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17)


"오십 년대생은 이쪽으로 오세요!"


712만 명. 1955∼63년 태어난 베이비 부머의 숫자다. 이들은 요즘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노후생활을 걱정한다. 그런 고민 중 하나가 어디에서 살 것인지다. 일본은 이차 세계대전이 끝난고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세대이다. 단카이 세대라고 부른다. '단카이(団塊)'는 덩어리를 뜻한다. 참혹한 전쟁 후 덩어리처럼 쏟아진듯 태어난리나라의 베이비 부머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경제 발전을 이뤄낸 세대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학교에서 공장에서 최루탄 연기를 마시며 돌을 던지거나 바늘로 무릎을 찌르며 철야 작업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 눈물겨운 세대다. 자조 섞인 말로 위로는 부모를 부양하고 아래로 자식에게 기대지 않는 마지막 세대라고 한다. 반면에 우리 시대 청년들이 가장 많이 보여준 감정은 불안이다. 교육학자 이민경은 '불안의 실체는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청년층이 말하는 불안의 이면에는 이들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분모가 있다. 고용과 주거 불안 등 물리적 조건으로 인한 불안, 안정된 직업과 결혼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압력, 삶의 격차에 따른 또래 압력 등 타인의 기대나 비교에서 비롯되는, 인간관계에서 파생한 불안이 대표적이다'라고 말한다. 베이비 부머 세대는 열심히 노력하면 위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집과 가정, 아이들의 교육, 자신의 사회적 위치 상승 등의 결과를 맛보았다. 그런 베이비 부머가 이제는 위기를 맞고 있다. 박물관에 가기 전 고용센터에 들렀다. 교육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줄이 제법 길었다. 앞에 선 중년 여자의 불론디 한 파마머리가 세련돼 보인다고 생각했을 때 안내원이 소리쳤다. 오십 년대 생은 한쪽으로 나와서 수첩과 인쇄물을 가져가라고. 앞으로 나가면서 여러 개의 시선이 뒤통수에 꽂히는 게 느껴진다.


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다시 책을 빌려 박물관으로 향했다.

포로 가는 길은 넓고 시원하게 뚫렸다. 조선소 정문에는 노동자의 출퇴근 오토바이가 전시장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정문 수위실 앞에 천막이 쳐졌고 벽에는 합병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문구가 붉은 글씨로 외치고 있다. 네비가 도착을 알렸는데 도무지 박물관은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길에 선채 통화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아파트 뒤쪽이 박물관이란다. 박물관은 계단이 가파른 언덕의 낡은 삼 층 건물이었다. 그룹이 넘어가고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세상 떠난 회장이 생전에 기증한 거였다. 시에서 관리하지만 모든 기물이며 집기는 꽤 낡았다. 계단 중간의 나무 벤치는 페인트 칠이 벗겨져 너덜댔고 건물 벽도 간신히 칠을 버티는 중이다.


내실에 관람료를 내고 들어섰다.

내인은 삼 층까지 전시돼 있으니 천천히 관람하란다. 오십 평이 안 되는 전시실은 섬의 고대 유물과 역사, 민속품이 전시돼 있었다. 건물만큼 오래된 유물은 여느 박물관의 모습과 비슷했다. 관심을 끄는 건 한국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전시였는데 도서관 옆의 포로수용소 유적관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였다. 하지만 수용소의 포로가 그렸다는 그림을 만났다는 게 기뻤다. 종이에 그린 「장승포항(長承浦港)」은 현재의 예술회관 뒤에서 내려다본 항구의 모습이었는데, 산야에 봄의 기색이 물씬 풍겼다. 물가의 집들은 지붕이 단정했고 풍요로운 포구 마을처럼 보였다. 초가지붕은 보이지 않고 교회의 첨탑이며 지붕의 색깔이 마치 지중해의 도시처럼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 포로의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난 이의 바람은 평화와 재건이었을 테니까. 용마루와 처마 부분을 흰색으로 두텁게 칠한 붓 터치를 보니 가족에 대한 사랑을 굳게 잇는 선 같기도 했다. 바다는 푸르고 한없이 잔잔했고 포구에 기댄 고깃배들은 평화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다. 어떤 사연으로 소장하다 기증했는진 알 길 없어도 전쟁 한가운데서 예술혼을 길어낸 작가의 노고가 눈물겨웠다. 일층 벽에 걸린 웃고 있는 회장의 얼굴을 보자니 애잔한 생각이 들었다. 한때 세계로 향한 초일류 기업의 꿈을 이룬 사람의 말년은 초라했다.


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 갈까 하다 수영장으로 갔다.

전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는데 낮 시간이 외려 한산했다. 나이 든 관리인이 오늘은 늦게 왔다며 알은 체한다. 이제 난 수영장 단골이 되었다. 그저께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하는데 칠십이 코앞인 아지매가 인사하며 '난 또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할 정도니. 이놈의 인기는 육지나 섬이나 가리지 않는다. 남자 셋이 한 레인씩 차지하고 퐁당거렸다. 나머지 세 레인에선 여자들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왕복한다. 엄마 따라나선 아이는 어린이 풀에서 논다. 몇 번 보고 나서 내가 말을 붙여도 대꾸 없이 까칠한 녀석인데 물속에서 자맥질하는 폼이 여간 아니다. 수영 배우면 크게 될 놈이다. 녀석은 내가 레인을 돌고 나서 자기를 보고 엄지를 보일 틈도 주지 않는다. 아무튼 보통내기가 아니다. 엄마가 낯선 사람과 말 섞지 말라고 한 걸 지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영 마치고 나와서 관리인에게 박물관에서 회장 사진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제대하고 바로 대우건설로 리비아 아파트 공사 해외취업을 갔다고 했다. 나중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할 때 내가 그 회사 다녔다고 했다. 지금은 망한 회장은 리비아 가면 가다피 국가 원수와 백마를 타고 현장을 시찰했다. 회사 사보엔 흰 망토를 걸치고 말 위에 앉은 가다피의 모습이 자주 실렸다. 그러면 뭐하나. 육군 중사의 신분에 쿠데타로 집권한 가다피는 사십 년간 철권통치로 사회주의 국가를 장악하고 부패했다. 가족과 측근의 부정 축재와 천문학적인 재산의 해외 은닉은 '아랍의 봄'으로 혁명이 잇따르자 철퇴를 맞았다. 전쟁광 부시의 근거 없는 대량 살상 무기로 사담 후세인도 도망치다 참호에서 총탄 세례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잇따라 감옥에 갇힌 우리나라의 상황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시민만 불행해진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밑도 끝도 없는 꼰대질에 연령주의고 결국엔 아무런 실효도 없는 라테질이다. 지금도 의심 가는 대통령의 진도체육관에서의 눈물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보다 아마 총탄에 비명횡사한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사회엔 생각 없이 철없이 나이만 처먹은 노인이 쌔고 쌨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경상도의 한 할매가 '우리 지역에 그런 일이 안 생겨서 참말로 다행이고나' 했단다. 생전의 채현국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태극기 부대와 어버이연합의 데모를 가리키며 '잘 봐 두어라, 생각 없이 늙으면 저런 꼴 된다는 걸'이라고 했다. 스승은 진실을 가리는 가짜를 훑어내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중은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진실을 취사 선택해 믿으며 세력을 모은다. 취사 선택된 진실은 의심이나 확인의 과정을 거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살아서 민주화 운동가에게 집을 사주고 은신처를 제공한 선생은 군사정권과 손잡기를 거절하고 탄광의 재산과 주식을 종업원에게 나눠주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 시대에 선생 같은 어른 두어 분만 계신다면 좋겠단 생각이다.


영장을 나와 조각 공원에 갔다.

해 넘어가는 양지의 벤치에 앉아 쉬는데 바람이 차다. 유난히 추운 날이 길어지는 올겨울 날씨 탓인지 봉오리만 주렁 하게 달린 동백은 꽃을 열 생각이 없다. 물에서 나온 몸이 열기가 식으니 한기가 돈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고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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