 관람 코스를 돌아 나오니 밖의 공기가 시원하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식물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 열대 식물보다 섬의 자생 식물에 관심이 많다. 주변에서 자라는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면 이름 모르는 사람과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거다. 꽃, 나무, 사람보다 무슨 꽃이며 어떤 이름의 나무인지가 식물의 정체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게 아닐까. 사람도 무리에 섞인 다수보다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이름과 성격, 그가 살아온 과정이 그와 나의 관계적 맥락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믿는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세상에 조건 없는 신뢰는 없으며 무조건은 아무 데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앎을 통한 신념은 확신을 거쳐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갖게 마련이다. 생각 없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위태로운 건 없지만 요즘은 길게 사유하거나 긴 문장을 회피하는 경향이 짙다. sns에서도 '좋아요!'의 이모티 하나면 만사가 통한다. 긴 답글이나 댓글을 읽는 것조차 성가셔한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거나 밥을 먹기보다 가상의 공간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좋아요'는 집단에 섞여 살아남길 바라는 심리와 닮았다. 나도 가끔 '좋아요'의 마법에 빠진다. 여행이 아닌 관광은 대상을 겉으로만 스칠 뿐이다. 빠르게 지나는 관광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할 뿐이지 가는 동안의 과정은 생략된다. 생존 불안과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은 차별과 배제, 소외로부터도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대체로 비슷한 삶'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으로 하루가 저문다. 차이나 다양성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면서도 내심은 위계 상승을 위한 욕망에 불타고 있다. '주저앉음'이나 '체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배와 절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는 더 이상 불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사회는 평범을 싸잡아 루저로 낙인 찍고 비웃는다.
분명히 주변에는 섬의 자생 식물이 가득한데 이름표는 햇볕과 비바람에 지워졌거나 떨어져 나가 알아볼 수 없었다. 알고 있는 당종려나무는 명찰이 선명했다. 흐릿한 자국에서 돈나무를 읽고 사진에 담았다. 빨간 구슬 열매를 주렁 하게 매단 먼나무도 외울 작정으로 나무를 돌아가며 살펴보았다.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마음먹고 찾은 이에겐 기대만큼 실망이 크리라 생각된다. 허브 식물원은 문이 닫혔고 미생물 배양소는 지나쳤다. 겨울에 와선지 동선마다 휑댕한 바람만 발에 걸린다. 매표소로 돌아오니 아까보다 긴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린다. 일찍 오길 잘했다.
그냥 돌아오기 허전해서 시인이 알려준 포구를 둘러보고 섬과 연결된 다리를 건너 작은 섬에 들어갔다. 멀리 희부연 시야 너머 섬들이 육지와 함께 병풍처럼 펼쳐진다. 에움길 돌아가면 풍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카페나 펜션, 식당이 나타났다. 오며 가며 나들이 차림으로 보이는 차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일하고 휴식하는 게 사람의 일상이다. 더 나이 들어 일에서 제외된다고 끌탕할 것 없다. 굶어 죽지 않는다면 삶은 얼마나 더 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일 터니. 자본주의 가치관에 물든 노인은 생산력이 제로인 상태를 죽음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쓸모'의 가치를 재확인할 때가 바로 노년의 삶이다. 섬 끝의 해안도로를 내려가 바닷가 마을에 닿았다. 양식장 사이로 거대한 크레인이 떠 있다. 수북하게 그물이 쌓인 곳에 차를 세우고 사과를 먹었다. B군의 산골짜기에서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단물을 키운 사과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사내 하나가 묶어놓은 고깃배로 올라타더니 이내 사라진다. 등산 스틱을 쥐고 산책하는 노인이 지나간다. 섬에 유일한 중국집 앞에는 차들이 빼곡하다. 점심시간이다.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마시고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