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16)
시골 읍내에 하나뿐인 종합병원에는 대장 내시경 검사가 없다. 검사받으려면 근동의 시내 병원에 예약해야 한다. 월요일 오전이면 시골 병원 대기실은 도떼기시장으로 붐빈다. 근동의 노인 환자가 주말을 견뎌내고 월요일 날 새기 전 첫 버스를 타고 읍내로 달려온다. 진료는 여덟 시 반부터인데 접수는 일곱 시부터 받기 때문이다. 자칫 여유롭게 나왔다간 넉넉히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처음 읍내 병원에 갔을 때 접수하고 한적한 로비를 보고 안심했다. 붐빌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걸, 로비를 도는 순간 내과 복도에 꽉 들어찬 대기 환자를 보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는 어제오늘이 일이 아니고 노년은 아프기 일쑤다. 평생 지게 지고 호미로 밭 매느라 무릎 관절 허리 통증으로 고생한다. 옛날보다 잘 먹어 고혈압 당뇨를 달고 산다. 노인은 아프지 않다가 자는 듯이 세상 떠나길 바라지만 수명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건강보험이 살려주고 기초노령연금이 목숨을 붙들고 늘어진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는 개인만의 경험이다. 자다가도 통증에 깨는 일상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대기자 대부분 노인이었는데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내놓고 일체 말이 없다.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은 진료실 앞 벽에 달린 모니터를 올려다보며 차례가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의사와 짧은 만남을 가진 이후에도 두 번이나 기다리다 지쳐 근처의 의원으로 바꿨다. 대기 시간은 엄청 단축됐다. 의원 로비에 자신의 시화를 걸어놓은 의사는 점잖고 친절했다. 삼 년째 의원에 다니며 의사와 친해졌고 먹는 약도 늘어났다. 의사는 자기 시집과 동호회 시집을 건네기도 했다. 나도 부끄러운 내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 의사들의 시편은 난해하진 않았지만 의술로 치유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민하고 있었다. 의원 로비는 노인들이 점령했다. 간호사는 눈귀가 어두운 노인을 대처하는 법을 알았다. 일본의 안과 의사 히라마쓰 루이(平松類)는 노인은 일정 이상 음역인 고음은 불쾌하게 여기기 때문에 낮은음으로 노인의 얼굴을 보며 단문으로 묻는 게 잘 알아듣는다고 한다. 청력에 좋은 마그네슘, 비타민 C, E를 섭취하는데 음식으로는 파래, 톳, 코코아, 아몬드가 좋다고 안내한다. 난 지팡이를 짚고 읍내 나오는 고령의 노인을 보면서 감탄한다. 요양병원이나 집에 누워 약을 기다린다면 가족이나 본인에게도 힘겨운 일상이다.
읍내에는 네댓 군데 약국이 있지만 단연 붐비는 곳은 군수 부인이 운영하는 약국이다. 내가 가는 의원의 바로 밑에 있어 매번 처방전을 들고 문을 민다. 나이 든 군수의 부인은 친절하게 복용법을 설명한다. 주민과도 친하게 지내는데 최근 뇌물 사건으로 판결을 기다리는 남편 탓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부정한 돈을 챙긴 군수가 있다는 건 주민에게 불행이다. 루쉰(鲁迅)은 '혁명은 혁명 후의 일상에도 계속된다. 반동 세력은 어디서나 출몰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군수는 처음엔 몸과 정신을 다해 군정에 충실하자고 다짐했을 거다. 하지만 초심을 잃은 군수는 전국에서 제일 가난한 군의 살림보다 자신의 말년을 느끼하게 보장하는 부정한 돈을 선택했다. 초심은 까마득한 예전에 차 버렸다.
이제 다시 봄이 돌아오면 꽃 피고 새 울겠다. 팬데믹이 휩쓰는 일상에 녹음방초(綠陰芳草) 시절 온다면 마른 가슴에 축축한 물기 오를까. 사람들은 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원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풍토병이 된다 해도 일상은 예전의 일상과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팬데믹은 자본이 부추기는 양극화와 안전지대가 위계의 차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비대면 시국에서 택배 노동자, 돌봄 노동자, 의료 노동자의 활약은 뛰어났고 사회의 기층을 떠받치는 기초 노동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열악한 처우는 그대로인 게 드러났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은 죽음을 불사한 노동의 가치를 우습게 팽개친다. 일시에 멈춰버린 중국 공장의 굴뚝과 베이징의 차들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잠시 동안 1/4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탄소 배출량이 다시 회복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팬데믹으로 기후 변화의 대처법이 무언지도 금세 드러났지만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생활양식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을 거다. 정치꾼도 경제와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으면 표를 얻기 어렵다. 떨어지면 감옥에 갈 각오로 돈 되는 공약이면 축포처럼 펑펑 터뜨려야 지지가 쏟아진다.
사람의 이기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여기가 서호주도 아니고 깊은 계곡에 가도 바위틈에 끼워 놓은 과자 봉지를 발견한다. 풍치가 좋은 곳이면 펜션과 식당이 차지하고 마을과 떨어진 숲 속에 사는 자연인은 끈질긴 방송사의 카메라에 잡혀 도시인의 볼거리로 전락한다. 갖가지 사연으로 사람과 떨어져 살던 그들도 PD의 집요한 설득에 굴복하고 만다. 관종이 아니라면 외딴곳에 사는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자연인' 프로를 보면 찾아온 손님에게 생닭이나 돼지고기 요리를 해주는데 아연해진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고 다양한 생각이 존재한다. 어떻게 살든지 자유겠으나 생각 없이 살 거나 한 가지 생각에 빠져 산다는 것도 위태로운 일이다. 풍요로운 삶을 거부하고 풍성한 삶을 사는 게 일반인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매일같이 거듭되는 노동의 반복과 아침이슬처럼 금세 말라버리는 반짝 휴일이 지나면 덜 풀린 심신을 끌고 일터로 간다. 취미 활동과 독서는 먼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지나치면 남의 삶을 살게 된다. 오래, 깊게 사유하기를 거부하면 맨날 여울에서 서성이게 된다. 낮은 앎의 온도는 얕은 각성으로 이끌고 얕은 각성은 깊은 성찰로 나아가기 어렵다. 산책을 통한 사색이든 독서를 통한 체험이든 상상의 날개를 펼쳐라. 상상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삶은 없다고 믿는다.
현재의 환경은 혼자 살기에 최적이다.
최적이란 뜻은 혼자 지내는 원룸 공간에는 너른 방에 분리된 주방, 욕실과 베란다의 세탁기, 한여름의 후텁한 공기를 식히는 에어컨, TV와 와이파이까지 완비되어 있다. 한 블록만 내려가면 재래시장이 있고 길 건너에 마트와 다이소가 있다. 구도심이라 모든 시설이 갖춰진 이곳은 도시인에게 최적화된 환경이다. 내 꿈은 숲 속 생활이다. 마른 가지를 주워 아궁이에 불 때고 숯불로 커피를 끓이는. 산새 소리에 잠에서 깨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뭇별을 보며 상상의 여행을 하고 텃밭에 채소를 길러 먹으며 사는 게 나의 최종 목적지다. 누구와 더불어 살아도 좋고 혼자라도 좋다. 바다가 멀어도 상관없다. 삶을 궁구하고 단순하게 사는 삶을 상상한다. 산촌의 빈집을 얻거나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오래 살 수 있는 곳을 틈나는 대로 알아보려 한다. 글을 쓰고 책을 내려는 것도 욕심이니 버려도 좋으리라. 나 또한 사회의 인연을 떨쳐낼 순 없어 가족과의 연락은 끊지 않고 산다.
고령화 시대의 진입과 함께 1인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느는 중이다. 2025년이면 전체 가구의 1/3이 독거 가구다.'혼밥' '혼식'을 위한 마케팅 상품도 불티나게 팔린다. 생존의 사냥터에서 특히 sns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얼굴 모르는 불특정 다수와 sns 상에서 '좋아요'를 나누는 행위는 현대인의 고독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난 카스와 브런치,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주로 잡문을 올리고 저장하는 공간으로 쓰는데 까칠한 성격으로 친구 맺기는 냉정할 정도로 제한한다. 카스와 페이스북 친구가 합해서 간신히 스무 명을 넘을 정도니. sns에서 내 글을 잘 읽었다고 '좋아요'를 보내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타인의 글에 '좋아요'를 남기는 것은 수월치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바쁜 친구는 연달아 좋아요를 날리기도 하는데 그냥 웃어버린다. 눈팅만 하거나 내 글엔 관심 없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골몰하는 이는 사정없이 차단한다. 참 못 말리는 성깔이다.
집을 떠난 지 얼마 지나니 먹던 약이 떨어졌다.
예전엔 먹지 않던 미국의 큰형이 보낸 영양제를 빠뜨리지 않고 먹는다. 봐 두었던 동네 의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고용센터에 가고 도서관, 박물관에 갈 예정이다. 민속박물관은 다음 도서관 갈 때 찾기로 한다. 섬의 역사와 문화를 톺아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