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15)
독거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은 의식주 중에서 먹는 일이다.
월세와 전기요금, 가스비를 내면 한 달을 살지만 끼니는 매끼 챙겨 먹어야 한다. 집에서처럼 반찬 가짓수가 많거나 주 2회 정도 특별한 음식을 요리해 먹을 수 없다. 혼자 생활하는 데는 고른 영양의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돈을 아끼려고 간장에 밥 비벼 먹다간 건강을 잃어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평생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 여성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재정은 진작에 거덜 났을 거다. 오늘 저녁 국은 무얼 끓일까, 내일 아침 국은? 밥상을 준비하는 이는 기획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당신이 해봐라. 기획력 전에 머리가 지쳐 떨어질 거다. 아내 덕분에 이만큼 체력 유지하고 사니 고마울 따름이다. 가끔 여성들이 밥상 테러를 일으키는 상상을 한다. 밥을 안 하거나 김치만 내놓는 것 말이다. 남편 가족이 달라질 거다. 설거지를 서로 하겠다고 나설 거다. 여성들이여, 밥상을 깨부숴라! 당신의 삶은 당신 것이니.
혼자 밥 끓이며 산 지 삼 주가 가깝다. 슬슬 물릴 만도 한데 일상은 거침없이 흘러간다. 수영과 독서, 산책이 일과가 되었다. 난 섬의 동쪽에 살고 도서관은 서쪽에 있다. 한 번에 열 권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난 한 번에 대여섯 권을 대출한다. 먼저 신간 코너를 둘러보고 읽을만한 책이 있는지 살핀다. 다음은 집에서 메모한 작가나 책의 제목을 검색하여 서가를 뒤져 찾아낸다. 서가를 둘러보다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그것도 따로 챙긴다. 집과 거리가 있는 도서관이니 매일 올 수 없다. 한 번 가면 시간이 걸려도 꼼꼼하게 서가를 뒤진다.
수영은 매일 아침 9시에 집을 나서 한 시간 정도 하고 온다. 매월 셋째 월요일은 휴관이고 월~금까지 문을 연다. 같은 시간대에 오는 사람들과는 구면이 되어서 만나면 인사하고 헤엄친다. 수영의 고수인 은퇴 노동자를 만나 사귀었다. 그와 수영 끝나고 커피를 마시고 점심도 먹었다. 그는 open water 수영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대회는 보통 3km를 헤엄친다. 그가 나의 수영 동작에서 고칠 점을 얘기하면 나는 바로 고치고 따라 한다. 원 포인트 레슨을 돈 안 내고 받는 셈이다. 덕분에 영법 동작이 많이 나아지는 중이다. B군의 수영장에서 최고 수영 거리가 칠십오 미터였는데 여기서는 백 미터까지 거뜬히 헤엄친다. 물론 아직 오리발을 낀 상태지만. 매일 아침 그와 같은 레인에서 킥판을 잡고 발차기로 몸을 푼다. 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도 부지런히 따라 하다 보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삼십 분 발차기 후 풀 브이를 사타구니에 끼고 상체 연습으로 레인을 왕복한다. 이후는 오리발 레인으로 옮겨 왕복한다.
산책은 조각 공원으로 간다.
집에서 차로 오 분 거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조각 공원의 작품을 감상하며 오른편에 펼쳐진 남해의 초록빛 바닷물을 눈이 시릴 정도로 바라보며 걷는다. 등대까지 갔다 오려면 왕복 두 시간은 넘게 잡아야 한다. 네댓 차례 오면서 엄두가 나지 않아 중간에 돌아섰는데 오늘은 욕심을 내기로 했다. 바다로 돌출된 지형의 식생은 온통 해송이다. 구불구불 뒤틀어진 해송이 짠물을 마시고 헌걸차게 자란다. 하부 식생은 동백나무 거나 잎이 두꺼운 상록 활엽수가 차지했다. 해송 사이로 펼쳐진 바다 위에는 언제나 화물선과 LNG선이 떠 있다. 갈라놓은 고등어 뱃속에 소금 뿌리듯 고깃배가 물살을 끌고 지나간다. 갯바위 위에 낚싯꾼 두엇이 허리를 젖히고 캐스팅한다. 바람은 찬데 한낮의 햇살 덕분에 따듯한 느낌이다. 너른 산책로가 좁아지는 갈래길에 등대와 전망대 이정표가 보인다. 바다 쪽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 좁은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 있어 롤러코스터 같다. 급경사엔 나무 계단을 만들었다. 높이 자란 해송 탓에 대낮에도 어두컴하다. 산책로에서 보이던 산책객이 이 길에선 보이지 않는다. 여자 혼자 걷기엔 무서운 길이다. 바다를 끼고 계속 걸으니 등에 땀이 밴다. 점퍼를 벗어 허리에 묶었다. 부우 부우-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걸어 높은 터에 오르니 벤치가 있고 전망이 탁 트였다. 왼편으로 대교가 보이고 너머는 T시이고, 오른편에 희끄무레 보이는 산릉이 P시 같다. 시야가 트인 곳에서 바라보니 남해안 지형이 손이 잡힐 듯하다. 더 나아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오백여 미터 앞에 등대가 보였다.
오늘은 먼발치서 등대 본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해송 숲 너머로 하얀 등대는 밤마다 불을 켤 거다. 어두운 밤이면 불빛으로 해무가 깔린 날이면 고동 소리로 위치를 알린다. 항해하는 배들의 교통 신호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어부의 눈에 비치는 등대는 어떤 의미일까.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거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꾼 꿈처럼 오래전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날 때의 추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청새치와 사흘 밤낮 사투를 벌이다 뼈만 남은 수확이어도 노인은 마지막 불타는 욕망을 쏟아부어 미련이 없다. 잠에 빠져 사자의 꿈을 꾸는 노인은 비로소 깊은 휴식에 든다. 우린 얼마나 미련 없이 일상에 전력투구하며 살아갈까. 몰입할 대상은 어떤 기준으로 세우는 걸까. 욕망하는 모든 것은 모든 걸 욕망하지 않음과 같다. 삶 전체가 욕망은 아닐까. 난 여기서 무엇을 바라나.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노인처럼 깊은 휴식도 꿈도 얻지 못한다면 삶의 과정은 얼마나 공허할까. 집을 떠나 여기까지 내려와 바닷길을 걷는 나는 누구 말처럼 팔자가 좋아서일까. 팔자는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닐까.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건 보는 사람의 몫이다. 난 어쩌다 노년 초입에 접어들었을 뿐. 나를 포함한 타자에 섞여 예까지 흘러 왔던 거다. 나를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여정도 없다. 타자를 보면 내가 보인다. 타자의 욕망의 그늘에 숨은 나는 비루한 꼴이다. 그게 나다.
끼니 준비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기로 했지만 식사를 마치기까지 평균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고기도 사다 볶고 배추 속 쌈으로 쌈을 하거나 배추 된장국을 끓인다. 두부를 좋아해서 두부는 어디나 들어간다. 오뎅도 볶고 멸치도 다듬어 볶아 밑반찬으로 먹는다. 국물 멸치 우려 국수를 말 때도 있다. 쌀 씻을 때 손 적시기 싫어 거품기를 쓴다. 마늘은 찧어 설얼린 다음 크기로 잘라 냉동실에 보관, 썰어놓은 파와 함께 조리할 때 꺼내 쓴다. 이 신박한 지혜는 아내로부터 전수받았다. 치킨보다 백숙을 좋아하는 옛날 입맛이라 며칠 전 황기 넣어 생닭을 삶았다. 반찬이든 국이든 음식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다 먹을 때까지 한 가지만 먹는다. 작은 닭인데도 닭백숙만 사흘 먹었다. 국물 멸치를 박스째 사놓고 국물 베이스로 쓰다 귀찮아 멸치다시다를 사려다 고양이 생각나 그대로 두었다. 국물 우리고 나온 멸치는 두부 팩에 담아 일층 현관 구석에 둔다. 집에선 좀처럼 김치에 손대지 않았는데 가져온 김장김치, 무김치, 파김치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설 때 한 번 가져오고 떨어지면 직접 담을 생각이다. 그릴이 없어 생선 굽는 건 포기했다. 사과는 사과 농사하는 지인이 보내준 걸 하루 한 개씩 먹는다. 집에서도 과일은 좀처럼 먹지 않았다. 독거 생활이 만든 섭식의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